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계피 Sep 25. 2022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예술인은 누가 보호하지?(2)

다른 예술인들은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예술인은 누가 보호하지?" 글이 많은 호응을 얻었다. 갑작스럽게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경우, 정당한 보상과 작업물에 대한 권리가 사라지는 상황을 직면하는 게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 브린치 글을 발행한 후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작가는 자신이 강의를 줄여가며 프로젝트에 시간을 할애했으나 프로젝트가 중간에 엎어졌다고 했다. 자신은 강의에 대한 보상만을 간신히 받을 수 있었다며 나 역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 정도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작가는 자신은 아무런 보상을 받은 것이 없고 이렇게 말할수록 너만 불리해 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으나, 그 상담은 사실상 변호사를 만나도 좋을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행위에 불과하지 않다는 점은 많은 예술인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예술인은 누가 보호할까?


예술인은 대부분 프리랜서의 성향이 강하다. 고용자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프리랜서라고 하더라도 "노동 행위"가 발생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프로젝트에 작가 개인의 노동력이 개입된다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획자는 혹은 협업을 제공하는 단체나 기업은 그 노동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 혹은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함이 옳다. 그럼에도 프로젝트는 엎어진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왜 책임져야 할까.






이 일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나는 트위터에서 네이버 폼을 통해 약 일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다른 예술인들의 경험을 물었다. "프로젝트가 엎어진 예술인이라면 누구나" 설문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했으나 아마도 신변의 노출, 시간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인터뷰를 할 수는 없었다. 설문에 참여한 예술인들 중 몇 분은 글의 객관성을 위해 자신의 이름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도 좋다고 하셨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과 결이 맞지 않아 감사의 말씀만을 전하고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질문한 것은 3가지다. 첫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을 때 예술가의 상황(cf.프로젝트에 매진하기 위해 기존의 강의 3개 중 1개를 그만뒀다 등). 둘째,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때 어떤 대응을 했는 가(계약서에 근거한 나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했다 등). 셋째,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때 "당신의 상황"에 대한 보상과 "노력 및 결과물"에 대한 적절한 보상 조치가 이루어졌는가. 이루어졌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cf. 나는 기존의 강의를 포기한 것에 대한 페이를 지급받았다 등).


질문은 프로젝트가 어떤 것이었는지 보다는 프로젝트가 진행됐을 때 예술가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묻는다면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해당 답변을 한 예술가를 특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은 모두 제외하고 꼭 필요한 질문들만 꼽아 정리했다. 해당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중심으로 예술계 안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때, 예술인에 대한 보호"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 보고자 한다.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예술가들은 어떤 자세로
프로젝트에 임할까.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예술가들은 어떻게 프로젝트에 임할까? 예술가A는 "내 이름을 걸고 하나는 남기고 싶다는 욕심"으로 "전시와 작품 완성 연계 프로젝트"에서 "인쇄소에 가서 사비로 출력을 하며 경제적으로 힘들었"다고 말한다. 예술가B는 "3개월 안에 뮤지컬 곡 10곡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앨범 및 밴드 앨범 작업을 잠시 멈춘"것은 물론 아마도 아르바이트 및 생계유지에 주요한 근간이 되었던 "카페 업무"를 하는 동안에도 곡 작업을 해야 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술가C는"프로젝트에 실리는 원고를 작업"해야 했다며 본인은 "하나의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를 동시에 하다 보니 준비만 가득"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심지어 정보성 자료가 많아 "기관에 대한 정보를 며칠간 수집해 공부하며 전체적인 플롯을 아주 약식으로나마 짜 놓았습니다."라고 했다. 예술가D"생활을 위해 다니던 알바를 줄이고 프로젝트 기간과 작가님들 시간에 맞춰서 같이 활동했었습니다."라고 했다.


