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이에게 다가오는 불혹.. 앞자리가 바뀌어도 나는 나다
친하게 지내는 그리스 남자애가 얼마전에 30살 생일을 맞이 했다. 이제 곧 불혹을 맞이하는 나이기에 그의 젊음이 부러웠다. 아 내가 저 나이면 철도 씹어 먹겠네.
그런데 난 정말 저 나이때 철도 씹어 먹었는가?
어릴때부터 이민자 생활을 하고 일을 일찍 시작해서 그런지. 아니면 독립심을 중시하는 문화적 차이때문에 그런지. 나때의 서른과 다르게 그 그리스 아이의 서른의 모습은 벌써 성숙하고 어른 스러워 보인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어떤 것을 더 경험해 봐야 할지. 헤아리는 청년이다.
사춘기는 수능 공부로, 20대 초반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20대 후반 부터는 야근으로 모든 시간을 헌납했다.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등 대학 시절엔 나름 또래보다 경험을 늘려보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나는 우물 안에 있었던거 같다. 어느 정도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그 나이 대에 가야할 길”을 착실히 가느라 어쩔 수 없기도 했다. 해외 나와서 또래나 더 어린 (특히 서양) 친구들과 잠깐만 얘기해보면, 나의 좁은 관심사나 적은 경험이 스스로 느껴진다. 어쩌면 무엇이든 자신 있게 얘기하는 성향 차이 일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영어를 잘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그저 그런 나보다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학원 친구들과 놀다가 각자 가장 모험을 해본 경험을 얘기해보기로 했다. 나는 멘붕에 빠졌다. 내가 모험을 해본 적이 있기는 했던가.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 평소의 나의 보수적이고 범생이 이미지를 강화하고 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하나도 떠오르는 일화가 없었다. 나보다 훌쩍 어린 친구들은 이것저것 서로 얘기 하려고 난리다. 나홀로 여행, 히치 하이킹, 대마(;; 네덜란드에서 합법적으로 경험했다지만 알 수 없지..).. 이혼..(머 이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건 아니다)
난 결국.. 결혼이라 말했다;;
어느 정도는 말이 된다 생각한다. 남과 평생 살 가족이 되는 거니깐..
“잘 하는 게 머예요?”
놀러왔던 시동생이 농담 반 진담반으로 물었다.
하마터면 “공부”라고 대답할 뻔 했다.
나는 분명 바쁘게 열심히 그리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잘 살아 왔는데,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요리도, 수영도, 자전거도, 악기도, 운전도.. 그리고 잘 아는 분야도 없다. 미드 보기를 좋아한다지만, 감독이나 배우 혹은 어떤 배경에 대해 깊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런 내가. 불혹이 다되어서야 이것 저것 다 경험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모험 아닌 모험도 한다.
예를 들어서.. 대형견을 입양하기.. 한국에서의 나였으면 아무리 원해도 이성적 판단 하에 포기 했으리라. 지금은 없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의 소중한 가족이지만, 입양하고 초반에는 한참을 후회했다. 만류 하던 주변 사람들은 너나 없이 그럴 줄 알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니?
시험관 시술을 통해 쌍둥이를 염원하던 나에게 해준 친구의 질타다. 고난의 길이라며 만류 했다. 내가 애를 안 키워봐서 모르겠다 하니 저리 말했다.
그리고 친구 Z가 집을 구할 때 까지 우리 집에 머무르라도 허락했다는 얘기를 듣고 또 다른 친구가 그건 무리한 결정이라며 경고했다. 친구들이 잠깐 여행 와서 지내고 간 거 이외에는 남이랑은 같이 살아본 적 없는 나이기에 그렇게 불편할지 상상이 안된다고 하니. 또 저리 말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보면 안되나?
똥인지 된장인지 많이 찍어먹어봤어야 나중에 안 찍어 먹어봐도 구분 할 수 있다고 생각 한다. 나는 안타깝게도 그리 못하고 살아와서. 이제라도 찍어 먹어보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불혹의 나는 어쩌면 스물의 나보다 회복력도 느리고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가 딸리겠지만. 가야할 길을 고민 없이 성큼 성큼 나아갔던 범생이 삶의 대가라고 생각하리라. 이제는 오래 걸려도 다른 길은 머가 있는 지, 어떤 길을 어떻게 갈지 고민 하며 가리라. 쉰이 다가올 즈음에는 잘하는 게 무엇인지. 인생의 가장 큰 모험이 무엇이었는지 같은 질문들이 힘겹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