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미를 하면 소비자와 소통 가능! 마트에선 농부와 소비자 교류 X
2023년 9월 18일 월요일, 곡성에서 핸내가
친구들에게 보내는 21번째 메일 '나로 살기로 핸내(나살핸)'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이담' 하는 날이에요! 제 맘대로 이름 한 번 지어봤어요. '이웃의 이야기를 담다'를 줄여서 이이담이요.(허허..ㅎ) 오늘은 인터뷰 내용이 많아 바로 시작해 볼게요!
< '이웃의 이야기를 담다(이이담)' 프로젝트 >
지난 인터뷰 기억하시나요? 빵 만들며 농사짓는 풀을 인터뷰했었는데요. 풀은 농사로 돈을 벌 생각이 아직 없다고 했어요. 마을 청년들 대부분 자급자족을 위한 농사를 짓고 있고, 최소한의 생계비는 다른 방법으로 벌고 있어요. 인근 마을에 농사와 생계비 버는 일을 연결시킨 청년이 없는지 궁금해하던 중, 채소 꾸러미를 하는 지선이 생각 났어요. 그렇게 지선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답니다.
2020년 10월부터 곡성에서 살며 농사짓는 4년 차 농부 지선입니다.
지선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살피고 돌보는 사람인 것 같다. 지선과 대화를 나누면 즐겁고 편하다. 지선의 농사 경험을 바탕으로 농사 팁도 얻어갈 수 있다. 책담 마을도서관 운영위원장을 맡아 도서관 운영에 힘쓰고 있다. 내가 본 지선은 먼저 나서서 몸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사실, 아직 지선에 대해 더 알아가는 중이다.
"귀농이 큰 다짐이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어요. 어릴 때 양평에서 자연과 가까이 살았어요. 흙 만지는 걸 좋아했지만 농사를 지었던 건 아니고, 무언가 심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죠. 성인이 되어 서울에 살 땐,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것에 관심은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실천하진 못했어요. 이렇게 삶의 주가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고요. 그러던 중, 소농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농사를 배우며 달라졌어요. 생태적이고 농사짓는 삶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사실 소농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비주류의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취향과 관심사가 마이너했다랄까요? 이를테면 주변 친구 중에 한살림을 주로 이용하거나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없었어요. (참고로 지선은 30대 중반이다.) 그래서 이런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요. 특히나 제가 대학생 때는 더더욱 환경이슈에 관해 이야기하는 문화도 아니었어요. 생태적인 농사를 배우며 '이게 내가 원하는 거였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렇게 서울보다는 시골에서 살고 싶어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곡성에 내려오고부터예요. 2018년에 귀농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소농학교에서 1년간 농사를 지었어요. 농사에 큰 관심이 있어서 참여했던 건 아니고요. 같이 사는 친구가 그 단체에서 하는 강의를 들었는데 좋았대요. 그 친구의 추천으로 소농학교에도 관심을 갖고 신청하게 됐어요. 농사짓다보니깐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서울 말고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소농학교에 대한 얘기를 덧붙이자면, 저는 1년간 군포 대암에 있는 논밭에서 소농학교 수업을 들었어요. 주말에 주로 농사를 배우고 평일에는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논밭을 관리했어요. 공동논밭과 한 평 남짓한 개인 밭을 관리했어요. 비닐,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생태적인 농사를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20대에 한군데에 정주하지 않고 돌아다녔어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인생의 1/3은 양평, 1/3은 서울, 1/3은 해외에서 살았어요. 어쩌면 해외를 돌아다니며 방황을 했던 것 같아요. 한국의 방식에 열정적으로 맞춰 살거나 무언가를 펼치며 살지는 못한 상태였어요.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다양한 문화에 관심도 많았고요. 그래서 비행기랑 초기정착금만 가지고 해외로 나가, 일하며 여행 비용을 충당했어요. 워홀로 일본, 뉴질랜드, 캐나다에 갔었어요."
"소농학교 졸업 후에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어요. 워홀에 나이 제한이 있잖아요. 딱 마지노선의 나이였어요. 또한 시골에서 농사짓게 되면 논밭 두고 멀리 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 농사짓기 전에 떠나야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뉴질랜드에서 1년 3개월 정도 살다 왔어요. 뉴질랜드에서 우프(*유기농가에서 반나절 정도 일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것)를 하며 숙식을 해결했고, 별도로 일을 구해서 일하기도 했어요. 한 곳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단기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살았어요. 숙소 형태는 농막, 카라반, 개인주택과 같이 다양했어요. 우프하는 농가는 대부분 작물을 다양하게 키우는 곳이었어요. 동물들도 있었고요. 닭도 풀어 키우고, 소, 돼지도 있었어요."
