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성향의 친구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다.

코로나 시즌의 작은 옥토버페스트

by 행복한 찌질이

나이가 들면서 비슷한 성향의 사람하고만 친해지려 한다. 맞추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우니깐.

해외 나와서 지내기 시작한 첫해는 그런 모든 고정 관념이나 습성이 무너져 버렸다. 그래서 매우 정신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평소같으면 안 친해졌을 것 같은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A도 그중 하나이다.

어학원 첫날 바짝 긴장한 나는. 마치 새학기 새로운 반에 들어가서 나에게 관심 있는 친구가 있을까 했던 그 옛날 국민학생의 마음으로 얼어 붙어서 앉아있었다. A는 특유의 화통함으로 어학원 모든 친구들에게 대화를 건냈고. 그런 A를 나는 아 저런 성격 부럽다. 하고 쳐다보며 친해지기 어렵겠지 싶었다. 하지만 신기하게 A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서 어학원을 가다가 오다가 종종 마주치며 대화할 기회가 많았고, A는 참을 성 있게 나의 부족한 영어를 끝까지 그리고 온전히 알아 들어 주었다.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어학원 수업이 끝난 후 거의 매일 점심을 같이 먹었다. A는 종종 다른 친구들과의 파티도 마련을 했고, 평소의 나라면 참석 안했거나 뻘쭘할법 할 자리들을 즐기며 참석할 수 있었다. 경험의 폭을 넓혀준 A가 참 고마웠다. 다른 성향의 사람과 친하게 되면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도 있겠구나 새롭게 깨달은 첫 해였다.


어학원 끝나고 나서 A와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대학원을 그리고 A는 다른 학교에서 MBA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더이상 일상의 매일을 공유할 수 없었다.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고, 점점 A의 단점도 눈에 들어왔다. 장점으로 보였던 직설적인 화법이 가끔은 불편했고 예의 없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같은 아시아인이었지만 미국에서 10년 넘게 살았던 A는 좀 더 개방적이었고, 나를 답답하고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A는 나이 차이가 훌쩍 있는 독일 아저씨와 만나고 바로 아이를 가졌다. 그러면서 점점 멀어졌다. 아저씨와 나는 세대 차이뿐 아니라 문화적인 배경도 너무 달랐고. 그 아저씨의 농담에 난 단 한번도 웃을 수 없었다. 한국 아저씨 농담과는 질적으로 다른.. 웃어줄 수도 없이 오해할 법한 내용에 기겁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A와 그리고 그 아저씨와의 만남의 횟수를 줄이며,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았다.


A와 내가 같이 어울려 지내던 그룹 친구들이 모두 신기하게도 오랫동안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보통 어학원이 끝나면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데. 우리는 다 남아있었다. 그래서 연락을 지속했고,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1년에 2~3번은 모였다. 친구들은 A와 내가 예전처럼 붙어다니지 않음에 의아해 했다. 대놓고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확인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끔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가 요즘 A와 나는 다시 연락을 자주 한다. 내가 유산을 할 즈음해서 A와의 약속이 있었고, 약속을 취소하는 이유를 설명하다 보니 사정을 말하게 되었다. A는 본인의 유산 경험을 공유 해주며 2주 내내 몸보신 할 음식들을 가져다 주었다. 유산 이후 집에만 있으려는 나를 차로 데릴러 와주고 근교 맛집을 데려가 줬다. 그런 A를 보며, 나는 A가 아이를 연달아 가지고 육아 하느라 힘든 시기 챙겨주지 못함에 미안함 맘이 들었다. 이제는 A 남편이 된 그 독일 아저씨와의 만남도 생각보다 덜 불편했다. 내가 서양 문화에 익숙해져서인지. 그분도 나도 이제 더 나이가 들어서인지.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알아온 시간 만큼 이해도가 깊어진건지.


A는 여전히 활달하고 사교적이다. 아이의 생일을 기념으로 부부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작은 파티를 열었고 우리도 초대 받았다. 코로나 시즌이니 20명을 넘지 않도록 인원을 선발했다고 한다. 아직은 파티에 참여할 마음의 여유가 없지만, A가 고마워서 참석했다. 그리고 A를 통해 다시 한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평소에 대화 나누기 힘든 나이가 많은 부자 아저씨들. A가 직접 준비한 옥토버 페스트 전통 음식들. 이런 걸 직접 준비할 수도 있구나. 나도 손님이 오면 시도해봐야지 싶다.

A는 자리 배정까지 미리 해놓았다. 남편과 A를 기준으로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로 테이블이 나누어진 것은 조금 웃펐지만 대화가 어색하지 않도록 고려한 모양이다. 내 옆자리는 시험관을 7번이나 하고 아이를 가진 일본 언니를 앉았다. 나보다 오래 난임으로 고생한 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라는 그녀의 배려심이었다.


파티는 즐거웠다. 하지만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노력을 해야하는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파티 후 피로도는 상상 이상이다. 낯선 음식들을 먹어 보아야 입에 맞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알수 있듯이, 사람도 세상도 경험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경험이 주는 긴장과 리스크는 크지만.


나에게 아직도 A는 마냥 편한 친구가 아니다. 친한 것과 편한 것은 다르다. 성향이 다르기에 예측하기 힘든 일들이 생기고. 계속 경험 하지 못했던 세계로 데려가 주기 때문에 긴장하고 있게 된다. 그럼에도 A는 어쩌면 정체될 수 있는 한 우물 안에 살고 싶은 나에게 계속 신선한 자극을 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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