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저녁. 주중반을 지나는 때라 체력이 적당히 떨어져 가는 때였다. 이런 퇴근길은 보통 체력소모를 최소한으로 하려고 자리를 잡는 대로 눈을 감거나 한다. 지하철, 버스, 길에서의 보이는, 들리는 것들 대부분이 유쾌하거나 흐뭇한 것보다는, 피로를 얹어주는 요소라 그렇다. 요 근래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분노와 짜증이 많다.
두 명의 멋진 어르신이 연달아 나타났다. 아주 오랜만에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첫 번째는 지하철 역사를 나와 밖으로 나가는 상행 에스컬레이터였다. 내 앞에 60~70대 정도 되시는 말쑥한 정장을 입으신 남자어르신이 한 칸 간격을 두고 서 계셨다. 에스컬레이터에서까지 눈을 감을 수는 없는지라, 무심히 앞을 보았더니 저게 왜 저기 달려있지, 스러운 귀여운 인형키링이 정장가방에 달려있었다. 너무 당연하고 당당하게 달려있어서, 잠시 눈을 의아하게 생각했던 내가 머쓱해지는 정도였다. 그분은 에스컬레이터가 끝나는 출구에서 금방 사라지셨다. 다만 출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혼자 흐뭇한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손자손녀가 할아버지에게 준 선물을 못 이기는 척 달고 다니시는 건가, 젊은 아랫직원이 준 기념품이 어쩐지 맘에 들어 정장가방이지만 달아버리신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키링을 제작하시는 업체 사장님인가! 어떤 상상이 되었든 흥미로운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기대와의 갭차이에 사죽을 못쓰는 게 이래서인가. 한 마디 말을 못 나누었지만 유쾌한 어른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어서 버스를 탔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야 집 앞에 도착하는 퇴근길이다. 그 버스구간은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항상 사람이 많다. 버스 안은 혼잡하고 바로옆사람의 뜨거운 숨까지 내 귀밑에 훅 끼칠 때도 있다. 그리고 말해서 뭐 하랴. 퇴근길이다. 다들 지치고 예민한 상태인 것이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사람들만 가득한 까칠한 차 안이다. 그런데 버스를 타면서부터 조금 심상치 않았다. 카드를 찍는 사람 모두에게 조금은 나이가 지긋한 기사님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하시는 분들은 가끔 만나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다. 다들 그런가 보다 하는 것 같았다. 되받아 인사를 다시 하는 승객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기사님만 인사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득 차 더 이상 사람들이 탈 수 없을 때 차가 출발했다. 기사님은 다시 말했다. ‘다들 주위에 있는 손잡이 잘 잡으시고요. 정차하고 천천히 내리셔도 되니 중간에 일어서시면 위험합니다. 차 출발합니다’ 그 후로 몇 번의 정류장에서 차가 설 때마다, 기사님은 다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제 사람들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이 분은 찐이다! 몇몇 사람들은 같이 인사를 하면서 내렸다. ’감사합니다.‘ 이제 내가 내릴 곳이 되었다. 어쩐지 꼭 인사를 하고 싶었다.(나는 평소에 인사를 호쾌하고 유쾌하게 먼저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꼭 해야 하는 경우만 적당히 한다.) 문이 열리고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네에, 고~맙습니다.’가 돌아왔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집건물까지 걸었다. 멋진 어르신들을 연달아 만났다. 돈, 권력, 지위 같은 거로 내가 난데!, 나 대단한 사람인데! 하는 것보다, 이런 게 훨씬 많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만 그런가. 난 이런 게 백배천배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