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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에 Sep 15. 2020

소파를 구매하려다 배운 것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몇 개의 길잡이는 있는 것 같아요.


많은 것들은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글의 소재는 소파이지만, 처음부터 소파를 구매해야지!라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사연을 구구절절이 나열해보자면, 과거의 나는 침대와 벽을 이용해서 종종 기대서 생활해왔다. 그렇게 한참 세워둔 베개 때문인지, 벽에 곰팡이가 나타나 더 이상 베개를 벽에 기대어 둘 수 없게 되었고 곰팡이를 박멸하고 나서도 그 자리에 똑같이 기댈 수 없었다.(또 생기면 안 되니까...) 원래 기대던 자리를 잃자 생활 속 불편함은 소소하게 가중되었고, 새롭게 등을 기댈 곳이 필요하다. 는 결론을 내렸다. 그게 곧 소파를 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원인을 차치하고서, 소파를 사기 위해 많은 안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냥 소파는 소파인 줄 알았는데 검색하다 보니 종류도, 사이즈도, 소재도 천차만별이었다.


1. 소파 : 2-3인용 소파. 보통 거실에 위치하고, 최근에는 1인용도 많이 나오는 추세.

2. 암체어 : 팔걸이가 있는 소파. 대게 1인용. 스툴이나 오토만 같이 다리를 올릴 수 있는 보조의자가 있기도 함.

3. 리클라이너 : 수동, 자동으로 등받이가 젖혀지거나 다리 부분이 올라와서 눕는 형태를 할 수 있는 의자.


사이즈나 소재 같은 건 워낙에 다양하니 적진 않고, 간단히 종류를 정리한 것만 해도 저 정도였다.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었던 나는 각 항목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기 시작했다. 2-3인용 소파는 놓을 자리가 없어서 탈락, 괜찮아 보이는 리클라이너는 가격대가 높아서 탈락, 암체어를 사면 앞에 둘 작은 테이블도 사야 하나? 생각은 점점 많아지고, 눈덩이처럼 아이디어는 불어나서 나는 어느새 예쁜 원형 테이블까지 알아보고 있었다.


원형 테이블도 그냥 이거! 하고 덜컥 결정하지 못해서 사이즈 70부터 90까지 파악한 후, 줄자를 들고 온 집안을 다니며 어디에 배치하면 좋을지, 앉았을 때 과연 암체어와 높이는 적절할지, 작업 용도를 위한 그냥 일반 의자를 하나 더 사야 하나 같은 생각이 또다시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소파에서 시작한 나의 고민은 어느새 원형 테이블, 암체어, 인테리어 의자까지 뻗어나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20만 원 정도로 잡았던 예산을 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이쯤 되자 선택지와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져 소파고 뭐고 그냥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끊임없는 정보와 상품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는 그 막막함이란.


몇 날 며칠을 오늘의집과 네이버쇼핑, 검색창을 들락날락하던 차에 문득 왜 이렇게 멀리 왔지? 왜 이렇게 복잡하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모든 것을 고려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은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같았다. 물건을 탐색하던 나는 잠깐 그 탐색을 멈추고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휘발되어 버릴 것을 알았기에 손으로 쓰면서 되짚어보기로 했다. 아래는 글로 쓴 내용 대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소파 문제 해결하기

시작 : 휴식 공간을 만들고 싶다.

휴식 공간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적 : ① 완전 휴식 (콘텐츠 소비-유튜브, 독서...) ② 작업 공간 (콘텐츠 생산-글쓰기, 재택업무, 공부...)

왜 이렇게 생각했나?

재택 기간이 길어지면서 식탁+작업공간이 같아졌다. 이게 싫다!

다이어리를 쓰거나 공부하는 공간이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침대에 기댈 수 없게 되어 휴식공간이 마땅치 않다!

→ 결론 : 공부(작업) 목적의 공간과 휴식 목적의 공간이 필요하다.


