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거슬린다 싶으면 양육자 발작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감을 경험적으로 인지한 것이다. 기분 나쁘다 싶으면 득달같이 달려와 일러대는 당신들 자녀의 간사함임을 미련스럽게도 양육자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세상 내 새끼는 순진하고 착한 줄 알지만 절대 그러하지 않다. 정말 순수했다면 시시때때로 일러바치기를 활용하여 양육자를 가스라이팅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뭐가 있다 싶으면 흥분한 학부모가 전화 혹은 대면으로 등장하니 신박한 지랄 맞은 일들이 늘어간다. 언제까지 저런 뒤치다꺼리를 자처할지 답답하다. 그럼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물어보거나 조언을 구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난 다 자란 이를 가르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교사인 내가 가해자가 아님에도 기분 나쁜 감정을 고스란히 내게 전달한다. 교사가 감정 쓰레기통쯤으로 보이나 보다.
내키는 데로 질러대면 그런 부류들의 속은 후련한지 모르겠다. 교사인 나 또한 감정이 있는 사람인터라 이런 황망한 양육자들의 자녀가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똥은 피하기 마련이라 했던가! 이런 유전자를 지닌 것들은 가급적 멀리한다. 경우 없는 행동의 결과가 드러나지 않게 당신들의 자녀를 향할 수 있음을 그네들은 모르지 싶다.
손쉬운 부모 조정에 익숙한 녀석들이 이런 핸들을 노칠리 없다. 나이가 들어도 절대 달라지지 않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부류의 양육자들은 평생 당신들의 끔쪽같은 자녀 뒤치다꺼리를 해야 할 것이다.
명심해라. 이는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당신들의 양육방식에서 비롯됐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