"이웃의 소개로 나름 수월하게 집을 구했어요. 뉴질랜드에서 돌아와 바로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2달 정도 시골 여기저기에 살며 정착할 곳을 탐색해 보았어요. 때마침 소농학교를 같이 다녔던 JYI가 본인 마을에 시골집 하나가 나왔다며 소개해 주었어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이에요! 96세 되신 할머니께서 혼자 살기 어려우셔서 자녀 분 집으로 가시기 위해 임대를 내놓은 것이었어요. 할머니께서 JYI에게 본인 집에 살 좋은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하셔서 제가 소개받게 되었어요."
"처음 집 상태는 괜찮았나요?? 어느 정도 수리를 했다고 들었는데요."
"아무래도 집을 임대한 것이어서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수리는 잘 안 해요. 집을 사면 하고 싶은 건 많지만요. 지금은 적당히 치우고 살고 있어요. 저희 집이 주방, 안방, 아궁이방 이렇게 세 군데로 구분되어 있는데요.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는 아궁이 떼는 가장 안쪽 방을 사용하지 못했어요. 천장이 무너지고 불도 안 들어오는 흙바닥 방이었죠. 1년 정도는 그 방을 사용하지 않았다가, 곡성군 귀농귀촌인 농가주택수리비 지원사업을 받아 수리한 후부터 사용하고 있어요. (*6년 이상 임대계약한 귀농귀촌인에게 농가주택 수리비 50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 그래서 지금은 겨울에 아궁이 떼서 후끈후끈하게 살고 있답니다. 또한 에너지 재단에서 하는 에너지취약계층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창문을 샷시로 바꿨어요. 공식적으로 취약계층 조건에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지원자 미달로 지원받게 되었죠."
"인근 마을에 소농학교 출신의 귀농인이 많아요. 기수는 다르지만요. 또 소농학교 다닐 당시, 이 마을에 실습을 왔었어요. 항꾸네협동조합에서 청년 자자공도 시작하기 이전에요. 그니깐 4년은 넘었겠네요. 그때 와서 귀농생활 관련 수업을 받았었어요. 아마 용접을 배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마을에도 몇 번 왔었고 아는 사람들도 있으니, 적응이 어렵진 않았어요."
"귀농 후 1년간 자잘한 알바를 병행하며 농사지었어요. 그다음 해부터는 청년창업농 지원을 받아 월평균 100만원씩 받고 있어요. 3년간 지원비가 나오는데요. 1년차에는 110만원, 2년차엔 100만원, 3년차엔 90만원이 나와요. 정착의 목적이라 3년 지원 받았다면 추가로 3년은 더 농사지어야해요. 그니깐 6년은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한다는 거죠. 만약 그렇지 못했다하면 지원금을 다시 내뱉어야 한다더라고요."
"소농학교 다닐 때, 금창영 선생님(*홍성에서 자연농 방식으로 농사짓는 농부)께 농사를 배웠는데요. 선생님의 제안으로 동기들과 꾸러미(*철마다 나는 여러 가지 채소를 한데 모아 주기적으로 배송하는 방식) 판매를 했어요. 10회 정도 꾸러미를 보냈어요. 그땐 닭도 키워서 계란을 포함한 채소 꾸러미를 3가구에게 보냈었어요. 당시에 재밌었고, 세 팀이 돌아가면서 하니 힘들지도 않았어요."
