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을 읽어요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자주 묻는 질문(FAQ)
독서가 취미이고, 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시큰둥해한다. 취미가 무어냐는 상대방의 질문에 성의 없이 대답한 것마냥 취급된다. 대답에 뒤이어 다독하는 편이고 그 정도가 보통 한 해에 백 여권 내외라는 말을 들으면 그제서야,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며 이런저런 질문을 해온다. 자주 받는 FAQ 같은 게 있다.
책 많이 읽어서 똑똑 해지셨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교과서와 동일한 취급을 하는 건지, 많은 이들이 책에서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 독서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독서도 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독서에서도 지식과 정보가 채워지기도 한다. 다만 독서는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구나, 정답은 없구나,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게 다르구나, 등의 생각이 채워지지, 시험기간 전 벼락치기를 한 머리처럼 툭치면 쏟아질 것 같은 단기적 지식창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전체를 조망하고, 이해, 관찰하고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헤아림의 날이 날카로워진다. 하지만 이건 일종의 근육 같은 거라 단기적으로 만들어지거나, 한 번에 채워지는 성질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책이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르지만 꾸준히 읽는 사이에, 어라 스쿼트를 백 개를 할 수 있게 되었네? 턱걸이를 스무 개를 하고 있네? 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매달리기조차 어렵다. 나도 그랬다.
무슨 책을 읽으면 좋아요? 뭐가 제일 좋았어요?
보통 앞의 많이 똑똑해졌냐는 물음에 시큰둥한 대답을 들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질문이다. 요즘 유튜브에 넘쳐나는 추천 아이템들을 보면, 이게 스스로 생각하거나 결정하지 않고 남들이 좋다는 것, 괜찮다는 것을 하는 시대상을 반영해 이런 콘텐츠들이 많은 건지, 반대로 그러한 추천아이템에 사람들이 이미 익숙해져 버린 건지 전후를 알 수가 없는데, 그래서일까. 대부분 한 권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아니면 제일 재밌었던 한 권을 꼽아달라고 한다. 마치 나의 독서인생을 그 한 권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책은 상품으로 빗대자면 엄청난 수의 다품종 상품이라, 분명히 좋고 나쁨이 존재한다. 다만 이는 일반적인 기준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성향, 당시 상황, 기호 많은 것들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내가 좋았던 책이 다른 이에게도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어느 정도의 일반론은 물론 존재하고, 관심사나 독서력, 성향이 유사한 타인의 추천을 참고하기도 한다.) 다만, 경험상 대부분 책추천은 어른들의 충고, 잔소리만큼 하지 말아야 하더라. 그야말로 안 맞다. ‘총, 균, 쇠’라는 책이 많이 회자가 될 때 많은 이들이 총을 채 들지도 못하고 책을 내려놓았다는 사람이 많았다.(그 책은 총, 균, 쇠 순으로 서술된 두꺼운 책이다.) 내 관심사나 성향, 지금의 상황을 전혀 고려되지 않은 ‘남들이 좋다는’ 책이었기 때문이리라.
왜 책을 읽어요? 이렇게 재밌는 게 많은데.
위 질문과 대답까지 마치면 많은 이들이 독서에 대한 정나미가(그리고 이렇게 대답하는 나에 대한 정나미까지) 떨어지려 한다. 이 정도 되면 꼭 나오는 질문이다. 유튜브, OTT, 등 재미있는 콘텐츠가 이리도 많은데, 왜 굳이 책을 읽느냐고. 유튜브가 재미있다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안 하는가? 짜장면이 맛있다고 다시는 비빔밥을 먹지 않는가? 엄마가 좋으면 아빠는 싫어해야 하는가? 책과 독서는 일종의 삶을 이해하는 방법론이다. 위에서 한 대답들로 그 방법론이 책만 유일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지만, 그 방법론은 꼭 책이 아니어도 된다. 어떤 이에게는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인간관계가 될 수도 있고, 다양한 실전경험일 수도 있다. 다만 보통의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한 가지만 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음식을 먹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 책도 그 일부인 것이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책은 그 자체로 무수히 많은 저자가 무수히 많은 경험을 펼쳐놓은 ‘다품종’이기 때문에 질릴 새가 없는 것이다. 그 방식은 수 천년 간 지속되어 온 종이에 쓴 활자이지만 늘 새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유튜브 본다. 재밌다. 무지 재밌다. 하지만 책도 재밌다. 좋은 책을 만나면 가슴이 몽글거리거나,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때도 있다. 그런 것이다. 그냥 다른 것이다.
사실 책 읽는다는 얘기를 이래서 안 한다. 누군가가 또다시 질문을 한다면 이 글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럼 또 질린다는 표정이 될지도. 늘 그랬듯 조용히 읽으련다. 좋은 건 나만 아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