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쓸데없는 짓을 하는걸까
<재정집행의 종류로 신속집행과 조기집행이 있습니다. 신속집행은 연말 등 특정 시기에 지출되는 집행을 앞당기기 위해 신속하게 하는 집행을 말합니다. 조기집행은 정해진 예산 집행 시기보다 더 이른 시점에 집행하는 것을 뜻하며,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계획된 일정보다 앞당겨 집행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용어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이 장에서는 전부 ‘조기집행’으로 표현을 통일하겠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유년기부터 게임을 사랑했던 소년은 E-sports를 즐기는 어른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유년기 시절 늘 아쉬움이 가슴 한켠에 있었다. 게임을 많이 하고 싶었지만 용돈은 부족했고 게임을 하는 시간은 짧기만 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나는 언제나 오락실과 PC방을 지나치지 않았다.
돈을 받으면 빨리 썼다. 오락실에서 들리는 게임기 소리는 나의 뇌를 자극했고, 나는 게임 앞에서 자제력을 잃었다. 하루치 용돈이든 일주일치 용돈이든 늘 하루 만에 돈을 다 썼다. 그렇게 탕진하고 나면 다음 용돈을 받을 때까지 게임을 할 수 없었다. 기다림은 길었고 고통스러웠다. 결국 재정 여건이 부족해진 나는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누나의 저금통이나 빨간 지갑에 손을 댄 것이다. 하지만 당연히 누나에게 걸렸고, 욕먹고 맞았으며, 이후 용돈을 받으면 다시 갚았다. 악순환은 꽤 오랫동안 반복된 것으로 기억한다.
자연스럽게 적자재정으로 예산을 운용했고 재정 상태는 늘 불안정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어릴 적의 그 재정 운용 방식이 내가 공무원이 되려고 그랬나 싶다. 공무원이 되어 보니 나의 소비 성향과 정부의 예산 운영 기조가 정확히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재정의 조기집행 제도다. 재정 조기집행은 당초 계획된 재정의 집행 일정보다 예산을 앞당겨 사용해 민간 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고, 위축된 기업 설비투자와 소비에 활력을 불어넣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 정책을 말한다.
정부의 예산 운용 방식에서 조기집행이 기본이 된 배경은, 과거 재정집행이 지속적으로 하반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2005년 9월 국회는 정부가 남은 예산을 연말에 자산취득비, 연구용역비 등으로 지출하며 연도 말에 집중적으로 집행하는 문제를 두고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한 바 있다. 흔히 말하는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집는 일들이 주로 연말에 진행됐고, 국민들 사이에 비효율적 예산 낭비라는 비판 여론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는 본격적으로 조기집행을 실시했다. 정부가 조기집행을 실시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조기집행을 통해 선제적으로 지출을 확대하고 경기 대응 기능을 강화해 경기 활성화를 도모하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낮고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높은 상저하고의 경기 흐름이 예상되는 경우가 많다. 경기 흐름이 상저하고일 경우 경기 변동 폭을 완만하게 조절하기 위해 정부가 상반기에 많은 돈을 시장에 풀어야 한다는 논리다.
둘째, 정부 예산의 불용률을 감소시키려는 목적이다. 연초부터 재정집행을 적극적으로 관리해 연말에 예산 지출이 집중되는 문제를 줄이려는 것이다. 정부 예산은 모자라서도 남아서도 곤란하다. 예산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말은 그만큼 다른 중요한 사업으로의 재정 투입 기회가 차단됐다는 뜻이다. 정부는 예산 지출을 통해 경제의 안정화를 유도해야 한다.
2002년에는 상반기 53.5% 지출을 목표로 했고 실제 집행은 48.8%였다. 몇 년 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된 2009년에는 목표율 60%에 실적이 61%까지 늘어났다. 이 시기부터 정부의 목표율은 60% 안팎으로 유지됐다. 이후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즈음부터는 65% 수준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상반기에 예산의 3분의 2를 지출하고, 하반기에 3분의 1을 지출하는 셈이다. 팬데믹이 종료된 후에도 특별한 경제적 사건이나 상황이 없음에도 높은 수준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상반기에 예산이 집중되는 조기집행률이 계속 올라갈 이유가 있을까.
