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혜숙 Jan 02. 2019

책 <나는 괜찮지 않다>에 밑줄 긋기

삶의 밑바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나는 괜찮지 않다>에 밑줄 긋기


밑바닥이란 말은 원래 'AA(익명의 알코올의존증 환자) 프로그램'에서 유래한 말로 환자들이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지점을 가리킨다. 즉, 새로운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비단 중독자들만 밑바닥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위기에 봉착한 사람, '코너'에 몰려 변화를 택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다. 다시 말해 밑바닥 체험은 자신의 삶과 영혼을 파괴하기 싫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다.

플레밍이 말했듯,  그냥 그대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훨씬 더 많고 변화를 시도해야 할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한가지를 도저히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302쪽)




밑바닥을 치고 올라오다


영상번역가로 살면서, 나도 오래전에 '밑바닥'이란 걸 경험해 봤다.

시청자한테 번역 오역 지적을 받은 뒤 신입 감수자가 내 문장을 난도질하는 걸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아무 문제 없다가 단 한 번의 오역 지적으로 나의 모든 번역이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그 감수자가 감수하면서 오히려 잘못 고치는 게 많아서, 오랫동안 나와 함께 일해 왔던 다른 관계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동안 신뢰 관계를 쌓았으니 내 입장을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지만, 그 담당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업체와의 거래는 끊겼다. 쉽게 말해, '잘린 것이다.' 


그때가 내 번역 인생의 최대 고비였다. 10년간 영상번역가로 잘 자리잡고 살아 간다고 생각하던 차에 느닷없이 찾아온 위기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루는 "감히 생초보가 내 문장을 뜯어 고쳐? 날 가르쳐 들어?" 이렇게 부들부들 분노하다가...

하루는 "내가 정말 번역을 못하나 보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번역한 것들이 다 허접했나 봐." 이렇게 자기 비하에 빠졌다가... 매일같이 감정이 널뛰기를 했다. 업체 관계자를 원망도 했다가, 나 자신을 원망도 했다가, 자포자기에 빠져 넋놓고 몇 달을 보낸 것 같다. 


<나는 괜찮지 않다>에서 언급됐듯 '새로운 길을 택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때 나에게 돌파구는 '영화 보기'였다. 광화문 시네큐브, 아트하우스 모모, 아트시네마 등 예술 영화관들을 찾아 다니며 영화를 봤다. 당시 내 삶이 그닥 즐겁지 않았기에, 상업 영화보다는 잔잔하고 차분한 예술 영화들을 주로 봤다. 영화들을 보면서 다시 번역에 대한 열정을 되살렸다.


가까운 동네에서 하는 '부천 영화제도' 잘 안 가던 내가 부산 영화제 작품들을 보겠다고 갑자기 부산에 내려간 것도 그때였다. 나와 함께 슬럼프를 겪으며 서로 힘을 주던 동료 번역가 Y와 함께 갔는데, 거기서 서로의 꿈을 얘기했다. 


나의 꿈은 "글 쓰는 번역가 되기". Y의 꿈은 "국제 영화제 다니며 영화 수입하는 영상번역가 되기." 

둘 다 밑바닥에 떨어진 채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꿈을 얘기하면서, 서로 비웃지 않았다.

우린 할 수 있다고 주문을 외웠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우리 둘 다 그때 말했던 꿈을 이뤘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더 큰 꿈을 실현해서,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뿌듯해했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참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될 텐데... 

우리는 꿈을 이룬 대신, 삶의 여유를 잃어버렸다.


매일매일 숨쉴 틈 없이 달리느라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는데도, 둘 다 자신을 돌볼 생각을 못 했다. 

한번은 Y가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내가 하늘도 제대로 못 본 것 같아. 가족과도 시간을 못 보내고." 

그 얘기를 나눈 후, 우리 둘 다 느슨해지기로 했다. 일을 줄이고, 쉬엄쉬엄 가기로.


그리고 난 <나는 괜찮지 않다>(배르벨 바르데츠키 저, 강희진 역, 와이즈베리)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매일매일 바쁘게 사는 게 바로 나 자신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내가 바빴던 이유 하나.

프리랜서 초기 때, 일을 거절하면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에 무리해서 일을 받아 번역했던 게

나도 모르게 뼛속 깊이 습관으로 자리 잡았나 보다. 내가 잠시라도 일을 멈추면 모든 게 엉망이 될 거라는 불안감에 매일매일 시달렸다. 그런데 완벽주의를 좀 버리고 남과 협력을 하고 내 일을 줄이니 좀 더 수월하게 일이 진행된다.  


<나는 괜찮지 않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여성들은 휴식과 안정을 위기로 간주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존재의 위기감을 느끼기 떄문이다.

이 위기감은 존재 가치의 상실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들은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면 내 삶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냥'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면 과연 살 가치가 있을까?"라며 자문한다." 



내가 바빴던 이유 둘.

내 안에 똘똘 뭉쳐 있는 열등감을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써 왔던 것 같다.

나는 원래 매력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이라도 열심히 해서 남에게 인정 받고, 그걸 통해 내 존재 가치를 입증하려 했던 건 아닌지.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보려면 가면을 벗어야 한다. 이는 곧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뭔가를 버러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포기는 절실한 상황이 되었을 때, 내적인 절망이 극에 달햇을 때 실천에 옮기게 된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친구, 자신의 본모습을 안심하고 보여줘도 되는 친구가 있다면 커다란 도움이 된다. "


그나마 극단적인 상황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가족과 친구'가 곁에 있었던 덕분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가족과 친구들이 나에게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라고 말해 주어도 자꾸만 스스로 그 사실을 부정했다.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고, 뭔가 개선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완전히 떨쳐 버리기 힘들지만, "지금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계속 주문을 걸고 있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다." 


오늘도 이렇게 주문을 외워 본다.



#삶에 밑줄 긋기 - 책, 영화, 미드에 밑줄을 그으며 삶을 생각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그래비티>에 밑줄 긋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