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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비스트 Aug 27. 2020

인종화된 아시아 여성으로 산다는 것

여성주의는 "어떤" 여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지 물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볼 때, 당신은 무엇이 보입니까?"라고 흑인 여성이 물어보았다.
"여성이 보입니다."라고 백인 여성이 답했다. 
"바로 그게 문제인 거죠. 나는 흑인 여성을 봅니다. 이 문화에서 나는 특권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인종을 일상적으로 볼 수밖에 없죠. 하지만, 당신 눈에는 인종이 보이지 않아요. 그 이유 때문에, 우리의 동맹이란 게 가짜로 느껴지는 겁니다." 

["When you wake up in the morning and look in the mirror, what do you see?" she asked. "I see a woman" replied the white woman."That's precisely the issue, " replied the black woman. "I see a black woman. For me, race is visible every day, because it is how I am not previleged in this culture. Race is invisible to you, which is why our alliance will always seem somewhat false to me" (Weber 2004, p.129)]


위의 대화는 베버(Weber)라는 흑인 여성주의자가 쓴 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여성주의를 논하기 위해서 우선 "어떤 여성"인가를 질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화이다. 


그렇다. 캐나다에서 유색인종 혹은 이민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성"이라는 보편적 카테고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다. 단순히 여성 대 남성의 구도로 바라보는 자유주의적 백인 여성의 페미니즘은, 베버가 강조했듯이 인종화된 여성들의 경험을 결코 포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성" 안에도 수직적이고 부조리한 권력관계가 있으며, 계급, 인종, 성 정체성, 장애 등이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그 권력관계의 얽힘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흑인 여성주의가 포문을 연 교차성 여성주의 (Intersectional feminism)는 여성운동이 백인 부르죠아의 입장에서 전개될 때 놓칠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들을 지적하고, 교차성을 읽어내는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제시한다. 무엇보다 백인 중산층 여성주의 프레임은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소수화된 여성들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매우 위험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사례들은 넘쳐난다.  


예컨대, 캐나다에 살면서 지겹도록 들어온 편견 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 여성들은 "조용하고, 고분고분하며, 수동적"이란 낙인이다. 아시아 여성들은 폭력적이고 뒤떨어진 가부장제의 문화에서 온 불쌍한 존재들이며,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수동적 존재라는 것이다. 아시아 여성들 스스로의 힘으로 그 가부장제를 벗어날 수 없기에, 서구 여성 혹은 서구 남성이 "구해 주어야 한다"는 영웅놀이와도 같다.


물론, 그들은 한국이라는 곳의 역사와 젠더관계에 대한 구체적 지식이 없다. 한국 여성들의 전투적인 역사를 전혀 모르면서, 허술한 상상력을 남발하는 것이다. 일제하 독립운동을 치열하게 한 여성들, 70년대 온몸으로 노동운동을 한 방직공장 여성들, 그리고 전투적인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이 수동적인가? 서구 여성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고분고분한가? 마구 터져 나오는 지금의 여성운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토록 오만한 백인 여성들의 시선에 심술이 나서, 때때로 "최루탄 냄새는 맡아봤니? 화염병이란 걸 만들어는 봤고?"라고 물어보는 취미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히잡, 부르카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들에 대한 편견도 바로 여성 안에 존재하는 차이를 무시한 서구 중심적 무지에서 비롯된다. 마치 그들이 극악무도한 이슬람 가부장에 끌려다니며 어쩔 수 없이 머리나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식이다. 히잡과 부르카를 쓰고 있는 여성들과 인간관계를 맺어보기라도 했을까? 내가 접한 이란 여성들만 해도 매우 괄괄하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무서울 정도이다. 서구사회의 적이었던 유태인의 자리를 대체한 이슬람 신도들을 향한 인종주의에 대항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히잡과 부르카를 쓰는 여성들도 있는 상황이다. 이슬람 정체성에 대한 긍정의 표현으로, 히잡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판적 여성주의는 이슬람을 공격하는 인종주의를 거부해야 하며, 다른 문화권의 여성을 수동적으로 묘사하고 구출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할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대변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행위자성을 무시한 오만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퀘벡주의 히잡금지 법안에 항의하는 여성들-https://www.theglobeandmail.com/)


(백인여성은 부르카를 쓴 여성을 보고 잔인한 남성지배 문화라 비난하고, 이슬람 여성은 눈만 가린 백인여성을 보고 잔인한 남성지배 문화라고 탄식하고 있다)

저 삽화에서 두 문화권의 여성들은 서로가 남성지배 문화의 희생자라고 비난하고 있다. 부르카를 쓴 여성의 시각에서 볼때, 노출로 성적대상화를 경험하고, 끊임없이 다이어트를 하거나 거식증에 시달리고, 유방확대술을 하거나, 허리에 무리를 주는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것이 용인되는 문화가 과연 여성친화적이라 할 수 있을까? 만일 그런 것들이 백인 여성의 자립적 "선택"이라면, 부르카를 쓰는 것도 그 여성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구 제국주의가 백인 여성주의 어젠다를 전유할 때 얼마나 위험한지 또 다른 사례가 보여준다.   