답변을 해 온 예술가들은 대부분의 자신의 생활 영역의 시간의 일정 부분을 줄이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사실 이것은 조사를 하지 않아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루는 24시간으로 정해져 있고 인간이 아무리 의지가 넘치는 생명이라고 하더라도 하루의 시간을 36시간으로 늘릴 수는 없다. 36시간처럼 살 수는 있으나 절대적인 총량을 바꾸지 못한다. 즉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예술가는 자신의 한정적인 자원인 시간의 일부를 투자하여 프로젝트에 노동력을 투입하게 된다.


그러다가 문제가 생기게 된다. 프로젝트가 엎어지게 되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때
예술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나의 대응 방식은 기록이다. 내 경험을 기록하고 남김으로써 어떤 기관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전달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직장이 있고 매달 20만 원의 지원금이 끊긴다고 생계가 위독할 정도로 힘들어지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아르바이트처럼 시간을 늘리고 줄이고 할 수 없으니 밤을 새 가며 작업을 했다. 7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한 달 내내 잠을 줄여가며 소설 마감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엎어진 것이다. 내가 요청할 수 있는 나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사료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노동권을 정당하게 요청할 수 있을까. 예술가A"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이 업계에서 이름난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동시에 그가 "대놓고 나 이 업계에 계속 있을 거니 내 말 들어라"라고 하는 사람이었다고도 한다. 프로젝트가 엎어진 건 프로젝트 결과물이 나오기 "1주 전에 그냥 하지 말자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예술가B프로젝트가 엎어졌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으나 "추후에 다시 추진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아 당시의 상황에 "크게 개의치 않고 지냈다."라고 한다.


예술가C담당자에게 정확한 항의를 했다. 하지만 당시 주최 측이 협동조합의 형태라 "정확히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으며 "공식적으로 민원을 제기할 창구도 마땅히 없었다"라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진솔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덧붙이기를 "특히 이 사태가 벌어진 곳이 비수도권일 경우 더욱 그런 것 같다"라고 했다. 예술가C자신이 조사 및 정보 수집 등을 진행했으나 "아직 원고를 작성하지 않아 고료도 요청할 수 없고, 조사와 공부에 대한 페이를 요구하기도 무리인 것 같아 그저 '다시는 OO조합과 일하지 않고 싶다.'라고 말한 뒤 앞으로의 협업을 거절"했다고 한다.


예술가D 역시 "특별한 대응을 할 수 없었다"며 "이전에도 (대응이) 크게 도움이 된 적도 없었고 문제가 불거졌을 때 (예술가) 당사자가 2차 피해를 보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 그곳에 손 털고 나온 게 전부"였다고 한다.


프로젝트의 진행 단계에 따라 예술가들이 입는 피해는 각기 다를 것이다. 노동력을 얼마만큼 투입했는가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요구할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일을 경험하면서 중요한 것은 "투입된 물리적인 노동력 외에도 정신적인 노동력에 대한 배상 행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적인 노동행위에 대한 규정을 대략적으로 해보자면 마음먹기라고나 할까. 자료조사, 정보전달, 계약서를 쓰기 위해 해당 업체를 방문하는 일, 프로젝트의 진행방향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일 등이 그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스스로가 예술가이기 위해서 예술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구책으로 상황을 모면해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위계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인 예술가A의 사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겠다. 예술가A는 이름난 사람과 함께 작업을 했고 그가 내 말 들어라, 라는 식의 워딩(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당 워딩이 사용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이와 같은 발언을 들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을 들어야만 했다. 예술가와 주체 측은 수직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는가. 다음에 다시 프로젝트가 시작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예술가B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제기할 창구가 없었던 예술가C의 사례도, 예술가가 2차 피해를 당해야 하는 현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예술가D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예술가의 노동력과 결과물에
대한 보상을 하는가?