"꾸러미를 하며 가장 좋은 점은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거예요. 마트에서는 농부와 소비자가 교류할 수 없잖아요. 하지만 꾸러미를 하면 농부가 소비자에게 직접 편지도 쓸 수 있고 이곳 소식을 전할 수 있어요. 핸내가 하는 나살핸처럼요! 소통창구가 되는 거죠. 그리고 저희는 다양한 농사를 짓고 싶은데, 여러 품종을 하게 되면 납품이 어렵잖아요. 어쨌거나 누군가 먹어줘야 저희도 이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거죠. 기본적으로 제가 직접 다양한 것을 길러 먹고 싶은 것이 우선이고, 제가 먹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다양하게 먹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또한 꾸러미가 생계를 위해 수입을 얻는 방식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저희는 2주에 1번씩 꾸러미를 보냈어요. 올해는 거의 쉬고 있긴 한데요. 작년에는 4가구 정도 했었어요. 인근 마을 청년과 이웃의 어머니에게 판매했었고요. 올해는 작년 자자공에 참여했던, 현재는 다른 지역에서 공부하고 있는 청년에게도 보냈었어요. 저와 제 짝꿍 부모님께는 효도하는 마음으로 돈 안 받고 보내고 있고요."
"꾸러미를 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인근 마을에 사는 HN에게 보냈을 때였어요. 우선 HN은 군말 없이 다 받고 잘 먹어요. 제가 열심히 농사지은 걸 고마운 마음으로 받는다랄까요? 아는 분이 처음 꾸러미 했을 때 “이런 걸 돈 주고 팔아요?”라는 안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하더라고요. 이런 속상한 경우도 있다죠. HN은 가까이 살아서 제가 직접 가져다줄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 더 많이 줄 수도 있어서 좋았어요."
"어려움이라 하면 아무래도 택배 포장해 보내는 일 아닐까 싶어요. 택배로 보내는 게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에요. 깨지지 않게, 망가지지 않게, 시들지 않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포장을 해야해요. 잘 싸는 기술도 필요하고요. 이를테면 호박 같은 경우, 어떨 땐 크고 어떨 땐 작게 나오잖아요. 박스 규격도 고민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배송보다는 가까운 시골에서 농사 짓지 않는 사람들이 농산물을 사주면 좋겠어요. 아주 가~끔은 '내가 다른 일을 해서 누군가를 지지해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꾸러미 판매를 한 해만 했던 거라 평가 내리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요. 어쨌거나 경험치가 쌓였고, 개선점을 파악했던 과정이라 유익했던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었고요. 꾸러미를 잠시 멈춘 건 바쁘기도 하고 허리가 아파서였어요. 재개하는 건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아요."
"뉴질랜드에서 우프 하며 경험한 꾸러미는 한국에서와는 또 다른 방식이었어요. 그곳에서는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라고 해서 공동체, 지역사회가 농가를 지원하는 형태가 있었어요. 한국 같은 경우, 박스로 배송하는 형태로 이뤄지는데 말이죠. 제가 우프 했던 농가에서는 서포팅하는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농가에 직접 찾아와 채소를 챙겨가는 방식이었어요. 채소를 수확해 일부 공간에 놓아두는 거죠. 그래서 농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했어요. 또한 농산물을 판매가 아닌 '쉐어'한다고 표현하더라고요. 어쩌면 이상적인 꾸러미 판매 모델이 아닐까요?"
“왜 뉴질랜드에서는 소비자가 직접 농가로 찾아오는 게 가능했던 걸까요?”
"유기농에 관심이 많은 마을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열렸었는데요. 채소 신선도나 퀄리티도 괜찮았고요. 덧붙여 그곳 농가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농사를 주로 오전에 끝내고, 서핑하러 다니더라고요. 바닷가 마을이었거든요. 저희보다 수월하게 농사짓는 것 같았어요. 화산섬이라서 그런지 땅이 좋아서 농사가 잘된대요. 관수도 다 되어있어 비가 오든 안 오든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요."
"고민중이에요. 아무래도 작물 가지 수가 많다 보니, 수확도 제때 해야 하고 채종(*다음 번에 심을 씨앗을 받는 것)도 해야 하고 바쁘기도 해서요. 그래서 '꾸러미를 여러 농가와 함께 하면 수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같이 하는 것도 쉽지 않으니 고민중이고요."
