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강아지 똥구멍에 걸린 스투키
논문을 쓰느라 앉아 있다. 나이 먹어서 이렇게 오래 앉아서 지적 산출물을 만든다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다. 허리가 아프고 머리가 빠질 지경이다. 아.. 내가 왜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까. 현타감에 마음이 울적해진다. 그러다가 발 가까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어 의자 아래를 내려다본다. 우리 집 강아지 녀석이 내 발에 얼굴을 기대고 눈을 반쯤만 감고 자고 있다. 이 녀석을 보니 기분이 풀린다.
사실 이 녀석의 주된 역할은 마음의 평안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 갓 1살이 된 우리 집 플랫코디드 리트리버는 양육을 해본 적 없는 나에게 생명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인내를 필요한 일인지 매일매일 알려준다. 사춘기를 겪는 미성년의 질풍 노도가 부모에게 얼마에게 힘겨운 시련인지 나는 이 아이를 통해 간접.. 아니.. 직접 경험을 하고 있다.
이 녀석을 입양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과연 내가 같은 결정을 내릴까?
며칠 전 산책 중에 똥 싸기가 힘들어하는 녀석 때문에 진땀을 흘렸다. 똥구멍에 먼지 모르겠는 잡초 같은 것이 걸려서 못 끊어(?)내는 것이다. 똥을 싸는 특유의 포즈를 하고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괴로워하는 녀석이 안쓰럽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내 손에 똥 봉지를 끼고 직접 끊어 주기로 했다. "깽!!" 아팠는지 이상 했는지, 똥을 뽑아낸 순간 녀석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마저 더 싸려 했지만, 잡초가 더 나오면서 또 못 끊어냈다. 이번에도 내가 손으로 도와주려 하자 이제는 나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똥을 끊어주려는 나와 똥을 똥구멍에 달고 다니며 도망 다니는 그 녀석의 실랑이가 한참 되었다. 남들이 보던 말던, 진땀을 흘리며 녀석을 잡아 마무리하였지만, 가만히 있지 않는 녀석 탓에 깔끔하게 다 제거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녀석을 집으로 간신히 데려가서 남편과 2인 1조가 되어서 잡고, 제거하고. "도대체 뭘 먹은 거야 이 녀석은?" 늘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주변에서 머무는 녀석인데, 그 날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우리를 피해 다녔다. 안쓰러운 이 녀석을 볼 때마다 우리는 계속 의아했다. 도대체. 멀 먹었길래?
범인은... 스투키였다. 자려고 누워보니 침대 옆 탁자에 한 주먹 정도 되는 흙이 떨어져 었다.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스투키 화분이 반이 비어있다. 말라서 죽어가는 노란.. 얼핏 보면 잡초 같은 이 스투키가 많이 낯이 익었다. 아까 내가 저 녀석 똥구멍에서 뽑아주던 거랑 똑같아! 어이가 없어서 신랑이랑 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웃었다. 이거였구나. 이걸 먹고 그 난리를 쳤어. 우리가 외출한 사이에 이걸 먹었어, 이 녀석이.
항상 말썽꾸러기지만, 그래도 우리가 외출했을 때 집안 물건을 건들지 않는 줄 알았다. 우리의 착각이었다.
얼마 전에는 브리더의 권유로 눈 검사를 하고 마취가 필요한 관절 x-ray를 찍었다. 눈과 관절이 이 품종이 유전적으로 약한 부분이어서 성인이 되기 전에 이 개체가 어떤지 한 번 검사를 해두는 것이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지만, 자그마치 60만 원가량의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나도 신랑도 최근 5년간 건강 검진을 못했는데.. 이 녀석은 호강이다.
유럽에서는 강아지를 키우는 것을 럭셔리 취미라고 한다. 개 사료, 개 장난감, 개 간식, 개 세금, 병원비, 건강 보험, 손해 배상 보험.. 지출이 생각보다 많다. 게다가 나 같은 초보가 강아지를 키우려면 강아지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
산책을 시키다가 이 녀석을 잠시 잃어버린 적이 있다. 주택가에서 떨어진 공원에서는 한 번씩 줄을 풀어 주는데, 그날따라 다른 강아지를 보고 흥분도가 너무 높아서 통제가 안 된 것이다. 녀석을 찾기까지 30분 동안 너무 아찔했다. 이 녀석이 없이 살 수 있을까? 녀석을 찾고는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을 입양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과연 내가 같은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다.
이 녀석과의 추억이 없던 그 순간의 나에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다. 아이를 낳는 것과 또 별도로 개와 같은 생물체를 집안에 들이는 것은 기존의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그에 대한 책임이 어마어마하다고.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를 감수해야 한다고.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지금은 이 녀석 없이 살 수 없으니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살 것이다.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녀석 덕에 삶이 항상 활기 있고 다양해진다. 하지만 누군가 새로 입양을 한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입양하기 전에는 정말로 신중해야 한다고.
특히 플랫 코티드 리트리버. 이 품종은 강아지 세계의 피터팬이라 한다. 늙어도 철 들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