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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의 설렘 Aug 27. 2023

에라이, 오늘도 '죄다' 망했다고!!!

완벽을 벗어나 불량한 데일리 러너가 되기까지

3-4년 전 쯤에 쓴 글인데 썩히두기 아쉬워서 수정없이 그대로 발행해봅니다.






아침이다. 냉동실에 넣어둔 채식 만두를 꺼낸다. 10분 정도 찜기에 찐다. 와구와구 집어먹으며 점심엔 뭘 먹을지 이른 고민을 한다.


점심이다. 오늘도 망했다. 돈까스를 먹어버렸어! 또 왜 그랬지? 에라이, 오늘도 글렀다. 저녁도 그냥 아무거나 먹어버렸네. 포기하고 먹다보니 배가 터질 것 같은데도 계속 먹고 또 과식을 해버렸네?! 망했어.


오늘도 망했다고! 오늘도 망했고, 내일도 망하겠지. 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 일하러 가기도 싫다. 채식하려면 도시락 싸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도 않아. 아 짜증나. 어쩌면 좋지...?  핸드폰이나 하자.


아... 살기 싫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딱 저런 식으로하루하루를 보냈더랬다. 채식을 실천한 지 어언 7년 차. 그것도 비건을 지향하고 있거늘 고기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자타공인 식탐 대마왕인 나는 눈앞의 유혹을 참기 어려워했다.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참고 참아도 결국 기어코 먹고야 말았고, 그렇게 계획에 없던 것을 먹고 나면 그날이 통째로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남은 시간마저 자포자기해버렸다. 육식을 해버렸다는 스트레스와 자책감이 온 몸을 감싼 안은 채, 몇 년을 소중한 하루하루를 낭비했다.


지난 5~6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고난의 행군' 이라 말할 수 있다. '100% 비건'과 '계획한대로 달성하는 인간'이 될 수 없는 스스로를 미워하느라 많은 것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그때의 좌충우돌을 얘기하자면 지루하다시피 길어 다 적을 순 없겠지만, 거듭된 식단 변화의 실패는 '나는 뭘 하든 결국 안 되는구나'라는 결론에 다다라 나를 끔찍하게 옮아맸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어서 또다시 도전해도 '이번에도 금방 고기를 먹고 말겠지.'라며 미리 내쉬는 한숨에 숨이 막혔다. 꿈꾸면 이루어진다고, 암시한 대로 금새 고기를 먹어버리고, 자학의 굴레를 360바퀴 돌고 도는 패턴을 반복했다.



빨간약을 선택한 네오, 다시는 '모르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 비건의 세계에 입문한 것을 후회하진 않지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즐기던 때가 아쉽기도...


  무슨 목표를 세워도 作心一日(작심일일)도 지속하지 못하니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 것만 같은 느낌에 하루 전체가 좀먹었다. 당연히 일하는 데도 지장이 갔다. 일하는 동안에도 괜한 짜증과 욕지거리가 푹푹 속을 찔렀다. 모든 게 채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 같았다. 이럴 바에야 아무 감흥 없이 육식을 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빨간약을 먹고 감춰져있던 현실을 깨달은 '네오'의 신세였다.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 한 채 쩔쩔맸다.


 '부족한 의지'를 다잡고자 이따금 비건 커뮤니티에 참가했다. 거기서 본 '진짜 비건'들은 본인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에 큰 기쁨과 만족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듯 보였다. 그런 모습에 나도 저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의지를 불끈 다잡다가도, 그 마음과 상반되는 '식욕과 욕망'을 버릴 수 없가 없었다. 나는 한 마디로 '재기 불능'한 완패한 패잔병이었다. 무력감과 패배감이란 늪에서 빠져 나올 엄두도 나지가 않았다.






이제는 돈까스가 먹고 싶어질 때면 그게 고기가 먹고싶은 게 아니라 '튀김과 돈까스 소스 맛'이 먹고싶은 거란 걸 안다. 그러니 엔젤 김밥에서 '콩까스'를 파는 날이 오기를 고대할 뿐 먹진 않는다. '무언가를 깨닫고 난 후로' 아주 조금씩 어설픈 시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앞으로 한 발짝, 다음날은 두 발짝 뒷걸음치며 꾸준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현재에 이르러선 자신있게 '비건을  지향한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나는 100프로 비건을 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이걸 일찍이 인정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도 [나는 왜 Perfect한 비건이 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신념대로 살지 못하고 머리와 입이 따로 노는가]라는 이 두 가지 고민으로 그 긴 시간을 괴로워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완벽하지 못한 나를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라는 것을, 코가 깨지고 뒤가 깨지는 경험을 하고나서야 깨달았다.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이 '완벽하지 못할 거라면 아무것도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무력함'으로 표현된 거라는 걸 알고 나서야 조금씩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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