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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비스트 Aug 30. 2020

국제화 시대의 하녀들

국경을 넘는 돌봄노동의 분업화 

벤쿠버에 소재한 유비씨 대학 캠퍼스는 커다란 수목이 우거 진 장장 54km에 달하는 공원을 비롯해, 누드비치와 다양한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캠퍼스 바로 옆에는 골프장과 부유한 동네가 자리하고 있는데, 다운타운에서 대학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그 근방을 지나게 된다. 


평소처럼 버스를 타고 그 동네를 지나가던 날이었다. 아시아 출신 인구비율이 높은 밴쿠버 이건만, 유독 그 동네에서는 동양인 거주민을 쉽게 볼 수 없었다. 멍을 때리며 창밖을 보다가, 갈색 피부의 여성들이 유모차를 밀고 산책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유모차 안의 아기들은 한결같이 피부색이 뽀얀 백인 아기들이었다. 좀 특이하다 싶었는데, 이후에도 그 동네를 지날 때마다 브라운색의 아시아 여성들이 백인 아기들이나 어린이들과 같이 걸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녀들은 때때로 유모차와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채 버스에 오르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는 아이들에게 유창한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그 순간 책이나 미디어에서 접했던 필리핀 출신 입주도우미 노둥자들임을 깨닫게 되었다. 


추후 토론토나 핼리팩스에서도 그들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내 안에서 어떤 불편함이 조금씩 올라왔다. 물론 그 불편한 감정은 그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여성의 돌봄 노동을 둘러싸고 국경을 넘어 조직화되는 불평등함, 인종화된 노동과 그녀들의 노동환경, 모성신화 같은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한국이나 캐나다나 임노동자 한 명의 수입으로 핵가족 전체를 부양하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다. 대게 이 시점에서 여성들의 교육 수준 향상과 노동시장 참여 이야기는 공식처럼 등장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다지 쉽게 동의되지 않는 지점도 있다. 그건 중/상류층 여성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소득층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노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명의 수입으로 중산층 가족이 먹고살던 환경에서, 이제 남녀가 맞벌이를 해야 먹고사는 것이 과연 더 나아진 건지 잘 모르겠다. 어찌 됐건, 맞벌이 부모들에게 육아의 사회화는 노동을 지속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이슈이다. 문제는 육아의 사회화가 요원하고, 개인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  


퀘벡주를 제외하고 캐나다에서 저렴한 탁아시설이란 그림의 떡인 형편이다. 예컨대, 내가 살고 있는 온타리오 주에서 아이를 육아 기관에 맡길 경우 한 아이당 1000불이 넘는 비용을 매달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종종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걸어놓고 탁아소에 자리가 생기길 기다리기도 한다. 탁아비용이 부담이 안될 정도의 고소득 직종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부모들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비싼 탁아비용을 생각해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육아전쟁과 더불어 모성신화가 주는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가게 되는데 캐나다라고 예외가 아니다. 얼핏 보기에 성평등을 성취한 듯한 이 나라에서도, 2019년 통계에 따르면 퀘벡주를 제외하고 출산휴가를 신청한 "아빠"들은 11%에 불과했다. 2017년 설문조사를 보면, 아직도 여성이 요리와 세탁을 더 맡아서 하고 남성이 수리를 전담하는 등 가사노동의 젠더화경향이 있다. 동거가 아닌 결혼을 한 커플의 경우 그 경향이 더 뚜렷했다. 


저렴한 양질의 탁아시설로 성평등 지수를 높이는 대신, 캐나다는 다른 선택을 했다. 바로 영어를 할 수 있는 필리핀 여성들을 수입해, 육아 등 돌봄 노동을 맡기고 그 대가로 추후 이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입주도우미 프로그램(Live-in Caregiver Program)"을 만들어 적극 활용해 왔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캐나다인들은 필리핀 여성들에게 적절한 임금을 주어야 하며 그들이 집안에 따로 생활할 수 있는 독방을 제공해야 한다. 즉,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토론토 스타)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필리핀 여성들은 영어나 불어를 구사해야 하고, 관련 경험과 교육이 있어야 한다. 최근 이민법이 바뀌기 전까지, 그들은 고용주의 집에서 2년을 꼬박 거주하며 일을 해야 했기에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권을 빼앗기거나, 주말 등 휴일 없이 일을 하고, 사생활 침해와 성폭력 및 학대를 당했기에, 현대판 노예제라는 오명을 받기도 했다.  


