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삶의 무게를 나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지만.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by 행복한 찌질이

고통이나 슬픔을 비교할 순 없다. 어디까지나 각자가 느끼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이니까.

유산을 처음 하고 나서 주변에서 위로의 차원에서 건냈던 말 중에 목으로 삼키기 힘든 말들이 있었다. 나는 두번이나 했어, 그래도 너는 초기에 한 거잖아, 시험관 많이 하고도 유산한 사람들은 더 힘들꺼야. 내가 더 힘들고 덜 힘들 지를 어떻게 정량화해서 평가 할 수 있을까. 그런 얘길 듣고 나는 나의 아픔을 작게 판단하고 받아들어야 하는 것인가. 누군가에게는 잠깐 스쳐지나가듯 아프고 말 법한 에피소드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이 휘청 거릴 정도의 상황이 될 수 있음을. 함부로 평가해서 누군가의 거대한 아픔을 작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말자.


그런데 이렇게 비교할 수 없는 슬픔, 고통에도 번접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모든 종류의 카드를 다 누르는 카드계의 조커 같은. 우리의 mortality를 일깨우는. 또는 다른 어떤 일상도 유지 못하게 하는. 죽음, 불치병, 암말기 같은.. 단어만 들어도 처절하게 무거워지는 이런 것들 앞에서는 나의 유산으로 힘들었다 말하기 미안해 진다.


계속 병원에서 지내는 친척 동생이 있다. 그 아이는 다른 동생들 중에서 보기에 유독 이뻤다. 어릴 때부터 장난기 많고 착했던 동생은 청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귀여웠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호리호리하고 깎아놓은 밤톨 같은 동생을 어찌 안 이뻐하리. 그런 동생이 대학 졸업하기 전에 어느 날 갑자기 뇌에 종양이 생겨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몇년을 걸쳐 종양은 또 재발 되었고, 동생은 재수술을 받았다. 멀리 살아서 가끔 볼때마다 체중이 늘어나는 동생을 보며 놀랬지만 여전히 동생은 선하고 장난끼 많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지만 여전히 이뻤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또 종양이 재발 되고, 반복되는 수술이 뇌에 부담이 되었나보다. 수술이 끝난지 몇달이 되어가지만 아직 퇴원을 못하고 있다. 병원에 지내고 있는 그 녀석은 이제 화장실도 밥도 몸에 연결한 호스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고 한다. 최근 부쩍 악화되었다는 그 녀석의 소식에 나는 멀리 있지만, 마음이 아프다. 말은 못하지만 들을 수 있을 거라는 말에 보고 싶다 전해 달라 부탁해본다.


한창 청춘인 그 녀석의 오늘 하루가 참 소중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그 녀석의 하루가 삶을 살만큼 산 어떤 노인의 하루보다 더 갚어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녀석이 오늘도 누워서 말도 못하고 하루를 버티는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슬픔에 또는 무기력함에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을 것만 같아서 안타깝고 화가 난다. 얼마 전 내가 그랬던 것 처럼. 각자의 삶의 무게는 물론 모두 무겁고, 버겁다. 너의 삶의 무게는 그 누군가의 것보다 가벼울 테니 버티고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 우리가 어쩌면 허망하게 보내고 있는 이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고 간절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현재를 바라보고 부딪치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녀석도 훌훌 털고 일어나서, 병원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