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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19. 2018

스타트업에서의 실행력에 대하여

본질은 스피드에 대한 병적인 집착

이제 2019년이면 스타트업을 시작한 지 5년 차가 된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지난 4년간 가장 많이 성장한 부분은 아무래도 실행력, 그중에서도 스피드라고 생각된다. 공동 창업한 4명이 사업 초기부터 병적으로 집착했었던 스피드가 결과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됐는지 복기해 본다.



1. 사업기회는 원래 논리적이지 않다. 그냥 빨리 해봐야 안다

사회생활을 할수록 점점 놀라게 되는 건 세상엔 똑똑한 사람도, 돈 많은 사람도, 그리고 이 모든 걸 갖추고도 성공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많이 가질수록 더 강렬한 거 같다)이 많다는 사실이다.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사업기회가 있다면 이미 이런 사람들이 기회를 다 잡았다고 보면 된다. 문득 떠오른 사업 아이디어가 대박이라고 흥분해도 해보면 99%는 안 된다.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는 논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신념, 치열한 내부 논의를 통해 쉽게 바꾸지 않을 대전제에 대한 공감대만 갖고서 그냥 빨리 해봤다. 오프라인 비즈니스임에도 불구하고 오픈까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마켓 타이밍을 잡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2. 다음에 필요한 스텝을 판단하기 위한 최고의 전략

대개 사업계획을 세우면 시장에 A라는 문제가 있고, B 타겟층을 대상으로, C라는 솔루션을 출시하면 괜찮은 반응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열 가지 액션 아이템을 즐겁게 뽑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상상의 고객을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열심히 기획해보지만, 실제 처음 한두 개를 도입해보면 시장에 그런 니즈는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될 뿐이었다. 정작 '이게 말이 될까?' 싶은 것들이 초반에 소위 early adopter들의 관심을 끌고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여감에 따라 점점 mass market으로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새로운 시장에서는 우리가 정의한 문제가 실제로 문제가 아닐 수도, A가 아닌 A’일 수도 있고, 타겟고객층도 B가 아닌 B’ 일지도 모를 일이다. 가정에 가정을 붙여서 책상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건 쓸데없는 상상의 연속이자 자기만족일 수 있다. 일단 해보고 당장 발생하는 문제들, 실제 확인된 니즈와 이슈들을 얼마나 빨리 잘 대응하느냐가 결과적으로 최고의 전략이 되었다.


인스타그램 창업자 Kevin Systrom은 스탠포드 강연에서 전쟁상황에서는 일단 움직여야 다음에 뭘 해야할지 알게 된다는 말로 빠른 실행의 중요성을 강조


3. 빠른 실행으로 변화를 만드는 게 최고의 사업적 성과

업계에 오래 있다 보니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크게 두 가지 타입이 있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소식들을 업데이트하고 다음에 어떤 걸 할 계획인지 신나게 자랑하는 타입과 왜 그동안 성과를 만들지 못했고 얼마나 운이 없었는지 변명하느라 바쁜 타입. 정작 열심히 한 건 전자인 거 같은데, 그렇게 그렇게 누적되면 1-2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게 된다.


사업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드는 건 너무도 어려운 일이고, 그런 변화가 누적되면 사람들은 혁신이라 부른다. 될 때까지 빠르게 이것저것 시도해보지 않으면 좀처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우리가 그냥 ‘일을 한다’, ‘일을 잘한다/못한다’라고 추상적으로 얘기하지만 그 결과 어떤 게 바뀌고,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는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을 했는데 A는 100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B는 1의 가치를 만드는 일도 자주 봤다.


4. 새로운 분야에서의 시행착오는 돈이 되는 지식

스타트업이 뛰어든 분야는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거나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들이다. 이걸 직접 해보고 고객의 반응을 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통해 ‘돈 되는 지식’을 얻게 되고, 이를 짧은 시간에 많이 얻기 위해서는 빨리빨리 해보는 수밖에 없다. 인터넷에 공개되어있는 정보 중에 돈이 되는 지식은 없다. 지금 하고 있는 비즈니스에서 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은 대부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당황한 순간들이 그 계기가 되었다.


다소 민감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심지어는 법적인 규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분야일수록 기존의 법과 충돌하거나 아직 법적으로 정리가 잘 안된 부분들이 있기 마련인데, 편법으로라도 피해 갈 수 있다면 빨리 피해서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요새 핫한 ‘타다’ 역시 법률문제로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비즈니스 맥락에서는 후발주자와 좁히기 힘든 격차를 이미 벌리고 있다고 본다.


5. 뜬금없이 빠른 실행만이 합리화라는 괴물을 이긴다

인간은 합리화를 통해 적응하는 능력이 있고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영원히 불행한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러나 사업에 있어서 합리화는 빠른 실행을 막는 최악의 적이다. 대표적인 예들은 다음과 같은 말이 붙는 경우


- A만 충족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데 >> A가 충족돼도 안 한다

- 좀 더 결과를 보고서 판단해보는 게 좋겠다 >> 결과를 보고서 또 다른 결과를 보고 싶어 한다

- 지금 당장은 리소스가 부족하니 다음에 생각하자 >> 잊어버린다

- 일단 공부를 더 해보자 >> 공부만 계속한다

- 이건 원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거 같다 >> 영원히 해결 안 된다


그렇게 합리화를 하다 보면 당장 마음이 편해질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바뀌는 건 없게 되고 시간만 흘러간다. 본능적으로 이 타이밍에 이거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면 분명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회사가 커지면서 작은 사업처럼 빠르게 실행해야 할 영역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개는 사람이 많아지면 실행 속도도 느려지기 마련인데, 위와 같은 이유들을 생각해 볼 때 스피드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덕목이라 스스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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