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핸내 Jun 05. 2023

8. 입새달을 마무리하며

시골살이 적응기 '나로 살기로 핸내' 2023년 4월 30일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4월의 마지막 날에 소식을 전하네요. 4월은 순우리말로 ‘잎새달’이라고 해요. 물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을 돋우는 달이라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대요. 새순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나요?? 도시에 있을 땐 벚꽃, 동백꽃 같은 사진 찍기에 좋은 꽃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이곳에 내려오고부터는 길을 걸을 때, 풀과 꽃을 찬찬히 살펴보며 걷게 되었어요. 새로운 풀과 꽃의 이름을 알게 되어 혼자 퀴즈 풀듯이 이름을 맞춰보기도 한답니다. 더군다나 이번 주 목요일엔 지리산 신선자락길을 걸으며 나무 공부를 한 덕에 주변 식물들이 눈에 더 들어오더라고요.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지난주 기억에 남는 일과 더불어 4월 한 달을 돌아보며 글을 써보고자 해요. 


월요일, 농사짓기 좋았던 날씨

지난주 월요일, 처음으로 자진하여 밭에 가서 온종일 있던 날이에요. 밭을 좋아하는 룸메들은 거의 매일 밭에 가지만, 저는 그렇진 않아요. 보고 싶을 때, 필요할 때만 종종 가요. 월요일엔 토마토 지지대를 만들어야 했어요. 때마침 날씨도 선선하고 그늘져서 일하기 딱 좋았어요. 우선 톱을 가지고 집 앞에 있는 대나무숲으로 갔어요. 박박 톱으로 대나무 몇 개를 베어 가져왔어요. 그 다음 대나무 가지를 내려쳐서 잘라주고, 밭으로 질질 끌고갔어요.

길이에 맞춰 톱질을 하고 작업 발판에 올라가 매듭을 칭칭 묶어주었어요. 분명 오전에 끝날 줄 알았는데, 밥 먹고 나서도 작업을 계속해야 했어요. 농사일을 혼자 하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씨앗을 심을 때도 옆에 누군가 있었고, 친절히 방법을 알려주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어깨 너머로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혼자 해내야 했어요. 기둥은 이미 세워놓은 덕에 매듭만 묶어주면 되는데 혼자 머릿속으로 고민하느라, 그리고 여유부리느라 오래 걸렸네요. 그래서 아직 미완성이랍니다. 


토마토 지지대도 만들고 토마토, 상추, 대파 모종을 심었어요. 지지대를 마저 만들려고 했는데 딸기 소식이 전해져왔어요. "옆 마을 이장님이 팔고 남은 딸기 따가라고 하네요." 그래서 갑자기 딸기를 따러 갔어요. 이웃들이 트럭을 타고 내려와 밭에 있는 저를 픽업해 갔어요. 와, 딸기 천국이다!! 분명 딸기를 따기 전에는 배가 고팠는데 딸기하우스 가자마자 친환경 딸기를 왕창 따먹은 탓에 배가 부를 정도였어요.

짜란~ 딸기청도 만들고 딸기주도 만들어보았어요

수확한 딸기를 트럭에 잔뜩 실어 마을로 돌아왔어요. "드디어 우리도 이웃들에게 나누어 줄 게 생겼구나!!"라고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한 분들을 찾아뵈었어요. 시금치 잔뜩 주셨던 윗집 GM어르신, 매번 맛있는 반찬 선물해주는 SY, 직접 구운 빵을 주는 P, 씨앗 나눠준 JS 등 감사한 이웃들이 참 많았어요. 10가구 정도의 집을 직접 찾아가 딸기를 나누어주었어요. 집 구경도 하고, 밭 구경도 하고, 꽃구경도 하다가 왔어요. 정말 농촌이다 싶었던 것이 가는 집마다 농사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텃밭에 있는 작물을 구경하다가 모종을 받아오기도 했고요. 한 집에서는 집 앞에 있는 레몬밤과 꽃을 뿌리채 가져갈 수 있도록 곡괭이질까지 해주었답니다. 결국 저희는 또 받아왔네요. 주러 갔는데 잔뜩 받아왔어요. 

레몬밤, 들판에서 자라던 보라꽃, 애호박 모종을 받아왔다.


이웃 간 정이 오고 가는 곳

'응답하라 1988(https://youtu.be/2-eLityiAVs)' 드라마를 보셨나요?? 지금은 보기 어려운 마을의 정겨운 풍경을 담고 있는데요. 1회차에서는 이웃들이 서로 음식을 나누는 장면이 나와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저 집에서 이 집으로 접시가 계속 오가요. 그래서 밥과 찌개만 있던 택이네 식탁에 반찬이 가득 차게 되어요. 저희도 비슷했어요. 딸기를 전달한 다음날 이상하게도 집에 계속해서 이웃들이 찾아왔어요. YI는 초콜릿이 콕콕 박힌 초코깜빠뉴를, P는 쑥빵, 베이글, 시나몬롤을, SY는 오이무침을, NB는 상추를 들고요. 빵과 반찬은 이웃들이 직접 만든 것이었어요. 

