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근무의 대응방식은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가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얼간이 윌슨』에서 이렇게 썼다.
“10월은 주식 투자에 특히 위험한 달 중 하나다. 나머지 위험한 달은 7월과 1월, 9월과 4월, 11월과 5월, 3월이다. 그리고 6월과 12월, 8월과 2월도 있다.”
1년 내내 주식 투자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없다는 말을 냉소로 감싼 문장이다. 나도 지자체에서 10년 가까이 일해 보니, 이 농담이 마냥 웃기지만은 않다. 지자체에서 일하는 동안 편한 달이 한 달도 없다.
내 생각엔 11월이 가장 나쁘다. 사람들은 11월에 단풍을 떠올리지만, 공무원은 11월부터 시작되는 산불 비상근무를 떠올린다. 산불 비상근무는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이어진다. 겨울과 봄은 건조하고 바람이 많아 산불 위험이 높다. 그래서 비상근무를 선다. 우리나라 산불은 대개 겨울이나 봄에 난다. 2025년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았던 경북 산불, 산청·하동 산불도 그 시기에 발생했다.
겨울에 눈이 많은 지역은 폭설이 내리면 제설 작업도 잦다. 도로를 통제하고 블랙아이스를 확인한다. 수도관 동파 여부도 챙긴다. 기나긴 산불 비상근무와 제설의 계절이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이 온다. 여름엔 비와 바람으로 비상근무가 많다.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국지성 폭우, 태풍, 강풍 피해가 잦다. 비가 오래 오면 직원들은 여름 내내 장화를 신고 재난 현장을 누빈다. 수해 지역은 주민들의 삶이 무너진 자리다. 공무원들은 그 자리에서 주민을 위로하고 현장을 정리한다. 수해 복구는 물리적 복구만이 아니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비는 며칠이면 그치지만, 복구는 집과 일터, 마음의 상처가 회복될 때까지 이어진다. 재난은 짧고 복구는 길다. 더디다. 길게 이어지는 수해 복구는 몸도 마음도 닳게 한다.
특히 2025년 여름, 산청군의 수해 피해는 심각했다.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 복구 상황을 확인할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몇 달 전 산청은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한 지역에 이 정도 재난이 겹치는 경우는 드물다. 대통령은 피해 상황을 살피고, 빠른 시일 내 주민들의 삶이 복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재난을 겪은 주민들도 힘들었지만, 복구를 맡은 군청 직원들도 힘들었다. 일상 업무 위에 복구 업무가 덧씌워졌다. 산청에서 일하는 분에게 들으니, 그 시기엔 퇴근하지 못하고 일을 이어 간 공무원이 많았고, 다들 지치고 힘들었다고 했다. 폭우 비상근무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여름엔 비만 있는 게 아니다. 몇 해 전부터 폭염 비상근무도 생겼다. 이제는 더워도 지자체와 주민센터가 움직인다. 비가 오면 비로 비상, 더우면 더위로 비상이다. 번갈아 오니 여름은 사실상 전 기간이 비상근무다. 폭우 대응과 수해 수습, 폭염 비상이 이어진다. 여름 내내 쉴 날이 없다.
그렇다고 가을이라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큰 태풍은 가을에 온다. 매미 같은 태풍이 그랬다. 가을은 행사와 축제가 몰려 공무원들이 동원되고 차출된다. 10월 한 달에만 1년 행사 물량의 4분의 1이 몰리는 지역도 있다. 거기에 조류독감, ASF(아프리카돼지열병), 지진, 대형 인명피해를 부르는 사고 같은 사회재난까지 겹친다. 무엇이 터지든 ‘재난’이나 ‘사고’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공무원의 퇴근 시계는 멈춘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겨울엔 폭설과 산불, 봄엔 산불, 여름엔 폭염과 장마, 산사태, 풍랑. 가을엔 태풍과 집중호우로 비상근무를 선다. 날이 잠깐 좋은 봄·가을엔 지역 축제, 행사, 체육대회가 몰려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아동·청소년 행사가 많고,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 보훈 행사가 많다. 10월과 11월엔 마라톤 대회, 시민의 날, 지역 특화 축제가 이어진다. 1년 중 주식하기에 좋은 달이 없듯, 지방공무원에게도 1년 중 쉴 수 있는 달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의아할 것이다. 비상근무가 너무 잦고, 효율적으로 하려면 줄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공무원 조직은 비상근무를 줄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금보다 늘리면 늘렸지, 줄이려 하지 않는다. 비상근무가 이렇게 일상화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기후 재난의 상시화다. 폭우, 폭설, 폭염 같은 자연재난은 과거엔 예외에 가까웠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심화되며 해마다 반복되는 풍경이 됐다. 이런 재난은 산불 같은 재난과 맞물릴 때 더 끔찍한 결과를 부른다. 경북 산불이 역대급 재난으로 기록된 것도 그 맥락 위에 있다.
둘째는 재난과 관련한 지자체의 책임 범위가 확대됐다는 점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책임은 강화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여러 차례 대형 사고를 겪으며 안전 감수성이 높아졌다. “예방이 가능했는데 막지 못한 사고”는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는 “다소 과하더라도 안전 우선”을 말한다. 시민도 그 말을 지지한다. 그만큼 공무원의 임무와 책임도 늘었다. 문제는 정책을 세우는 곳과 현장에서 집행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데 있다. ‘안전 우선’은 재난 전문성과 시스템을 강화하라는 뜻일 것이다.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라는 주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올수록 그런 논의는 희미해진다. 전문성과 시스템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사람 동원이 남는다. 결국 답은 하나로 굳는다. “전 직원 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