(표지: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2010년 8월 9일 자 -http://content.time.com/time/covers/0,16641,201)

타임스 표지에 저토록 끔찍한 사진이 실려, 아프가니스탄의 코 없는 여성으로 알려진 아이샤(당시 18세)는 어린 나이에 강제로 탈레반 남성과 결혼했다. 그 후 시댁과 남편의 학대를 못 이겨 도망치다 잡혀 남편에 의해 코가 잘린 후 미군에 의해 "구출" 되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동시에, 그녀의 사진 옆에 쓰인 문구를 보라.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미국이 아프간을 떠나면, 마치 아프간의 여성들이 저렇게 탈레반 가부장제에 희생 당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군이 반드시 주둔하고 탈레반을 없애 그녀들을 구해주어야 한다는 메시지이다. 저 여성의 끔찍한 이야기를 빌미로 더 큰 희생을 낳는 전쟁을 치르고야 말겠다는 프로파겐다인 셈이다. "수동적 피해자"인 이슬람 여성들을 구해주겠다면서,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여성 민간인들에게 오히려 무작위로 무기를 날린 미국이다. 


그리고,  죠지 W 부시의 부인과 캘리포니아 주지사 부인이 아이샤의 옆에 붙어, 그녀가 코 재건 수술을 받게 해 주겠다며 수많은 미국 매체에 등장했다. 이 소식을 보도한 백인 여성 아나운서들의 태도에서도 '아 저 불쌍하고 힘없는 아프간 여성을 탈레반 가부장제에서 구출하자. 우린 위대한 미국이다"라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어이없게도, 연골조직으로 진짜 코를 재건하지도 않은 채 할리우드 특수분장으로 코를 만들어 붙인 후, 그녀를 카메라 앞에 세워 전 세계로 보도했다. 영어를 모르는 그녀가 "Thank you"라고 하는 말과 함께. 이처럼, 무비판적인 백인 여성주의는 오히려 민간인을 학살하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낳게 하고, 그들이 "구원해주고자" 하는 여성들을 들러리 삼는다. 누구를 위한 여성주의란 말인가? 


이 뿐인가? 미국의 흑인 여성들과 캐나다의 원주민 여성들은 경찰에게 도움을 구할 수 없다. 그들이 가정폭력을 당할지라도, 백인 중산층 여성들처럼 쉽게 경찰을 신뢰하고 배우자를 고발하기 어렵다. 죠지 플로이드 사례에서 보듯이, 경찰은 언제든 그들의 가족들을 다치게 하고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국가 모두 경찰을 앞세워 억압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서구의 여성주의가 다른 문화권보다 더 앞서 나갔다고 단순히 말할 수 있을까? 지면상, 캐나다에 한정해 보겠다. 캐나다는 여성 투표권이 1916년 3개의 주에서 인정되기 시작했고, 퀘벡은 1940년, 원주민 여성에게는 1960년이 되어서야 주어졌다. 남편 동행 없이 여성이 독립적으로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된 것도 1964년에 허락되었다. (주의: 1864년이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혼모에 대한 수치심으로 눈을 피해 수도원으로 어린 여성들을 보낸 경우가 허다했다. 경찰이 여성의 복장을 비난해서 slut walk이 촉발된 것도 2011년 캐나다였다.


위 사례들이 보여주듯이, 백인 여성주의를 보편적 틀로 상정한 채 다양한 여성들의 위치성을 무시하고 재단하는 행위는 폭력적이다. 서구의 여성주의가 앞서 나갔으리라는 생각 역시 근거가 빈약하다. 어찌 보면 서구 중심적인 사고를 내면화한 것이다. 


물론, 어느 나라의 여성주의가 앞서 있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무의미하며 쉽게 재단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역사와 정치적, 문화적 맥락을 분석하고, 젠더와 교차하는 사회적 카테고리들이 어떻게 불공평과 차이를 만드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것일 게다. 그로 인해 여성들이 가진 다양한 경험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변화되고 유동적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교차와 얽힘을 인정해야, 어쩌면 우리 여성들은 국가를 초월해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여성주의 아젠다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국경을 초월하여 전쟁과 인종차별, 노동착취, 장애차별 그리고 이성애 중심주의의 한계를 같이 논하기 위해서 말이다. 


많은 것들이 얽혀있는 지구화 시대에, 초국가적 여성주의는 인종, 계급, 성, 장애, 식민역사 등을 아울러야 마땅하다.   


참고자료: 

http://content.time.com/time/covers/0,16641,201 

http://psac-ncr.com/canadian-womens-history#:~:text=1960%3A%20Aboriginal%20women%20won%20the,without%20obtaining%20their%20husband%27s%20signature.

https://www.canada.ca/en/canadian-heritage/services/rights-women.html#a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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