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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Mar 05. 2020

주눅 들어있던 과거의 나에게

열심히 살아온 모든 순간은 헛되지 않았다고.

샤워를 하다가 문득 생각이 스쳤다. 마냥 밝게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대학 시절의 나는 꽤 주눅 들어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정말 샤워를 하다 문득 머릿속에서 떠올라버린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그 시절을 생각해보게 됐다.


열아홉의 나는 '스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 내 생일이 떡하니 적힌 민증을 들고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서 술을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단편적인 사실부터 뭔가 정신적으로도 한층 더 성숙해지는 그런 멋진 '대학생'이자 '어른'의 모습. 그냥 지금의 나에서 한 살을 더 먹는 것일 뿐인데도 희한하게 나는 스무 살이 되면 정말 살이 쏙쏙 빠지고 생각도 한층 더 성숙해진 어른이 될 거라고 착각했다.


환상을 품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후가 문제였다.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는 기대와 레벨업을 하듯 성장한 나의 모습. 환상 속의 그 모습은 스무 살이 되고 오래가지 않고 부서졌다. 새로운 세상은 너무 낯설었고 어른은커녕 옷을 어떻게 입을지 화장은 어떻게 할지, 수업 시간표는 또 어떻게 짜고 점심은 누구와 먹어야 하는지 등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대학을 가기 전, 19년을 한 도시에서 살았던 터라 내 세상은 그곳이 전부였다. 가족들,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중. 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들, 성당 동기 애들, 그 외 자잘하게 성당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언니 오빠들. 더 큰 세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그때부터 있었지만 그곳도 행복했다. 시내서 멀리 세워진 학교 옆에는 논이 있었고, 계절에 따라 모내기를 하고 비 오는 여름에는 개구리가 울고 가을엔 노랗게 벼가 익어가고 겨울엔 하얀 마시멜로 같은 짚들이 뭉쳐있는 모습들이 좋았다. 언제든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웃고 떠들 수 있었고 1번과 2번뿐이던 버스 노선이면 시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촌이라면 촌인 그 세상 안에서 큰 세상이 궁금했던 것은 일종의 호기심과 동경이 묘하게 섞인 색이었고, 익숙한 것만 먹다 새로운 것을 먹고 싶은 그 정도의 마음이었을 테다. 이 안에서만 머무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대학 결정에 큰 영향을 줬다. 합격한 대학 중 한 곳은 고향 근방의 대학이었고, 한 곳은 완전히 다른 곳에 위치해있었다. 심지어 한 곳은 유아교육과였고 한 곳은 자율전공이었다. 유아교육과는 입학 때부터 장학금을 받는 좋은 조건이었고, 자율전공은 추가합격이라 입학금을 고스란히 내야 했다.


나는 그때 유일하게 내 욕심을 부렸다.


집안 환경을 생각하느라 스스로 포기했던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더 큰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이가 그저 갖고 싶은 것을 선택하듯이 자율전공이었던 타지의 대학을 선택했고 그 후는 현실의 쓴 맛을 톡톡히 보게 됐다.


마법소녀가 아니었기에 짜잔 하고 변하는 일은 없었다. 사실 타지에 올라와 대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변하려는 마음을 안 먹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멋지게(당시 생각으론) '이미지 변신'을 하자! 하고 생각했다. 고향과 달리 나를 아는 사람도 없으니, 내가 행동하는 대로 내 이미지가 만들어질 것이 아닌가. 다른 친구들한테 말도 잘 걸고, 모임도 주도하고, 시끌시끌한 친구들의 중심에 있는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다짐이 무색하게도 결과는 처참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은 차이가 꽤 컸다. 거리낌 없이 사람에게 다가가기는 했으나 여러 명이 모였을 때 대화를 주도할 만큼의 자신감이 없었다. 어디에나 잘 어울렸지만 미술을 전혀 배우지 않고 미술을 전공해 온 예고 친구들 사이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것은 버거웠다. 어느 누가 면박을 준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스스로 너무 쪼그라들었다. 큰 세상으로 나오니 비로소 나의 작은 크기를 체감하게 되는 것 같았다. 크게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했지만 자꾸만 내 안의 나는 작아졌다. 오히려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음에도 나는 좀처럼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여태 인정할 수 없다가, 스물일곱의 오늘 문득 샤워를 하다 과거의 내가 웅크리고 살아왔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7년 전의 나를 돌아보고 그 생각이 들자 당시의 객관적인 사실들을 떠올리게 됐다.


- 친척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던 타지 생활

- 미술을 배운 적도 없는데 선택한 디자인과

- 4년 내내 유지했던 장학금

- 도 단위의 큰 동아리 활동과 임원 활동

- 1년의 휴학과 그동안 모은 돈으로 간 20일 남짓의 유럽여행

- 졸업 한 달 전 취직 후 디자이너로 2년간 근무


언제 다 저렇게 많은 것들을 해왔지 싶었다. 그냥 객관적인 것들로만 봐도 참 열심히 잘 살아온 순간들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순간들을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이 되고 그토록 되지 않던 것이 그렇게 한 순간에, 되었다.