"더불어 먹을 것이 마을 안에서 순환되면 좋겠어요. 마을 사람들 대부분 농사를 짓는다 해도 100% 자급자족은 어렵다고 생각해요. 여러 작물을 재배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이웃에게 부족한 것이 저에게는 남을 수도 있죠. 기왕이면 우리가 지은 농산물을 우리가 함께 먹으면 서로 좋잖아요. 서로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농사짓는지 아는 관계에서 판매하는 것이니까요. 더 좋은 방식으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다면, 꾸러미라는 방식을 고집하고 싶진 않아요. 우리 가까운 곳에 장터가 열리면 좋겠네요! 마을 안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기도 해요. 아니면 뉴질랜드처럼 정기적으로 농산물을 쉐어하는 날을 만드는 방법도 있겠네요. 마을도서관인 책담을 활용해서요. 돈으로 주고받을 수도 있고, 농산물을 물물교환하는 방식도 있고요. 좀 더 오프라인의 관계에서 순환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참고로 지선은 광주에서 하는 지구농장터에 셀러로 참여하고 있다. (*지구를 구하는 농부, 지구농장터
instagram@jihunong)
“어떤 품목을 판매할지, 가격은 얼마로 책정할지 고민이 되는 지점이죠. 그리고 저희가 농사짓는 방식을 얼마나 어필해야 하는지도 계속 고민하고 있고요. 사실 저희 농산물이 가격은 더 비싼데 품질은 더 안 좋아 보일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상품성을 위해 보기 좋게 무언가 인위적으로 투입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희가 지향하는 농사 방식과 가치를 더 어필해야 하나 고민이에요. 그런 과정이 필요하면서도 피곤한 일이기도 하죠. 그래서 장터 나갔을 때 저희가 어필하지 않더라도 저희의 농사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 너무 반갑고 고맙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발견해 주는 사람들에게만 기댈 순 없잖아요. 그래서 생태적인 농사를 지으며 건강한 걸 생산하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장에 나가 알려야 하기도 해요. 하지만 혼자 농사와 홍보를 다 하기엔 어려움이 있으니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시너지가 난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한 것만 가지고는 한 가지밖에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모일 때, 생각이 확장되어 살이 붙고 아이디어가 풍성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 이웃과 결합할 수 있을지요."
"땅이 다 짓는 거예요. 적당한 땅에 적당히 넣으면 잘 자라요. 기본적으로 땅이 안 좋으면 뭘 해도 잘 안되고요. 바탕이 풍요로워야 해요."
“아무래도 관행농을 했던 밭이면 땅을 살리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을 텐데, 지선네 밭은 괜찮았나요? (*관행농을 했던 땅은 농약과 비닐을 사용해 흙 속에 미생물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 자연농을 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땅을 살리는 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제가 밭 두 곳이 있는데요. 집 구하면서 집주인 할머니가 하시던 밭과 작년에 교회 근처에 회화할머니께서 내놓으신 밭을 빌려 사용하고 있어요. 회화할머니 밭은 제가 짓기 직전까지 농사짓던 땅인데,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땅에서 나는 것들을 보면 다양한 작물을 심었던 것 같아요. 다년생 작물인 딸기, 방풍나물, 고사리, 메밀 같은 것들이 저절로 나더라고요. 다년생 작물들은 겨울에 살짝 누웠다가 봄 되면 다시 생생해져요. 그걸 보며 '이분들도 다양하게 지어 먹었구나.' 싶었어요. 아무래도 본인들이 먹을 것을 재배했던 구역은 농약을 적게 쳤겠죠? 집주인 할머니 밭은 관행적으로 농사짓다가 묵혀두었던 땅이에요. 그래서 흙이 괜찮아요."
“밭 크기는 어느 정도예요? (참고로 지선은 같이 사는 짝꿍과 함께 농사짓고 있다.)"
"밭 빌려놓은 건 많은데 다 농사짓진 않아요. 집 빌리면서 400평 밭을 빌렸고, 또 다른 이웃에게 600평 정도 추가로 빌렸어요. 집주인할머니 밭은 올해 힘들어서 거의 안 짓고 생강이랑 토란만 심어뒀고요. 회화할머니 밭엔 고사리밭이 있어요. 다른 여러 작물도 심고요. 실제 사용하는 밭은 300~400평 정도 될 거예요."
"요즘 스포츠 경기 보는 게 재밌어요! 축구나 테니스 경기 보는 걸 좋아해요. 기승전결의 드라마 보는 느낌이랄까요? 운동선수들이 가진 집념과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 있잖아요. '와! 어떻게 저게 가능해?'라는 반응이 나올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때 박수가 절로 나오게 돼요. '얼마나 노력했을까?' 생각하며 감동받기도 하죠. 테니스 선수들 보면 세 시간을 치더라고요."
“지선도 운동하는 걸 좋아하나요? 왠지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할 것 같은데요.”