학자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제3세계 국가인 필리핀에서 온 가난하고 인종화된 여성들의 재생산 노동 덕분에 중/상류층 여성들은 자아실현과 직업적 성공을 갖게 된다. 특정 그룹의 여성들이 다른 그룹의 여성들에게 의존함으로써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 필리핀의 여성들은 캐나다, 영국, 호주, 미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두바이 등 약 130여 개의 국가에서 가사노동자 혹은 육아도우미(nanny)로 고용되어 일을 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필리핀 여성들이 배우자나 아이를 데려오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는 이 여성들이 자국의 시민들과 동거하거나 결혼하는 것도 금했다. 중동의 몇 국가에서는 사전에 임신 테스트를 하기도 한다.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필리핀은, 1980년과 1999년 사이에 총 9번에 걸쳐 세계은행으로부터 구조조정을 위한 대출을 받아 그 부채가 상당하다. 이 상황에서, 필리핀 여성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돈은 국가경제에 아주 중요하다 (GDP의 10 %). 필리핀은 이 여성들을 국가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여성인력 "수출"에 매우 적극적이다. 70년대 한국의 파독 간호사와 광부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해외로 송출되어 일하는 이 여성들이 항상 미혼인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본국의 조부모에게 맡기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어떤 경우에는 10여 년동안 엄마와 아이가 만나지 못하다 영주권을 받고서야 아이를 캐나다로 데려와 해후하기도 한다. 영주권을 받아 아이들과 같이 살게 되어도, 서로를 낯설어한다. 엄마의 부재를 탓하며, 일탈을 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이 필리핀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지 못하고, 캐나다 전문직 여성들의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선택에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필리핀 언론도 이중적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국가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동시에, 한편으론 엄마 없이 괴로와하는 아이들을 보여주며 이를 방치한 필리핀 엄마들을 비난한다. 

(네셔널 포스트)


캐나다 전문직 여성의 경우에도, 일하는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끼거나 모성신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양육은 반드시 여성이 해야만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아이들은 모자란 존재가 되어 어머니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식의 믿음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쉬운 대안이 없다. 일하는 남성들처럼 가사노동과 육아를 담당할 또 다른 "와이프"가 있어야 직업적 성공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필리핀 가사노동자들도 본국에 "와이프"가 있어야, 캐나다에서 아이를 돌보는 노동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성의 상업화와 소외가 국경을 넘어 국제적으로 분업화되고 있는 것이다. 남겨진 아이들은 필리핀의 할머니들이나 가난한 필리핀 육아도우미가 키우고, 필리핀 여성은 캐나다 전문직 여성의 아이들을 키우며, 캐나다 여성들은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이 되는 재생산 노동의 분업 말이다. 


캐나다 이민국이 만든 이 제도는 다양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보여준다. 1) 재생산 노동이 국제적 분업에 포획되면서 모성은 더 상업화되고, 아웃 소싱된 육아노동이 모성신화를 없애는데 도움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2) 나아가, 국제화시대에 자유경제를 이야기하며 국경이 없다고 말하는 반면, 실제적 노동을 하는 필리핀 여성들은 자유로이 가족을 동반하기도 힘들다. 식민을 경험한 가난한 국가의 개인들은 개인 이주가 자유롭지 않지만, 돈은 사람보다 더 자유롭게 탈국가화가 가능하다. 서러운 현실이다. 3) 동시에, 역사적으로 불평등하게 구조화된 국가 관계가 이렇듯 필리핀 여성의 이주에 영향을 주며, 그 가족들 또한 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4) 무엇보다도 노령화와 저출산 문제에 당면한 지금, 캐나다는 여전히 돌봄 노동을 개인들이 책임지도록 방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육아의 사회화는 너무도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참고자료: 

Rhacel Salazar Parreñas (2001). Servants of globalization: women, migration and domestic work.

https://www150.statcan.gc.ca/n1/en/daily-quotidien/200219/dq200219e-eng.pdf?st=eUZm_HFP

https://www.thestar.com/news/immigration/2014/07/22/filipino_canadians_fear_end_of_immigrant_dreams_for_nannies.html

https://nationalpost.com/opinion/susan-mcclelland-on-nannies-from-the-philippines-suffer-the-careg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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