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로 한말에 책임지려니..

우리집에 머물게 된 장기 손님

by 행복한 찌질이

사람을 사귀는 것은 쉽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해외 생활을 시작 하면서 점점 뼈저리게 느낀다.

한국에서는 오래 알던 친구들이 있었고, 오랫동안 지내면서 편한 친구들이 걸러졌다. 회사나 학교때문에 저절로 알게 되고 시간을 보내면서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해외에 나와보니 인간관계도 맨땅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마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 땅에 신생아가 태어난 것 처럼..


나는 파티 걸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의 소유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처럼 같은 그룹이나 조직에 소속되어있으니깐 안 맞아도 억지로 맞추면서 친해지고 싶지고 않았다. 그런 나이기에 만나게 되는 인연의 수는 제한 적이었다. 관계를 지속하게 되는 인연의 수는 더욱 제한적이고.


그런 나에게 Z는 귀한 친구 그리고 귀여운 동생이었다. Z를 알게 된건 어학원에서 부터. 그리고 대학원까지 같은 과을 다니며 많이 친해졌다. Z는 자기 또래 친구들보다 좀 더 수수하고 순박했다. 가끔은 답답했지만 그녀의 선한 마음씨를 알기에 항상 언니 처럼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 어쩌면 실제로는 Z가 나를 더 도와주었을 수도 있다. 특히 대학원을 들어가고 나서. 늦깍이 학생에다 우리과 석사생 중에 한국인은 나 하나 뿐이라, 처음에는 녹아들기 힘들었다. Z는 같은 중국인 친구들을 금새 사귀었는데, 그 친구들한테 받은 정보와 자료를 나에게도 항상 공유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Z의 친구들과도 어울리면서 덜 겉돌 수 있었다.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나는 Z에게 선심 쓰듯 미리 호의를 베풀었다. 어쩌면 집에 방이 하나 더 생긴 것을 자랑 한 걸 수도 있었다. “혹시 무슨일이 있으면 우리집으로 와. 저 방 너 쓰게해줄께” 신랑의 허락도 없이 나의 호의 어린 발언은 그렇게 둘 간의 우정을 더 돈독히 해주었었다.


유산을 하고 Z를 비롯해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러다 몸도 마음도 어느 정도 회복했던 어느날, Z에게서 SOS 요청이 왔다. 자기가 살고 있는 기숙사에 코로나 확진자가 있단다. 그래서 너네집에서 자기가 당분간 지내도 되느냐. 아니면 다른 친구 중에서 방 내놓은 친구가 있다면 소개해주라. 나는.. 즉각적인 판단으로 일단 급한 대로 있으라고 다시 호의를 베풀었다. 얼마나 오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예상치 못하게도 나의 유산은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유산 선고를 받은지 몇주가 지났는데, 약물배출이 100 프로 성공 하지 못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직 임신의 흔적이 몸에 남아있고, 나는 며칠 동안 다시 약물 배출을 시도 해야 했다. 그 약물 배출을 실패하면 나는 수술을 받아야 할 것이다. 몸이 안 좋으니, 손님이 귀찮아지고.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과 귀찮은 진심은 나의 양심을 괴롭혔다. 끝나지 않은 유산 과정과 더불어 적잖은 심리적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Z는 뻔뻔하지 않았다. 그녀는 예전에 내가 지나가듯 했던 말을 기억했던 것이다. 호의와 별도로.. 집에 월세가 비싸니 방하나를 월세를 줘서 경제적인 부담을 덜고 싶다는 말. 그녀는 월세를 주고 한달 반 정도를 머물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한달 반은 너무 길었다.. 그리고 친구한테 월세를 받을 수는 없다. 나는 월세를 거절하고 손님으로 있을 것을 부탁했다. 어쩌면 이것은 오래 머무는 것에 대한 거절이었다.


그녀가 온지 일주일이 다되어 간다. 아직 그녀는 이사갈 곳을 찾지 못했고, 코로나가 무서운 그녀는 지내던 기숙사에 돌아가는 것은 꿈도 못 꾼다. 나는 그녀에게 마냥 잘해주고 싶지만, 그래도 차마 말하지 못했다. 집 구할때까지 얼마든지 있으라고. 부모님이 여행 오셨을 때도 불편했는데, 아무리 선한 친구라도 집에 남이 있으니 신경 쓸게 이만 저만이 아니다. 신랑은 퇴근하고 런닝 바람으로 쇼파에 누워 티비를 보지 못함에 불만이 생기는 모냥이다.


나는 이 선한 Z와의 인연을 망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친구가 빨리 지낼 곳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 분명 티가 날 것이다. 진심은 티가 나기 마련이니. 머쪼록 친구가 이사갈 때까지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리도 명심해본다. 호의롭게 한말은 지켜지는 게 더 어렵다고. 지켜지지 못하면 관계를 더 망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