예술가들은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때 당시의 상황과 노력 및 결과물에 대한 보상을 적절하게 받을 수 있었을까. 예술가A"전혀"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프로젝트를 제안한 분께 도움을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라며 "그냥 이리저리 애써가던 중 생긴 인맥이나 완성된 작업물, 텅 빈 잔고만이 남았다"라고 답했다. 예술가B는 "극단의 경제적 특성상 보상은 따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극단의 추후 다른 작품들의 음악을 담당"하게 됐다고 했다.


예술가C"담당자가 카카오톡 메시지와 5만 원권을 보내며 '제가 실수했네요. 기분 푸시고 행복한 여름 보내세요.^^ 반성할게용~'이라고 했다."라고 한다. "통화까지만 해도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는데 해당 기프티콘과 '반성할게용~' 메시지를 보자마자 정말로 화가 나서 선물을 거절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달라고 했다"라고 한다.


예술가D는 "없었던 것 같다"며 "그저 내 시간과 노력도 무의미해졌고 써 왔던 스토리와 아이템은 누가 훔쳐가 신나게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했다. 더불어 "그저 그 시간이 못 견디게 힘들고 빠져나오는 게 다였다. 거기 있다간 내 글이 더 후려쳐지고 점점 더 나만 힘들 거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예술가들의 노력과 작업에 대한 보상은 대부분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가 엎어지면서 들인 노력과 시간이 모두 무의미해지고 결과마저 사라져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프로젝트는 작품 활동이자 일종의 생계다. 나에게는 20만 원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나쁜 거지만(모든 프로젝트가 매달 지원금을 주지 않으며, 준다고 하더라도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다른 예술가들은 아닐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괜찮지만 내일의 나는 괜찮지 않을 수도 있고, 이곳에 있는 나는 괜찮지만 저곳에 있는 나는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2차 가해와 피해가 발생하여 문제가 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예술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지원사업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해당 예술가는 먹고 살 생계가 없어지고 작품 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무서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들을 친구들이 해 줬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처한 부당한 현실과 문제에 이이를 제기하자, 약속된 낭독회와 강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준 내 시인 친구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이 자를 통해 다시 한번 남기고자 한다. 이름을 남기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어 익명으로 처리하는 점은 부디 깊은 아량으로 헤아려주시기를.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술가의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생각하는가. 오로지 예술가가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주체에 대한 신의로서 작업했기에 예술가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가? "저는 카페에서까지 작업하라고 한 적은 없는대요?"라는 발화로서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일이 이렇게 되어서 아쉽습니다."라는 말이나 "제가 잘 몰라서요~"라는 말로 상황을 회피하는 것은 어떠한가.


만약 당신이 특정 회사의 차에 치였다고 가정해보자. 개인은 회사랑 이야기하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회사에 피해를 청구해야 하는데 그 회사의 대리나 팀장이 당신 앞에 나와서 "저희도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유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와 원만한 합의 하시길 바라며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의견은 존중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법적으로 당신의 권리가 적절하게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까?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부의 사례를 가지고 모두의 문제로 포장하려고 한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내 경험과 네이버 폼에 기꺼이 질문을 남겨주신 예술가분들의 이야기만으로 해당 브런치를 작성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공정하게 해결된 사례를 저에게 들려주세요. 그런 사례들이 더 많이 이야기되고 대안으로, 제도로서 예술가들에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것을 바라기에 이 글을 씁니다.




예술가가 배고픈 직업이라는 패러다임을 깨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예술가B는 본 글에 대한 기대에 이와 같은 말을 전했다. 사실 이야기를 남겨주신 모든 예술가들이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예술가가 배고픈 직업이기에 자신의 노동권과 권리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권리를 포기하거나 그것을 주장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 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예술도 노동이다. 하나의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서 점 하나를 놓고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그에 대한 정당한 보수라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는 아닐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으나 예술가들의 이야기에 내 의견을 붙여 사건을 재해석 하게 되는 경우를 최소한으로 막고자. 또 다른 2차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최대한 간략하게 글을 썼다. 부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가 이야기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예술인은 누가 보호하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