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행사는 이제 그만.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행사는 줄이기도 어렵다. 원래 일이라는 것이 시작도 어렵지만, 했던 것을 줄이는 일은 더 어렵다. 줄이겠다고 하면 해당 행사와 관련된 지역이나 단체가 거세게 반발한다. 그러니 행사는 늘기만 하고, 줄이기는 늘 ‘다음에 논의할 일’로 밀린다.
누가 봐도 손해처럼 보이는 축제 증가의 메커니즘이 유지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구조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성과’로 승진하고, 누군가는 “우리 지역 대표 행사 몇 개”를 치적 목록에 올린다. 행사는 유권자에게 일일이 인사하지 않아도 사람을 모아주는 편리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행사의 양적 확대는 예산 낭비임과 동시에 공무원의 삶을 잠식해 나간다. 많은 사람들은 “주말에 하루 이틀 정도 행사 도와줄 수도 있지 않냐”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주말이 매년, 매달, 반복해서 빼앗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1년을 기준으로 주말 근무를 계산해 본 적이 있다. 시 단위로 진행되는 큰 행사에 최소 5일 이상, 폭우·폭설 등 자연재난과 관련된 비상근무로 5일 안팎(재난 관련 부서는 이보다 훨씬 많다). 여름 폭염과 겨울 산불 비상근무로 5~6일, 당직 근무로 2일, 부서 행사와 각종 선거·야유회 합치면 대략 3일 이상. 이것들을 모두 더하면 1년에 주말 출근만 20일 안팎이다.
행사가 늘어나면 여기에 2~3일이 더 붙는다. 주말 출근 구조를 줄여도 모자랄 판에, 늘리는 쪽으로만 간다. 공무원에게는 당연히 과부하가 온다. 물론 주말에 나와 일하면 초과근무 수당을 주거나 ‘대체휴무’를 준다. 겉으로 보기엔 합리적인 보상처럼 보이고, 기관은 응당 휴식권을 보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체휴무의 맹점은 대체휴무를 쓰는 순간 남은 평일의 업무 강도는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주 5일에 나눠하던 일을 주 4일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체휴무는 마음 놓고 쓰기 어려운 휴무이기도 하다. “업무가 바쁜데 꼭 쉬어야 하냐”는 시선을 보내는 간부도 있고, 저연차 직원 입장에서는 ‘쉬겠다고 했다가 찍히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따라온다. 눈치만 보다 대체휴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상 구조 자체도 문제다.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을 일해도 대체휴무는 똑같이 ‘하루’다. 8시간을 일해도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하루. 네 시간의 추가 노동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공무원은 봉사하는 직업”이라는 말이 그 공백을 덮는다. 행사 주관 부서 직원들은 행사 전날 설치를 돕고, 행사 당일에는 더 일찍 나와 더 늦게 들어간다. 야간까지 진행되는 행사가 늘어나면서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자리를 꼭 지키라”는 지시도 나온다. 억울해도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
결국 늘어난 노동은 대체휴무로 상쇄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250일 동안 250일 치 일을 했다면, 지금은 행사·비상근무·행사 차출 등으로 270일 치 일을 250일 안에 몰아넣는 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가 20일 분량의 노동”이 기존 근무일에 그대로 덧씌워져 있지만, 대체휴무라는 이름 아래 눈 가리고 아웅이 된다. 각종 행사의 인력 동원의 비효율성과 관련하여 젊은 직원들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2025년 6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에서 ‘경남 청년 공무원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30대 청년 공무원 2,163명이 참여했고, 제도 개선이 필요한 노동환경 문제 11개 항목 가운데 최대 3개를 복수 응답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1순위는 “각종 비상근무 줄이기”(61.3%, 1,326명), 2순위는 “각종 행사 및 행사 동원 줄이기”(50.1%, 1,084명)였다. 젊은 공무원들이 체감하는 가장 큰 문제 두 가지가 비상근무와 행사 동원이라는 뜻이다. 노동조건을 악화시킨다고 느끼는 이유는 단순하다. 행사에 차출되어 나가서 공무원이 하는 일이 “공무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라는 질문에 대부분 ‘아니요’이기 때문이다.
담당 부서에서 행사를 직접 기획·운영하는 일은 나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타 부서에서 지원 나오는 인력의 역할은 대부분 교통정리, 노점상 단속, 주차 안내, 현장 통제, 간단한 홍보와 안내 정도다. 충분히 민간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공무원을 동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12시간 일을 시켜도 8시간치 비용만 들이면 되기 때문이다. 12시간 노동을 시키고 8시간짜리 대체휴무를 부여하면 되고, 그 대체휴무는 눈치 속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비슷하다. “인원 동원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그래도 시민을 위한 행사인데 이해해 달라.”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나 또한 시민을 위한 공적 행사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현장에 나가 보면 알 수 있다. 행사는 활기가 떨어지고, 관광객보다 공무원과 기관·단체 관계자가 더 많아 보이는 행사도 적지 않다.
동원 최소화를 이야기하면서도, 행사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실은 쉽게 말하지 않는다. 축구 경기가 많아질수록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이 축구팬이 아니라 FIFA와 스폰서인 것처럼, 지역 행사가 늘어날수록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다.
행사의 무의미한 양적 확대는 공무원을 소모하고, 예산을 소모한다. 그리고 그 비용과 피로는 결국 시민에게 돌아간다. 행사 자체가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경기 수를 조절하지 않으면 축구라는 스포츠 전체의 매력이 떨어지듯, 행사의 개수를 조절하지 않으면 행사의 전체적인 매력이 떨어진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잘”이다. 시민이 다시 오고 싶어 하는 행사, 공무원이 사람답게 일하면서도 준비할 수 있는 행사, 예산 사용의 설득력이 있는 행사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우스갯소리로 보았던 기장군의 ‘기장 수선행사’, 공주의 ‘프린세스 행사’, 고성의 ‘고성 지르기 대회’, 거창의 ‘거창하게 말하기 대회’ 같은 풍자가 언젠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그 행사는 과연 시민을 위한 행사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많은 행사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일까. 행사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과, 가장 많은 돈을 벌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당연히 피해는 시민과 공무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