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선거사무를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선관위의 탄생 취지는 부정선거와 관련이 있다. 대한민국의 선거는 1948년 처음 시행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총선거가 치러졌는데, 당시에는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에 설치된 선거위원회가 선거를 시행했다. 선거위원회가 내무부에 부속돼 있었던 만큼 공정한 심판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국가기관과 공무원은 선거에서 중립을 지키기보다 권력자의 당선과 집권당의 승리를 위해 공권력을 동원했다. 경찰이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고, 공무원들(대부분 경찰과 지방공무원)도 선거 부정에 동원되었다. 그 관권선거의 대표적 사례가 결국 4·19 혁명을 촉발한 1960년 3·15 부정선거였다.
이후 선거사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헌법기관으로서 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대한민국의 선거제도는 그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 현재에 이르렀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탄생 이유는 ‘특정 집단이 선거에 개입하여 부정선거를 조장했다’이다. 그런데 지금 선거의 운영방식을 보자면, 과거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전히 지방공무원이라는 특정 집단이 선거사무에서 거의 대부분의 많은 일을 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선관위가 직접 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 국가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가령 선관위에서 유권자를 확정하기 위해선 주민등록시스템이 있으면 편리하다. 지자체에서 사용하는 주민등록시스템을 쓸 수 없으니 지자체에 도움을 받는 것이 맞다.
투표 참관인을 모집하고, 공직선거법 위반 사항이 나오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여러 기관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선관위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나 여러 기관이 힘을 모아야 하는 일까지, 사실상 지방공무원에게만 맡기고 있다. 선관위의 탄생 취지와 맞지 않다는 사실은 선관위 스스로도 알고 있음에도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일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시키면 잘하고 예산도 민간 인력에 비해 많이 들지 않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매년 ‘인력과 예산이 없으니 이번 한 번만 수고해 달라’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투표를 참관하면 6시간에 10만 원을 주고, 각종 민원에 휩싸일 수 있는 투표 사무원은 14시간에 13만 원을 주는데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민간인들을 투표 사무원으로 앉혔으면 난리 날 일이다.
최근 들어 선거사무 자체가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선거사무와 관련하여 개선하자는 요구를 하지만 선관위는 요지부동 지자체 공무원만 부르고 있다.
선관위 앞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해도, 1인 시위를 해도, 매 선거마다 각급 시·군·구 선관위를 방문하여 항의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선거와 관련하여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맡기지 말라는 보도가 점점 더 많이 나오고 있고, 선거사무를 수행하다 과로로 6급 팀장 한 명이 쓰러져서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변하지 않고 있다.
노조에서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주장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선거에 나오는 후보자의 벽보를 지자체에 위임하지 말고 선관위에서 용역으로 업체를 선정하여 붙이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람을 모아 선거 공보물을 봉투에 넣어 각 가정에 배송하는 일도 공무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선관위는 인력과 예산을 늘리려는 노력보다는 그냥 이번 한 번만 지자체 공무원의 손을 빌리고 넘어가려고 한다. 또 다음 선거가 오면 그때 다시 한번만 지자체 공무원의 손을 빌리면 된다.
인력과 예산이 없다는 핑계 외에도 지자체 공무원들은 수십 년 동안 선거사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잘할 것이라는 기대와, 선관위에 딱히 민원이나 불만도 제기하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은 부정선거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선거 사무가 더욱 민감하다.
선거와 관련해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언론에 크게 실리는 날에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선관위는 더욱 검증된 인력인 지자체 공무원에게 맡기고 싶다. 큰 선거를 거의 매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험을 하기보다 지자체 공무원만 적당히 잘 달래면 선거는 매번 매끄럽게 굴러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자체 공무원 입장에서는 선거와 관련하여 더욱 민감한 환경으로 변했기 때문에 더욱 부담스럽다. 또한 수당에 대해서도 적정한 수당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기는 떨어진다. 그리고 애당초 하기 싫다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것도 불편한 상황이다.
선거사무의 적법성 문제는 말하지 않겠다. 당연히 법적 절차를 준수해 운영되니 법적인 문제는 별도의 첨언이 필요 없다. 그러나 현재의 선거사무 시스템은 당위성의 문제를 남긴다. 국가 사무, 특히 선거는 단순한 ‘효율’이라는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꽃이자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가 공정성·투명성·신뢰성 같은 공익적 가치보다 효율이나 가성비에만 의존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하기도 힘들다.
선거를 경제적 가치로만 재단해서는 안된다. 국민의 정치적 권리의 행사의 측면이 아니라 가성비 측면에서만 따진다면 누군가의 선거권을 포기시키는 것도 정당화 된다. 선거는 국민주권의 실현이고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보루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에게 어떤 상황에서든 선거권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원양어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몇 년씩 떠도는 사람들에게도 어떻게든 투표권을 보장하려 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런 사소한 노력들이 모여 만들어 진 것이다. 부정선거라는 이슈에 맞서 선거가 당위성을 확보하려면, 투명성과 공정성을 더욱 분명히 하려면, 선거는 다양한 기관들의 협력을 기반으로 진행돼야 한다. 협력이 넓어질수록 민주적 당위성도 단단해진다. 선관위가 왜 생겼는지, 어떤 문제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