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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Apr 25. 2022

수족냉증의 계절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일상

수면 양말을 신어도 데워지지 않는 두 발의 온도를 견뎌야 하는 계절이 왔다. 게으른 내가 더 게을러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기모가 잔뜩 들어간 후드티와 바지, 얇은 목도리와 두꺼운 자켓까지 걸쳐입으니 뻣뻣한 몸이 훨씬 둔해졌다. 몸에 열이 없는 편인 나는 9월부터 잠자리에 난방 텐트와 전기장판을 깔았다.

 
몇일 전 만난 엄마는 번화가를 지나다가 나에게 방울 달린 털목도리와 스마트폰 터치가 되는 장갑을 사주었다.  그는 진열된 장갑들을 유심히 보고 안감을 일일이 뒤집어보았다. 열 없는 몸으로 내 나이의 두배를 살아온 이의 연륜과 걱정이 느껴졌다. 기모가 들어있어 따뜻하고 때가 잘 타지 않는 예쁜 장갑이 내 손에 쥐어졌다.


애인은 유독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날 밤 자주가는 구제쇼핑몰에 접속해 충동적으로 아우터를 여러벌 구매했다. 얼마 뒤 배송 온 두꺼운 자켓들은 대충봐도 대여섯벌 정도 되었는데 그렇게 잔뜩 구매할 수 있었던 건 다 합쳐도 10만원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애인은 맨몸 위에 아우터를 하나씩 걸치고 원룸 화장실 거울로 옷태를 살폈다. 옷들 중 절반이 우람한 덩치를 가진 애인에겐 너무 작거나 딱 맞았다. 옷들 대부분이 애인이 원하는 넉넉한 핏감을 주지 못했다. FW 시즌 맞이 쇼핑이 애매하게 끝나 김이 새버린 듯한 애인은 미련 가득한 얼굴로 맞지 않는 옷들을 나에게 주었다. 기모가 든 튼튼하고 예쁜 자켓도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애인의 언박싱 현장에 있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 손과 발이 시린 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 나의 겨울나기를 돕는다. 그들의 온기를 받으며 둔하고 익숙하게 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올 겨울이 생각보다 춥지 않으면 어쩌지. 올 여름이 유독 덥지 않고 이상할 정도로 비가 쏟아졌던 것처럼, 올 겨울엔 흰 눈 쌓인 풍경 대신 다른 광경을 보게 되면 어떡하지. 정말 그렇게 된다면, 지구가 지구답지 않게 된다면 그건 모두 우리 탓일 것 같아 발 대신 마음이 서늘해진다.



2020년 1월 겨울, 반지하 원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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