"기본적으로 땀 흘리는 걸 좋아해요. 근데 규칙에 맞게 운동하는 것들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직접 해본 경험이 드물어요. 걷기나 달리기는 좋아해요!"
“허리가 아파요. 뉴질랜드에서 귤 따면서부터 아팠어요. 제주도에서는 바구니를 바닥에 놓고 귤을 따잖아요. 근데 뉴질랜드에서는 캥거루 백을 메고 귤을 따요. 가방에 귤이 가득 차면 나무 사이에 있는 큰 콘테나에 귤을 비워요. 트랙터가 따라다니며 콘테나를 이동시켜요. 귤을 최대한 많이 채워넣기 때문에 무거웠어요. 귤 시즌 끝나니깐 너무 아프더라고요. 요즘 허리가 아프다 보니깐 '농사를 조금만 짓고 다른 일을 할까?' 생각도 해요. 농사를 재밌게 오래 짓고 싶거든요. 허리에 좋은 근력운동과 걷기운동을 해야겠어요."
“좋은점은 맑은 공기요. 그리고 잠잘 때 조용하고 어두운 환경이요.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는 느낌이 들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쉬운 점은 음.. 아쉽다기보다 필연적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할 일이 많아요. 아파트에 살면 내 방, 내 집만 청소하면 되잖아요. 근데 시골집에 살면 마당도 치워야 하고 울력(*마을 주민들이 남의 일을 도와주거나 공동으로 마을 일을 하는 협동방식)도 해야 하잖아요. 집 근처 풀도 베야지, 나무 크면 나무도 베야지. 농사지으면 정리할 것도 많아요. 착착 정리하지 않으면 난장판이 되거든요. 제 삶을 가꾸는 데에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물론 거기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요. 생각이 생각을 키워, 농사의 더 큰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생태적으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바란다고 해서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제 개인의 딜레마인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좋은 가치를 확장시켜 영향력을 넓혀가고 싶은 마음도 있는 반면, 에너지와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혀 생각을 잠시 멈추게 되어요. 우선 나부터 챙기자라고 생각하면서요."
“사회적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본인을 잘 돌보고 살피며 밸런스를 맞춰 살아가면 좋겠어요. 저뿐만 아니라 이곳에 정착한 청년들도요. 특히나 이곳에 귀농한 청년들이 환경, 사회문제,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잖아요. 부조리를 부수고자 투쟁하고요.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하는 건 맞지만 종종 '소수의 사람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요. 저 같은 경우, 실질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때도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현장에 있는 듯한 피로가 느껴질 때도 이따금 있어요. 다들 자기 자신을 잘 돌보며 싸우면 좋겠어요."
“처음 제안받았을 때는 나에 대해 무얼 인터뷰하는 걸까 궁금하고 부끄럽기도 했어요. 인터뷰한다고 생각하기 보다 핸내와 대화하며 서로 알아가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또한 생각보다 저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핸내는 인터뷰하며 이웃들의 이야기를 일대일로 듣잖아요. 저도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싶네요.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공유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핸내가 인터뷰하는 취지나 이 자체가 좋고 흥미로우면서도 응원하고 싶어요!"
채소꾸러미는 아래 사진 조합에 더하여 다른 채소, 곡식류를 더 담아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나 푸짐하고 다채로울 수가..!! 나도 당장 지선네 꾸러미를 애용하고 싶다. (가격을 공개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궁금해할 것 같아 공개해 보자면 한 꾸러미에 35,000원이다.) 얼마나 소중하게, 그리고 땅을 살리는 방식으로 농사짓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지선의 농사 생활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선네 꾸러미를 이용한다면, 정말 다양한 요리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인터뷰는 어떻게 보셨나요?? 저는 인터뷰를 매개로 마을 사람들에 대해 더 알게 되어 기뻐요. 그다음 인터뷰를 기대하게 되고요.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올게요. 제 일상 얘기를 덧붙이자면, 저는 지난주 낮잠도 많이 자고 시집도 읽으며 여유롭게 빈둥대는 시간을 보냈어요. 하지만 이번 주부터 바빠질 예정!! 우리 마을 사람들... 왠지 곧 다 같이 바빠질 것 같아요. 특히나 추석 끝나고 돌아오면 농번기라서요~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이번 주도 파이팅입니다. 저는 이번 주에 923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요. 간 김에 친구들도 만나고요. 923기후정의행진 함께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