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시즌 공무원 이야기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민이 스스로 지도자를 뽑는 이 절차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제도 그 자체다.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여러 굴곡을 지나 지금,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닿아 있다.
우수한 이유는 자연적 조건과 사람들의 노력이 만든 결과다. 먼저 우리나라는 선거사무를 수행하기에 유리한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선거는 국가 단위의 거대한 사업으로 원활한 선거 사무를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후보와 공약을 알리고, 투표소를 만들고, 유권자를 확인하고, 투표함을 옮기고, 표를 세는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선거사무를 수행할 때 땅이 좁고 인구가 밀집된 나라는 수월하게 할 수 있고 땅이 넓고 인구가 흩어진 나라는 그만큼 난이도가 올라간다. 이런 나라들은 정확한 유권자 수를 확인하는 일부터 어렵다. 인도나 러시아처럼 산간 오지와 광대한 내륙이 펼쳐진 곳을 떠올리면 금방 납득이 갈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미디어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어 홍보도 빠르고 선거 관리하기에도 쉽다.
제도적인 부분에서도 잘 관리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선거사무는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수행한다. 선거와 관련된 법과 절차도 촘촘하다. 선거구 획정은 법률에 따른 위원회가 맡고, 선거공영제는 선거운동의 규칙을 세워 공정의 바닥을 맞춘다. 전산 자료가 잘 관리되어 있어 유권자 확인도 정확하고 정보통신망이 발달되어 있어 투표 사무를 할 때에도 편리하다.
우리나라의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꽃은 민주화를 위해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피 위에, 환경과 사회적 요인, 그리고 선거사무를 수행하는 공무원과 여러 단체의 노력이 모여 맺은 결실이다. 선거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고, 또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선거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상적으로 치러진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설득력도 없고 납득하기도 어렵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늘었다. 부정선거라는 주장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두드러졌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전직 대통령에게 있었다. 그는 2024년 12월 ‘야당의 폭거’와 ‘부정선거’라는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불법으로 계엄을 선포했다. 그는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를 장악하려 시도했고, 부정선거의 증거를 찾겠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압수수색과 전산장비 확보를 시도했다.
불법 계엄에 온 국민은 경악에 빠졌다.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고 행정부를 책임지며 군의 통수권자이다. 그의 권한은 국민을 보호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데 쓰여야 하지만 그는 자신의 권력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했고 군경을 동원하여 국회와 선관위를 위협하는 데 쓰였다. 뻔뻔스럽게도 그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불법 계엄의 정당성과 부정선거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의 말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영향력이 컸다.
지지자들은 그를 옹호하기 위해 법원을 점거하는 폭동사태까지 벌이기도 했다. 지지자들에게는 그가 했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다만 그가 부정선거라고 주장을 했고, 지지자들은 그 말을 믿었다.
불법 비상계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2025년은 시작부터 혼란스러웠다. 서울 도심에는 보이지 않는 휴전선이 그어진 느낌이었다. 한쪽은 불법 계엄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했다며 촛불을 들었고, 다른 쪽은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반국가세력을 척결하자고 외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었다.
그 장면은 보고 해방 직후의 미국과 소련을 향한 친탁·반탁 대립이 떠올리게 했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때의 혼란의 원인은 언론사의 오보였지만 지금 혼란의 원인은 한 개인의 잘못된 판단에 있다. 또 다른 점은 그때의 오보는 한반도가 분단이 되는 단초를 제공했지만 지금의 오보는 우리나라에 커다란 분열을 가지고 왔지만 사회가 분단이 되지는 않았다.
겨울은 차가웠지만 광장은 뜨거웠다. 탄핵을 둘러싸고 찬성과 반대의 대립은 길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월 따뜻한 봄날, 대통령은 헌법재판관 만장일치 의견으로 탄핵되었다. 탄핵 뒤 정국은 급히 돌아갔다.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했다. 탄핵정국부터 달아올라 있었기 때문에 선거는 과열되었지만 다행히 선거는 큰 탈 없이 마무리되었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다.
나는 파면이 결정된 것도,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가 무사히 끝난 것에도 크게 안도했다. 선거를 준비하는 선관위의 직원들도 바쁘겠지만 사실 지자체 공무원들도 선관위 직원만큼이나 바쁘고 힘든 시기를 보낸다. 특히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그 부담감은 더욱 커진다. 보통 사람들은 선거사무는 전부 선관위에서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거실무의 대부분은 지자체 공무원들이 맡는다. 선관위는 상근 인력이 많지 않다. 선거사무를 총괄하고 전체적인 관리를 하지만 실무는 여러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대부분의 사무를 지자체에 도움을 받는다. 과거에 비해서는 적어졌다고 해도 여전히 지자체 공무원의 역할은 여전히 크다.
선거에서 지자체 공무원이 하는 일은 이렇다. 읍·면·동 총무팀의 팀장과 차석 직원은 읍·면·동 선거관리위원회의 서기·간사 역할을 맡는다. 읍·면·동 선관위는 주민등록 전산시스템을 통해 선거인 명부를 확정하고, 유관기관에 공직선거법상 유의사항을 안내한다. 명부가 확정되면 선거사무원과 참관인을 모집하고, 후보자 벽보를 게시하고, 공보물을 각 가정에 우편 발송한다. 후보자 벽보는 적게는 20여 곳, 많은 곳은 60여 곳 가까이 된다. 사유지에 게시되는 경우도 많아 동의를 받으러 다녀야 하고, 게시 후에는 떨어지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
이어 투표소 장소를 점검하고 설치한다. 사전투표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사전투표 이틀과 본투표 하루, 최소 3일을 꼬박 투표 업무에 투입된다. 지난 대선 때 내가 속한 지자체에서는 사전투표소 18개소와 본투표소 60개소, 총 78개 투표소가 설치되었다. 투표소의 투표관리관은 예외 없이 지자체 소속 6급 이상 팀장이었다. 공직선거법에는 국가 또는 지자체 소속 공무원, 각급 학교 교직원 등에서 위촉한다고 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지방공무원이 맡는다.
선거가 끝나도 일이 끝나지 않는다. 개표 때도 수많은 공무원들이 밤새 개표 업무를 한다. 이쯤 되면 현행 선거사무는 준비단계에서부터 마지막 개표까지 지방공무원이 실무의 저부를 관여하고 이들이 없으면 성립하기 어렵게 설계돼 있다. 지자체 공무원으로서 현행 선거사무 시스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자체 공무원이 선거에 이렇게까지 깊이 관여하는 구조는 선관위가 만들어진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