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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구차 Nov 20. 2024

반존대

상대가 원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방식을 쓰고 있지 않은가

반존대라는 이상한 화법이 있다. 존댓말을 하기에는 서로 간의 친근함, 편함이 좀 더 드러나야 할 때 쓰는 것 같다. 혹은 존댓말을 하기에는 너무 격식을 차린 것 같고, 그렇다고 반말을 하는 사이는 아닐 때 쓰는 말 같다.(사실 정확한 정의는 없다.) 희한하게도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면서 호불호가 있는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는 격식 없는 편안함을, 누군가에게는 싸가지를 보이는 말인 듯하다. 그 누구도 합의되지 않은 애매한 영역의 화법이라 하겠다.


회사에 있으면, 독방에서 일하지 않는 한 주위의 여러 가지 대화들이 들으려 했건, 안 했건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등 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 아, 오늘 OO님 컨디션이 별로군, ㅁㅁ 프로젝트는 잘 안되고 있군 등이 자연스럽게 캐치된다. 어제는 묘한 대화를 들었다. 같은 부서의 동료사이는 아닌데, 가끔 일을 협업하는 사이었다. 한쪽은 이미 상대가 편한 모양이었고, 한쪽은 어쩐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A님, 이게 접속이 잘 안 되어서요. 왜 나만 안되지. 이거 좀 봐주세요. 해결해 줘~“. 앞서 말한 반존대의 깔끔한 예시였다. 그런데 묘하게 이를 듣는 상대방은 약간은 떨떠름한 모양새였다. 일은 간단한 이슈였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이 되었으나, 영 공기가 이상해진 분위기였다. 받는 이가 묘하게 의도적으로 전체 반말을 쓰는 듯했다. B 님이 잘못 접속했네. 이런 거 왜 나한테 물어봐“.


그간에 그들의 대화의 변화를 모두 지켜봤던 터라 뭔가 턱을 넘어 이상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처음 반존대를 쓴 이는 사실 상대보다 한참이 어리고 연차차이도 났다. 그럼에도 상대에게 편안함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이게 정확히 합의되지 않았던 좀 더 나이가 많은 이는 이를 반말로 누르려고 하는 듯했다. 처음은 둘 다 존댓말로 지금보다 더 편하고 화목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반말이 섞이면서 어쩐지 감정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 같았다. 적어도 나이가 많은 쪽은 반존대를 쓰는 상대가 불편한 듯 보였다. 이 화법에 대해서 서로 간에 한 번도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걸 합의까지 해야 하나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게 아냐, 는 마음에 서로가 맞다고 생각하는 화법을 상대에게 강제한 탓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둘 간에는 뭔가 한 끗차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듣고 있는 나조차도 이게 이런 일들이 문제가 되곤 할까,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같은 타인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건가. 아니면 그저 나이로, 연차로 구분 지어진 위아래가 역전된 것이 불편한가. 그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은 한쪽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는데 앞서 말한 대로 정답이 없고, 호불호가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법으로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리고 사용해 버린 데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반존대는 뉘앙스가 절대적이다. 아니 그 이전에 존댓말도 반말도 뉘앙스가 모든 대화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존댓말을 꼬박꼬박 하는데도 기분이 나쁜 말이 있는가 하면, 반말을 듣는데도 저 사람이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가 물씬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반존대라니. 뉘앙스에 따라 천차만별인 언어가 될 테다. 이게 상대에 따라서 어떻게 느껴졌을지는 상상도 안된다.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인사가 날카로운 폭력으로 다가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별거 아닌 커뮤니케이션 장면에서 거창한 얘기까지 흘러온 것으로 보이겠다. 하지만 이건 나에게 쓰는 반성과 회고의 글이기도 하다.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혹시 내가 후배에게, 동료에게 편하다는 말로 상대가 원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방식으로 상처를 준 일은 없을까. 즉각적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은 늘 어렵다. 급하고 바쁘고, 이제 회사에서 뭘 좀 아는 나이가 된 것 같을 때, 그때 좀 더 조심해야겠다. 어렵지만 조심해야 한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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