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조기집행은 큰 효과가 없다. 정말로 큰 효과가 없다.
그렇다면 정부의 조기집행은 이런 부작용을 상쇄할 만큼의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상쇄할 만큼의 효과는 없다. 2017년 185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조기집행이 예산집행 관리의 효율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문을 진행한 결과, “없음”이 64.3%(119개), “효율성이 매우 감소/감소”가 18.3%(34개)였다. 총 82%의 지자체가 조기집행이 효율이 없거나 오히려 떨어진다고 답했다. (“경기부양 위한 ‘재정 신속집행 제도’ 부작용 속출, 개선 시급”, 전북일보, 2021.3.28.)
직관적으로 보아도 조삼모사든 조사모삼이든 결국 같은 돈이다. 전쟁, 천재지변, 국제적 금융위기 등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정부가 조기집행과 적자재정을 운용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말 그대로 예외다. 예외가 아닌 일상에서 7대 3 수준으로 예산을 쓰는 방식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조기집행의 실효성도 약하고 부작용도 많은데 정부는 예산 지출의 기조를 바꾸지 않는다. 지금껏 정부의 정책은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주요 정책이 되기도 하고 뒤로 밀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어떤 상황에서도 일관된 자세를 유지한 정책은 조기집행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언론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공무원 내부에서도 비판하는데도 그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효과적이지도 않고 단점만 많은 조기집행을 계속하는 것일까.
나는 관료조직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관료조직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한번 방향을 잡으면 쉽게 돌리지 않는다. 잘못된 방향이라도 관성적으로 그곳을 향한다. 경로의존성이라고도 표현하는데, 많은 공무원들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스스로 키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키를 잡는 순간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잘못된 방향키를 올바로 돌려도 보상은 적다. 반대로 상황이 악화되면 책임은 무거워진다. 공무원이 책임을 지지 않는 선택을 선호하는 이유는 개인의 성향이라기보다, 그런 선택이 합리로 굳어지는 구조 때문일 수도 있다. 조기집행이 잘못된 것을 알지만 그 책임이 개인에게 직접 떨어지지 않으니, 문제라고 느껴도 그대로 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 53%에서 시작한 재정 조기집행은 경기 전망이나 여건과 관계없이 70%에 육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0년 동안 서서히 굳어진 관행이라 이제는 한 번에 돌리기도 힘들다. 만약 정부가 조기집행의 기조를 뒤엎고 상·하반기 5대 5 비율로 재정을 집행한다면 오히려 혼선이 커져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예컨대 2025년 말 정부지출이 줄어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 2026년 상반기 지출까지 미미하다면 중기적 경기침체가 우려될 수 있다는 식이다.
전년도 하반기 지출이 적다 보니 정부는 연초부터 빠른 재정 집행을 통해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느낀다. 마치 내가 월요일에 일주일치 용돈을 오락실에서 다 쓰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겨우 버티다가 다시 월요일에 오락실로 향해 하루 만에 돈을 다 쓰는 것처럼 말이다. 용돈이 없던 내가 남은 요일 동안 게임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듯, 국민들도 전년도 하반기에 돈이 덜 풀렸으니 상반기에는 많이 풀리길 기대한다. 정부도 매년 상반기에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거기에다 국민들은 연말에 경기가 좋지 않아도 다음 해가 되면 올해보다 경기가 낫겠지라는 기대 심리를 가진다. 정부는 국민들의 기대를 외면하기 어렵다.
조기집행은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조기집행은 기대 심리에 부응하는 방법이자, 경기침체가 이어져도 정부가 최대한 노력했다는 변명거리를 제공한다. 요컨대 매년 있는 조기집행은 행정으로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정부가 열심히 일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좋다.
정부 입장에서 국민들이 매년 말 “돈이 남아 보도블록을 새로 바꾼다”라고 인식하는 것은 위험하다. 목적과 효과에 대한 고민 없이 세금을 쓴다는 인식이 굳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들은 무의식적으로 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이는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조기집행은 경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메소드 연기’를 할 수 있는 제도다. 성적 자체를 올리기 어렵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해야 혼이 덜 나는 것처럼, 경제성장과 안정화 노력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몰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