그럴 이유는 없다. 조기집행은 경제성장률이 상저하고일 때 유용하지만, 상저하고를 예측했음에도 실제 경제성장률은 예측과 달랐다. 한국은행에서는 2002년부터 2024년까지 23년 중 16년을 상저하고의 경제 흐름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23년 중 12개 연도가 상고하저의 경제성장 양상을 보였다. 절반 가까이는 조기집행을 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조기집행을 처음 시행한 2002년부터 매년 조기집행을 시행했다. 정부 성향이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꾸준히 이어졌고, 비율도 점점 높아졌다. 심지어 상고하저로 예측했던 7개 연도(2006년, 2008년, 2010년, 2014년, 2016년, 2018년, 2024년)에도 조기집행을 진행했다. (“관행적 재정 조기집행 벗어나야, 정확한 경기진단 필요”, 조세일보, 2024.4.22.) 이쯤 되면 상저하고에 대응하기 위해 조기집행을 한다는 설명은 무색해진다.
첫째, 조기집행은 인건비·기본운영경비 등 성질상 조기집행이 곤란한 분야를 제외하면 주로 SOC 사업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각종 공사 발주가 단기간에 집중되면서 현장에서 인건비와 자재비가 급등한다. 또한 예산을 다급하게 쓰다 보니 각종 용역 및 공사의 부실, 공사 기업들의 하반기 자금 수급 불균형 문제까지 생긴다. 상반기에 공사가 몰리면 하반기에는 공사를 진행하지 못해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도 크다.
얼마 전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이 철도 차량의 납품 지연과 관련해 질책한 적이 있었다. “정부가 사기당했다”라고 강도 높게 표현했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재정의 조기집행에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지자체장 시절을 언급하며 “성남시에서 이미 봤던 건데 조기집행이니 뭐니 해서 사기 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라고도 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선급금과 관련한 지침을 손보도록 지시했는데, 선급금을 70%까지 지급할 수 있게 한 규정 역시 조기집행의 영향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이 조기집행을 언급한 대목은, 본인이 과거 지자체장을 하면서 제도의 문제를 체감해 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둘째, 공사가 일시적으로 많아지면 준공을 담당하는 공무원들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다. 정부에서 정한 조기집행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절기나 해빙기 등 공사가 어려운 시기에도 공사를 강행해야 한다. 직관적으로 비율로 본다면 1년 동안 10개의 공사를 하는데 상반기에 7개, 하반기에 3개를 한다. 상반기에는 바쁘게 공사를 진행할 것이고 준공도 꼼꼼히 확인하기 어렵다. 공사가 몰리면 자재비는 급등하고 수급도 불안정해진다. 이런 환경에서는 공사의 완성도가 낮아질 가능성이 커진다. 더구나 7개의 공사 중 당장 필요한 것은 4개뿐인데, 나머지 3개는 조기집행률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나중에 감사를 하게 되면 담당 공무원은 준공을 게을리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는다. 무리한 공기 단축으로 안전성이 떨어졌다며 보강공사를 지시받는다. 일을 두 번, 세 번 하게 되니 업무 부담도 늘어난다. 무리한 일정에 최선을 다했는데 책임은 고스란히 개인에게 돌아오는 억울한 상황이 생긴다. 또한 각종 사회기반시설들의 안정성 문제는 시민들의 안전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천천히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시간에 쫓겨 급하게 하다 보면 안전에 대한 잠재적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셋째, 재정을 조기집행 한다는 것은 지자체와 중앙정부 모두에게 심각한 재정 손실을 초래한다. 먼저 지자체 입장에서 보자면 재정을 계획보다 앞당겨 집행하면서 이자수입이 감소한다. 사실상 전체 예산 규모가 줄어 각종 사업에 차질이 발생하기도 한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이자 감소액은 3년간 800억여 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자수입으로 충당했던 크고 작은 사업들이 지연되거나 보류돼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과거부터 반복돼 온 문제인데, 정부 예산 규모가 커지고 조기집행 비율이 올라간 지금은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고 봐야 한다.
정부 입장에서도 상반기에 예산을 많이 쓰다 보니 단기적으로 세수가 부족해진다. 세금을 걷는 시기는 정해져 있어 당길 수 없지만, 돈은 당겨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은행으로부터 단기차입금을 빌리기도 한다. 2023년 5월까지 정부가 빌린 차입금액은 총 71조 3천억 원,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재정증권은 20조 5천억 원으로 총 90조 원에 ‘마이너스 통장’을 활용했다. 차입금에 대한 이자만 1분기 기준 1,179억 원에 이르렀다. 이자수입 감소와 단기차입 이자를 합하면 조 단위 손실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재정 손실이 매년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