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포만감

by 퇴근길의 메모장

채아가 잠들기 전에 하는 ‘수면의식’


냉장고에 붙은 할아버지, 할머니랑 찍은 사진 보고 ‘할아버지 잘 자’, ‘할머니 잘 자’

방문에 걸린 리버풀 머플러의 클롭과 앰블럼을 보고 ‘아저씨 잘 자’, ‘짹짹 잘 자’

첼시 머플러의 앰블럼을 보고 ‘어흥 잘 자’


풀이한테 ‘야옹 잘 자’

아빠한테 ‘아빠 잘 자’



침대로 들어와서 내가 동화책을 한 번 읽어주면

채아는 ‘또, 또’ 한다.

내가 검지 손가락 하나를 세우며 ‘마지막~ 한 번만 더 읽자’ 하면

채아도 양손의 검지 손가락을 추켜올려 내 손가락과 맞춘다.


두 번째 읽을 때에는 동화책 안에 자기가 알고 있는 것들을 죄다 말해야 책을 덮을 수 있다.

나비, 무당벌레, 애벌레, 토끼, 코끼리, 기린, 사자, 원숭이, 별, 달, 하트, 빠방, 경찰차, 구급차, 피아노, 실로폰, 탬버린, 나무, 꽃 …



그리곤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물론 채아가 아니라 내가 퍼붓는다.


‘이마 뽀뽀’ 쪽

‘눈 뽀뽀’ 쪽쪽

‘코 뽀뽀’ 쪽

‘볼 뽀뽀’ 쪽쪽

‘입 뽀뽀’ 쪽



벌써 이만큼이나 커서

엄마가 뽀뽀한다고 하면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 까르르 웃는다.

나중에는 진짜 싫어하는 날이 오겠지.



점점 예뻐지고 귀염져지고

말도 통하고 애교도 많아지고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니

오랜 기간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던 질문에 대한 정답이

머릿속에 정확히 새겨진다.


평생을 어떤 순간에만 살 수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이리라.

요즘이라는 순간에 무한루프를 걸어 갇힌 채로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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