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찾아야, 더 중요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낫 투두 리스트 : Not To-do List를 제안한 적이 있다. 문법적으로 맞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으나, 흔히 알고 있는 투두 리스트 : To-do List의 반대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아닌, 하지 않아야 할 일의 목록이다.
개발과 기획이 필수인 플랫폼회사에 있을 때인데, 개발속도가 원하는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 경영진의 수명업무로 내부 컨설팅을 진행했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부컨설팅은 사실 거창한 것은 아니고 관련 이해관계자와 많은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활동인데, 그 당시는 그런 이해관계자 수가 30~40명 정도, 정식인터뷰도 하고 티타임도 하고 어쨌든 많이 이야기하기보다는 많이 들었다. (물론 팀이나 부서 사람별로 분절된 업무나 프로세스, 기록, 자료 등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모두 살펴보고 그야말로 뜯어보는 거창한(?) 작업도 한다.) 여하튼 이에 대한 정리보고서가 나올 때쯤 되니 사실 이유는 생각보다 명쾌해져 갔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 페이지가 너무 많은데, 여기를 개편하거나 수정해야 할 것들이 같이 많아지고 있었던 것. 쉽게 말해 일이 많아서 일이 느려 보였던 것. 학교를 하나만 다녀도 숙제가 많은데, 학교를 3개, 5개씩 다니면서 스스로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고, 결국은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양의 공부들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더 큰 문제는 이 많은 양의 공부, 숙제를 하는 사이에 모두가 지쳐있었고, 그로 인한 이차적인 문제들도 속속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름의 컨설팅, PI활동이다 보니, 현안을 파악하는데에서 그칠 수 없어서 대안을 생각해보려 했을 때 나온 것이 낫 투두 리스트였다. 실제 개발과 기획에서는 어느 회사나 우선순위 관리가 필수적이라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짧든 길든 우선순위 투두리스트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이 우선순위 리스트는 추가가 되기는 쉽고 삭제가 되기는 어려운 구조다. 삭제는 일을 완수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 월/분기/연 단위로 아무리 끊어 관리한다고 해도 그 마지막 시기 즈음에는 걷잡을 수 없는 방대한 리스트가 되고 만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누구도 그만두는, 하지 말자는 결정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하자, 추진하자, 진행하자는 결정은 시시각각 수시로 일어나지만, 이를 누적적인, 전체적인 관점에서 다시금 바라보고 재정리하는 활동은 대개 그냥 넘어간다. 아니, 아예 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결국 모든 비즈니스와 경영활동은 제약요소와의 싸움이다. 사람도, 돈도,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특히 모두가 간과하는 ‘시간‘은 가장 비즈니스를 옥죄는 제약요소인데, 가장 하찮게 여겨지는 요소이기도 하다. 무한정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일을 벌인다. 우선순위를 관리하는 투두리스트도 똑같다. 이 쯤되면 투두리스트가 아닌 투위시(To-wish) 리스트 정도로 전락한다. 그게 다 되면 참 좋겠네. 이룰 수 없는 꿈과 희망이 되는 것이다. 비즈니스, 경영, 사업에서 이런 식의 그랬으면 좋겠네는 택도 없는 일이다. 꿈과 희망만을 그리는 그 순간에도 다른 경쟁사, 업계, 시장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처음으로 돌아가면, 그래서, 낫투두리스트를 제언했었다. 일단 지금 당장 저 엄청나고 거대한, 누구도 들어가기 싫어하는 방이 된 리스트를 한번 싹 정리하고, 앞으로는 주기적으로 이처럼 드롭만, 펜딩만 시키는 자리를 만들자는 거였다. 작은 것들부터 그만두어야 더 큰걸 할 수 있다고 설득해보려고 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여러 가지 정치적인 상황 등등이 얽혀 이는 도입되지는 못했다.(이게 왜 그런 상황에 얽혀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지만 지금도, 작게는 내 작은 업무, 삶에서도 가장 유용한 관점이 이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찾는 것. 그래서 더 중요하고 큰 일을 하는 것. ‘하는 것’을 더 만들기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찾아 ‘하는 게’ 때론 더 낫다. 아니 거의 대부분 그냥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