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만 사랑과 존경을 외치지 말자
아침출근길 철도태업으로 출근길 교통난이 예상된다든 안전문자를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철은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안전문제가 있으니 다음열차를 타라는 안내방송에도, 이들 모두 시간 내 어디론가 도착해야 하는 사람들이라서인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열차를 기필코 타려고 계속 안으로 밀려, 밀고 들어왔다.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한쪽에서 왜 밀치냐로 시작된 어떤 둘의 언쟁이 들려왔다. 왜 밀치냐, 뭘 보냐는 말들은 순식간에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으로 번졌다. 엄청난 인파였음에도 일순 분위기가 싸해졌다. 밀쳤으면 사과를 해야 하지 않냐며 한쪽이 욕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른 한쪽은 상대방이 너무 과도한 분노를 보이자 약간의 말대꾸를 하다가 멈추어버렸다. 혼자 분을 삭이지 못한 그는 그 뒤로도 한참을 욕을 하다가 스스로 멈췄다. 그리고 몇 정거장일까. 그 대화를 듣고도 열차를 바꾸어 타거나 자리를 옮길 수도 없었던 나는 상쾌하지 못한 기분을 가진 채로 지하철을 내렸다.
점심식사 후 커피를 사러 카페에 갔다. 저렴한 가격이 메리트인 그곳은 간단한 베이커리를 함께 팔면서 테이블에서 먹고 갈 수 있는 매장이었다. 손님이 제법 있어 약간의 대기를 하는 동안 우연찮게 옆 테이블의 대화가 들려왔다. 직급차이가 많이 나는 이가 직원들 여럿을 데리고 와서 커피와 빵을 사놓고 얘기 중인 것 같았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직급이 많은 사람의 어떤 얘기가 끝난 후 일제히 사람들이 박수를 쳤고 한 사람은 ‘대단하십니다, 이사님!‘을 외쳤다. 이윽고 잠시뒤 대단하다고 외쳤던 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사님 사랑합니다!’
아침에는 약간의 배려도 없는 상황을, 점심에는 너무나도 과도한 배려를 넘어선 사랑을 확인하니 어떤 기시감이 들었다. 같은 사람도 아니고 같은 상황도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자꾸 이 두 가지 상황이 교차되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약간의 배려만 있어도 될 상황에서는 조금의 배려나 이해도 없이 급발진하는 마음을 가진 우리들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사랑한다니, 그것도 이사님을. 한쪽의 마음은 너무 빈약하고 한쪽의 마음은 너무 과하다 못해 흘러넘쳤다.
회사와 조직에서 직급차이가 있더라도 서로의 일에 대한, 경험에 대한 적당한 존중과 배려이면 된다. ‘존중’이라는 뜻에는 귀중하게 대한다는 마음이, ‘배려’에는 도와주려고 보살펴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뜻이 들어있다. 이미 충분하다. 그런데 사랑과 존경을 말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연말 조직개편 시즌이 오면 갑작스럽게 숨겨왔던 사랑고백을 하거나 평소부터 원래 존경해 왔다는 고백을 하는 노골적인 줄타기, 잘 보이기, 어설픈 의전을 쏟아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어떤 이의 존재자체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고, ‘존경’은 남의 인격과 사상 행위 모든 것을 받드는 일이다. 사랑과 존경은 과하다. 적당한 배려도 충분하다. 그리고 평소에 하면 된다. 갑작스럽게 추운 연말이 되어서가 아니라.
지금 누군가에게 과한 사랑과 존경이 샘솟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도 회사나 조직에서 그렇다면 돌이켜보자. 평소 내 주위의 정말 사랑해야 하는 이들에게서 사랑과 존경을 빼앗아서, 내가 정말 배려해야 하는 일상 속의 타인에게 쏟아야 하는 적당한 마음까지 탈탈 털어서 이들에게 쏟고 있지는 않은지. 적당한 배려가 있어야 할 곳에 적당한 배려를 놓자. 너무 과하지도 너무 빈약하지도 않게. 지하철에서도 회사에서도 ‘배려’ 정도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