대학 시절 때 인간관계로 힘들어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10회였는지, 12회였는지. 그 당시 심리상담가 선생님은 내게 스스로 다독여주고 스스로 인정해주라고 했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그래도 된다고,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진심을 다해서 해주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는데,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거울을 보고 몇 번 시도해봤지만 얼마 가지 않아 하지 않게 되었다. 진심으로 내가 나를 인정할 수가 없었던 이유가 컸다.


그때에도 객관적은 사실들을 떠올리긴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또 값진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다들 이렇게 살지 않아? 이 정도는 다들 하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었고, 내가 이루어낸 일들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 '이 정도는 다들 하는 일'로 치부되어 그냥 쌓이기만 했다. 당연스럽게 나는 어떤 성취감도 느끼지 못했고 늘 2% 부족한 느낌으로 살았다. 부족한 느낌은 있었지만 무엇이 비었는지는 알 수 없어서 그냥 꾸역꾸역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벌써 20대 후반이 되었다. 아직 후반 중에서는 초반이라지만 그래도 어느덧 스무 살이 조금 아득하게 느껴지는 시점에서 어른이 되어서는 처음 제대로 나를 뒤돌아봤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꽤 대단한 객관적인 사실들과 내 안에 가치들을 잘 지키며 사회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 내가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아마 그저 달리기 바빠서였던 것 같다. 타지 생활에 적응하랴, 고등학생 시절과는 다른 교우관계며 숨 가쁘게 따라가는 커리큘럼과 과제들. 당장 살아내기 바빴다. 무거운 짐들을 지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 그 모습이 남들이 보았을 땐 충분히 격려해줄 만한 상황이었겠지만 정작 달리는 나는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가 없었다. 그저 무거운 짐들을 느끼고, 또 덜고, 또 지고, 달리고를 반복했다.


졸업과 취직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하고 나서는 그 짐들을 마구 내려놓았다. 짤막히 스스로 잘했다 다독였지만 또 바로 쉴 틈 없이 신입 디자이너로의 걸음을 걸어야 했다. 짐을 내려놓고 또 다른 짐을 지느라, 그 짐들을 얼마나 잘 지고 왔는지 또 잘 나누고 내려놓았는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나는 이제야 안다. 그 짐들이 동떨어진 세상에 떨어진 스무 살에게는 꽤 버거웠을 수도 있고, 힘들면 조금 내려놓고 쉬어도 되었다고. 그 시기와는 영 떨어져 버린 지금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헛되지 않았고 잘, 열심히 살아와 지금의 내가 있는 것임을.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스무 살의 내가 조금 대견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인정했다. 늘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충분히 인정받았지만 늘 부족했던 인정 욕구와, 열심히 해야만 할 것 같던 초조함으로부터 벗어나서. 이 시점이 지난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로 가기 전에 쉬고 있는 기간인 것을 생각하면, 이런 휴식과 뒤돌아봄이 삶의 한 부분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인정을 위해서는 내가 한 일들을 뒤돌아 보고 확인해야 한다. 마냥 달려가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달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고갈된다. 중간중간 휴식할 때든 끝 점에 다다랐을 때든 한 번은 멈추어 돌아봐야 한다. 수 없이 고민하고 불안해하며 달려왔던 시간들 속에서 내가 이루어낸 것들은 무엇인지. 또 내 안의 가치들은 얼마나 잘 지켜왔는지.


이번 휴식이 없었다면 나는 어쩌면 그 스무 살의 기억을 영영 기억의 창고에 넣어두고 꺼내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때마침 휴식기간이 찾아왔고 어쩌다 샤워 중에 그 시절이 떠올라서. 또 그 시절에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해 주눅 들어 있었던 그때가 떠올라서 다행이었다.


혼란스러웠던 마음과 불안이 가라앉고, 내 안의 생각들이 공고해진다.

나는 이토록 느리게 단단해지기 위해서 여태 달려왔던 것인가 싶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은 것이 못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깨달아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데, 나 역시 내 속도대로 잘 가고 있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단단해지고 싶다. 뜨거운 불가마에서 오래도록 구워지는 하얀 도자기처럼. 서두른 시간 안에 어설프게 영그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양분을 축적하고 스스로를 알아가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싶다. 그것 역시 나를 표현하고 구성하는 부분이 될 테다. 


참 오랜만에 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제 그저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어왔다면 앞으로는 내가 목표를 정해 나아갈 시간임을 어렴풋이 체감한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때로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는 것 같다. 휴식에서 꿈과 인정을 발견한 지금처럼. 선물처럼 어느 날 툭 주어진 것도 실은 오래전부터 내가 만들어왔던 것임을 생각한다. 


겸손하되 스스로를 낮추지 말 것, 가끔 뒤돌아보고 스스로를 인정할 것. 내 안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다.

왠지 앞으로는 조급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마음이 좋은 날이다.





표지사진

Photo by Sebastien Gabri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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