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언급했듯 열정이 많다 못해 흘러넘칠 때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를 수소문해서 찾아 문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친부의 폭행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까 싶어 집으로 찾아가 설득도 해보았다. 아이에게는 나중에 대학을 들어가면 첫 등록금도 내주겠다는 오지랖도 부렸다.
양육자들의 민원은 이런 나의 열정에 무차별적 찬물을 끼얹었다. 이제는 방어적 태도를 취하며 내게 열정이 있었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교사란 직업을 선호해서 내딛지는 않았지만 기왕 하는 일은 제대로 해보려 했었다. 이제는 교사가 무엇을 행하는 직업인지 자각하고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려 나를 다잡는다.
이때부터 입버릇처럼 아이들에게 공표하는 말이 있다.
"우린 1년만 보고 말 사이"
찾아온다 연락하는 대다수 아이들은 늙어가는 녀석들 뿐이다. 가장 어린 고2에서 30대가 넘은 직장인들이다. 관계를 단절하려는 선긋기는 분명 내가 한 일이지만, 넌덜머리가 나게 나를 바꾸도록 만든 것은 나날이 증가하는 민원이 취미로 보이는 양육자들이다.
당신들은 단순한 전화 내지는 표현쯤으로 생각하며 망설임도 없이 퍼붓지만, 이를 받는 교사인 나는 무슨 의도인지부터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나 고심하게 됨을 그들은 전혀 모른다. 시시콜콜한 가정에서 처리할 일들까지 자신들은 떠넘겨 놓고 매번 교사 탓만 하고들 있으니 교사가 당신들 자녀의 집사쯤으로 보이지 싶다.
그래서 더는 지나친 아이들이 반갑지 않다. 1년 어쩔 수 없는 관계가 끝나면 더는 알고 싶지도 않다. 그들의 양육자들은 당신들이 행한 짓거리를 까맣게 잊고 반가운 척 인사를 건네지만 난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이 떠올라 상당히 불편하다.
스트레스 덩어리를 자신의 바운더리에 허용하는 이는 거의 없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아 무표정한 태도로 고개만 살짝 숙일뿐이다.
11월이다. 이제 두 달이면 직업으로서 맺은 이 관계도 끝이다. 방학기간 마음을 추스르고 또 다른 단기 인연을 준비 아니 각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