1차적으로 정리하고 문제를 다시 보았을 때 내가 혼란스러웠던 진짜 이유는 내가 보고 있는 물건의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이유가 컸다. 단순히 휴식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사실 그 안에는 '재택근무가 길어짐으로 인한 식탁과 작업공간의 분리'라는 숨어있던 또 다른 욕구가 있었다.


이 문제를 좀 더 한 발짝 떨어져서 보기로 했다. 나는 '휴식공간'과 '작업공간'이 만들어지길 원했고, 이 두 공간을 각각 만들 여유(집의 면적)는 없었기에 하나의 공간으로 해결되기 원했다. 그러다 보니 작업에 필요한 테이블이 추가되고, 소파보단 그냥 의자가 작업이 더 잘되지 않을까?로 생각이 이어져 인테리어 의자까지 보게 된 것이다.


다시 한번 더 한 발짝 떨어져서 보았다. '휴식공간'과 '작업공간'을 일치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만약 일치하는 공간을 만든다고 했을 때 둘을 모두 80 이상으로 만족도 있게 가져갈 수 있는가?


내가 원하는 휴식공간은 등을 기대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었고, 작업공간은 생산성에 저해되지 않을 정도의 편안함만 필요했다.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둘의 목적과 기능을 다르게 생각하는 지금 휴식공간과 작업공간을 일치시킬 수 없다. 문제가 간결해지자 해결책도 간결해졌다.


둘 중 우선 만들고 싶은 공간을 떠올렸다. 이미 작은 방에 책상과 의자가 있으니, 등을 기댈 수 있는 휴식공간이 우선이었다. 그리고는 이미 리스트로 만들어져 있는 수많은 즐겨찾기와 스크랩한 소파들 중에서 등을 기댈 수 있는 소파를 바로 구입했다.


원형 테이블과 의자는 어떻게 되었냐고? 기댈 수 있는 소파를 써보고 필요하면 그때 추가로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상황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질 것 같아서였다. 결과적으로 10만 원 내외의 봐 뒀던 소파와 스툴을 구매했고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즐겁게 쓰는 중이다. 다리는 스툴에 올려두고, 머리까지 기댈 수 있어서 정말 정말 편하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요약하면 소파를 구매하려다 배운 건 두 가지다.


너무 많은 외부의 모습에 휘둘리지 말 것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해볼 것 (본질에 집중할 것)


'좋은 것', '예쁜 것'을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환경이다. SNS와 앱, 인터넷을 통한 집들이에서 보이는 집은 기능적으로도 훌륭하고 심미적으로도 아름답다. 그러나 마냥 좋아 보이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한도 끝도 없어진다. 나 역시 소파를 사용한 인테리어를 찾아보다 보니 원형 테이블이 쉽게 눈에 들어왔고 자꾸 보다 보니 내게도 필요할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하며 실제로 꾸며둔 모습은 너무 예뻤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내게 왔을 때 나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를 제대로 고민하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그냥 가볍게 표면적으로 떠오르는 '내가 원하는 건 이거지~' 하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왜 그것을 원하는지 반문하고 좀 더 깊은 답을 찾아내야 한다. 마치 그저 휴식공간으로 퉁쳐진 나의 첫 욕망이 사실은 '휴식공간'과 '작업공간' 두 가지가 섞여있던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처럼.


그리고 놀랍게도 바뀐 상황에서 하나의 해결책이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휴식공간으로만 생각하고 만든 이 자리에서 글을 쓰고 있으니, 휴식공간이 또 다른 작업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음이 스스로도 놀랍다.


어느 누군가는 이런 분석과 본질에 집중하는 법을 진작에 깨달아 인생을 보다 그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한참 뒷북을 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시기에 소파를 고민하다 또 하나의 인생 길잡이 규칙을 배운 것도 나름 '나 다움'인 것 같아서 기념하기 위해 글로 순간을 남겨둔다.


한 가지 또 배웠으니, 다른 많은 것들에서도 본질에 조금 더 집중해보기로 마음먹으며.

편안하기 그지없는 소파 위에서 글을 마친다. ☺️





표지

Photo by Christopher Machicoane-Hurtau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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