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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Sorry' 대신 '죄송합니다'로.

by 피넛버터 Nov 28. 2024

약 1년 전 이케아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식당에서 카트를 끌다가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살짝 부딪혔다. 국적은 알 수 없지만 일단 외모상으로는 백인이었다. 나도 모르게 "쏘리"가 튀어나왔다. 이후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그 쏘리만 생각났다. 왜 나는 쏘리라고 했을까. 여기는 한국인데? 앞으로는 '죄송합니다'라고 해야겠다는 혼자만의 작은 다짐을 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국립중앙박물관을 갔을 때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뭔가 주머니가 허전하다. 아뿔싸, 화장실에 폰을 놔두고 나왔나 보다. 핸드폰을 찾으러 다시 화장실로 발길을 돌렸는데, 화장실 저만치서 누군가 내 핸드폰을 높이 들고 나에게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자세히 보니 외모상으로 백인으로 보이는 외국인이다. 내가 들어갔던 화장실 칸에 뒤 이어 들어간 사람인가 보다. 와 다행이다, 핸드폰을 다시 찾을 수 있어서.


나는 습관처럼 'th.." 발음을 위해 혀를 구부리려다가 지난 이케아 때의 그 작은 결심이 생각나서 구부리던 혀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또박또박 그리고 밝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공손히 인사했다. 사실 진심으로 너무 고마워서 한 두세 번 반복했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한국말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한국에 방문했으면 관광으로 왔던 출장이 목적이던 이 3종 세트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을 할 줄은 몰라도 최소한 들었을 때는 알아먹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방문하던,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오든 마찬가지다.


내 편견인가 모르겠지만, 사실 영어가 전 세계 공용어처럼 쓰이다 보니 영어권 사람들은 외국에 방문할 때도 딱히 그 나라 말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영어권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타 국가 대비 그런 경향이 짙다는 걸 개인적으로 여러차례 느꼈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데는 우리도 한 몫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의 이케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상대가 누구 건간에, 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상대의 인종을 파악하려는 노력없이도 일단 '죄송합니다'라고 나오는 게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상대가 영어를 못하는 유럽계 일수도 있고, 아니면 베트남과 유럽의 혼혈인데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일 수도 있다. 요즘처럼 국제결혼이 흔한 세상에 상대가 조금 '외국인처럼' 특히 '서양스럽게' 생겼다고 해서 불쑥 영어로 말을 걸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부끄럽다'라고 까지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못 하면 주눅 드는 게 당연하지만, 왜 한국에서 영어를 못하는 게 부끄러울 일일까.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이 말을 걸 때를 대비해 또는 단순 해외 관광을 위해 영어를 돈 주고 배울 게 아니라, 오히려 이 한마디만 연습해 놓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손안에 통역기가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아 물론 학업, 비지니스, 그리고 취미로 영어가 필요해서 배우는건 이 글에서 논외다).


"Sorry, I don't speak English"


영어 못한다면서 영어 못한다는 말을 영어로 이렇게 길게 하는 것도 좀 이상한가?


그러면,


"Sorry, no Engish"


정도까지만 하자.



2020년 6월에 발간된 서울신문에서 영어 스트레스와 관련된 설문 조사 결과를 보여주었다 (영어와 스트레스라는 단어의 결합은 어제 쯤 분리될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96%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높은 직장인의 스트레스에 비해 영어 사용빈도는 실제 높지 않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영어를 쓰는 빈도에 대해서는 ‘종종 사용’(32.3%), ‘보통’(29.7%), ‘거의 없다’(28.4%) 등이 근소한 차이로 1~3위를 차지했다. ‘자주 사용한다’는 9.6%였다. 즉 60% 가까이의 사람들이 영어를 보통 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한 셈이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Z40VQFWRN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Z40VQFWRN



우리가 초, 중, 고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면서 사교육 시장과 입시제도를 통해서 주입받은 이 '영어는 무조건 잘해야 함' 강박 때문에, 우리는 성인이 되어 노인이 될 때까지도 영어 스트레스가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만나는 외국인에게는 일단 한국말로 다정하게 말을 건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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