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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heajigi Nov 15. 2024

필수불가결한 불편함을 기피하는 세태

마음의 손을 놓아버리는 이유

지금은 바쁜 중학교 생활과 또래와 어울림이 더 즐거운 시기라 자주 나들이를 나가지는 못하지만, 아들이 어렸을 때는 주말이면 어디론가 향했다. 꼬맹이들은 행동반경도 넓거니와 침대에서 떨어질 위험 때문에 호텔보다는 리조트를 주로 이용했다. 조식 패키지를 좋아라 했기에 가는 리조트마다 아침 뷔페를 먹었다.


언제쯤이었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다. 긴 줄이 늘어서 있기에 특별한 음식인가하고 지나치다 눈을 돌렸다. 계란프라이가 얼핏 보였다. 흔하디흔한 아는 맛인데 왜 줄이 길까? 궁금하긴 했다.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긴 줄이 있었던 계란프라이 한 접시를 들었다. 요리사 한분이 지긋이 전판을 지켜보며 계란을 익히고 계셨다. 센 불에 튀기듯 해버리면 간단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약불에 은근히 조리하고 있었다.

계란프라이 한 입을 베어 물고 요리사가 공을 들인 이유를 알았다. 내가 먹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마치 일식집 폭신폭신하고 매끈한 계란찜과 가정에서 흔히 만드는 구멍이 송송 뚫린 계란찜 차이처럼 말이다.

요리사로서 불편함이 상당한 차이를 만든 것이었다.


[셰프의 노력이 동반된 불편함이 확연한 맛의 차이를 불러온다는 사실.]

아들 아침으로 계란프라이를 한답시고 십 분을 익어가는 계란만 지켜보고 있었다. 정성은 헛되지 않음을 알기에 말이다.

'겨우 계란하나에.'라 생각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이 쉬운 계란 요리 하나도 넘긴다면 더 큰 것이라고 제대로 할리 없다는 의미이다.


20년 넘게 거쳐간 많은 아이들이 있다. 물론 난 그들의 가정에서 정확하게 어떤 일들을 겪어왔는지 양육환경을 직시할 길은 없기에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소풍 때마다 아이들이 챙겨 오는 도시락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어설프지만 정성스레 손수 만들어준 김밥은 해마다 급격하게 줄어든다. 빈통만 들고 가게로 달려가 김밥을 채워온 집, 이 정도 정성도 없이 스티로품이나 쿠킹포일에 말린 김밥을 들고 온 가정은 점점 늘어난다. 심지어 가서 사 먹으라고 돈만 덜렁 들고 있는 아이들도 물론 있다.


제 자식이 먹는 도시락에 쓰는 신경이 이 정도인데 다른 것이라고 다를까 싶다.

경제력 문제?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궁핍으로 도시락 준비가 어려워 가져오지 못하는 친구는 가끔 있어도 김밥을 사서 오는 친구는 없었다. 경제력 문제라고 하기에는 가방이 과자로 한가득이면서도 제대로 손수 준비된 도시락이 없다는 사실은 설득력이 없다.

시간 문제? 기상 시간을 당기면 될 문제라 변명의 여지라 할 수 없다.

김밥 말기의 어려움?

김밥을 만들어본 사람은 안다. 그것은 경험이 필요하단 사실을 말이다. 미리 연습하며 김밥 옆구리를 터트리면 어느 순간 수월해진다. 이 정도 노력이 과연 자녀를 위해 하지 못할 만큼의 어려움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저녁 장을 보고 이른 아침에 만들어야 하는 불편함을 가볍게 무시하는 처사일 뿐이다. 겨우 자녀 도시락에 이 정도 불편함을 기피할 정도인데 다른 것은 어떨지 안 봐도 그림이다.


결과는 필연적인 원인이 뒤따른다. 눈앞에 보이는 벌어진 현상 뒤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과정이 있어왔기 마련이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아이들의 뒤에 그보다 월등한 양육자가 있으리라 판단한다. 필수불가결한 불편함을 무수히 회피하는 부모의 태도는 고스란히 그들의 자녀에게 전수되기 마련이다. 지켜야 할 일들에 대한 불편함, 공부에 대한 불편함, 관계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을 이런 부모들의 자녀가 감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해서 아이와 닿아있는 마음의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소한 불편함이라도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고픈 부모라면 감내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한결같이 보여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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