순간 깨달았어요. '아, 우리가 어제 딸기를 나누었구나.' 이웃들에게 이미 받은 것이 많아 딸기를 선물했는데, 또 받았네요. 계속해서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네요. 저는 좋아요. 제가 나눌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또 고민해봐야겠어요. 

먹다남은 빵 펼쳐서 사진찍기(초코빵, 베이글, 쑥팥빵, 시나몬롤)
오이무침 너무너무 맛있어요


이천이십삼년 잎새달의 연둣빛 기억들

- 이달의 노래: 내사랑 내곁에(김현식) "이장님 세대와도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 걸걸한 목소리가 마음을 절절하게 하는 노래, 김현식 가수의 유작"

- 이달의 책: 충격사실... "책 완독한 게 없어요.... 반성... 생의이면(이승우) 읽고 있음.

- 이달의 영화: 대지에 입맞춤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환경문제, 농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음."

- 이달의 음식: P의 망초카레 "향신료향 가득, 식감이 좋았음." vs JS의 토마토 김치찌개 "아주 얼큰하고 시원한 맛"

- 가장 많이 먹은 음식: 개망초랑 쑥부쟁이 나물무침 "밭에 널린 풀 뜯어 먹기"

- 가장 신났던 순간: 면민의날 행사에서 마을 사람들과 노래자랑하는 EC 응원할 때 "결국 1등 해서 전기톱 받음."

- 가장 최악의 순간: 더운 날 꽃 튀겨먹고 일하다 탈 났을 때 "정말... 고통스러웠음."

- 가장 새로웠던 순간: 나무의 관점으로 숲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을 때 "이거 먹어도 돼요? 라는 질문은 삼가해주세요. 모든 풀, 나무는 먹을 수 있어요. 다만 인간이 먹은 후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지. 나무와 친구처럼 관계 맺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해 봅시다. (나무 선생님)"

- 가장 슬펐던 순간: 4.14기후정의파업에서 각 지역의 현안을 접했을 때 "곳곳에서 자본의 논리에 따라 비슷한 형태로 생태학살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됐을 때"

- 가장 낭만적이었던 순간: DJ네에서 놀다가 새벽에 갑자기 피아노를 치게 됐고, DJ가 치는 캐롤을 듣게 되었을 때 "새벽에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낭만인 듯"

- 이달의 뿌듯함: 톱 가지고 혼자 대숲에 가서 대나무 베어 토마토지지대 만들었을 때

- 이달의 움직임: 4.14기후정의파업, 4.16세월호참사 함께 기억하기, 겸면 폐기물처리장 불허촉구를 위한 군민총궐기대회

- 이달의 반성: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자, 아니 미루더라도 마지막 마감기한을 정해놓자

- 이달의 깨달음: 연인관계에서는 그게 누구든 가장 편하고 재밌을 수 있음, 혼자 되었을 때 얻는 것이 있음 "구질구질한 첫 연애의 미련이 바로 객관화되어 정리됨."

- 이달의 농사: 밭농사_ 모종(토마토, 상추, 파) 옮겨심기, 땅콩 직파, 모종내기(옥수수, 호박, 참외, 수박, 청경채, 데이지, 적근대, 바질 등) / 논농사_ 모판 씻기, 못자리 두둑 만들고 부직포 깔기, 볍씨 싹틔우기, 열탕소독, 소금물가리기, 기계 파종 + 감자와 토마토 냉해 피해로 이파리 꼬시라짐...

- 주차별 생각의 흐름

> 1주 차) 곡성에 친구가 없다. 친구란 뭘까? 서울 친구들 너무 좋아, 소중해.

> 2주 차)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 절망스러운 마음 스멀스멀.

> 3주차) 불편했던 사람과 회포를 풀다. 몸이 엄청 아팠다. 울고불고 난리난 주.

> 4주차) 이웃들 너무 좋아. 정이 오가네.

- 한문장으로 정리한 이번 달: 이웃들과 정이 많이 쌓이고 편해진 달


마무리하며

혹여나 기다렸을 분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옆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다가 이웃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너무 흥미로워서 엉덩이를 떼지 못했네요. 어느덧 여덟 번째 편지를 보내고, 두 번의 편지만을 남겨두고 있어요. [깜짝소식] 아쉬운 마음에 일 년 내내 소식을 전하기로 했어요. 열 번째 편지를 보내는 날에 수신거부란을 만들어 둘게요. 개인적인 이유로 글을 읽기 어려우신 분들은 수신거부를 하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저의 이야기를 계속할 터이니, 소식이 궁금하실 때 가끔씩 보고 가셔도 좋아요.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아가는 일 년, 달별로 마을의 색깔도, 이야기 주제도 참 다채로울 것 같아요. 언제든 시골풍경이 보고싶으실 때 찾아와주세요. 


이 주의 사진�

용접을 배웠어요
두둑에 부직포를 깔아주고 / 기계로 볍씨를 포트모판에 넣어주었어요
지리산 신선자락길에서 나무 공부를 했어요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에서 한적한 오후
순창 촌시장에서 구제 작업복 4천원에 4개 구입하다! / 한밤 중 모시 빗자루 만들기 클래스
서울 교회 사람들 다같이 순창으로�


작가의 이전글 7. 내가 먹고 마시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