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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Oct 08. 2019

타투하지 말 걸 그랬다.

내 인생의 오점. 코끼리 타투

그게 언제였더라.. 날짜라든지 그 날의 날씨 같은 건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토익공부를 해야만 하는 날이었다. 토익 공부를 안 하면 졸업도 못하고 취업도 못하고 따라서 돈도 못 벌고 결국엔 인생을 말아먹고 말 테니까. 

그런데 도무지 토익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강이슬의 껍데기는 도서관 의자를 바짝 끌어당기고 앉아서 책상 위에 두꺼운 토익책을 몇 권이나 쌓아두고 있었지만 강이슬의 알맹이는 ‘싫어 싫어 토익 공부하기 싫어’를 5초에 한 번씩 외치고 있었다. 이러다간 정말 내 인생이 망하고 말겠구나 싶었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할 뭔가가 필요했다. 스스로를 따끔하게 혼내기 위해 인터넷 창에 ‘공부 명언’ 따위를 검색해보았다. 그러다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명언을 하나 발견하고 말았다. 대략 이런 거였다.


‘당신이 죽기 전 신에게 시간을 되돌려달라고 빌었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오늘이 당신이 그토록 갈망하여 되돌린 과거라면 그렇게 살 것인가?’     


그 글을 읽고 눈과 턱을 커다랗게 벌렸다. 무릎도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탁 쳤다. 

‘와...’하는 감탄사까지 내뱉고 싶었지만 도서관에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얼른 휴대폰을 엎어놓고 다시 한번 도서관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았다. 산 지 한참 되었지만 여전히 새 책 같은 토익책의 흰 귀퉁이에 “후회하지 말자!”라고 적었다. 의지를 불태우며 첫 문제에 밑줄을 긋다가 그만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가만... 죽기 전에 하는 후회가 고작 토익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 뭐야 정말 잘 산 인생이잖아?'

     

그 생각이 스침과 동시에 토익책을 덮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이 꺼내 놓았던 색색의 볼펜들도 필통 속에 도로 넣었다. 소음이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가방을 싸고 가벼운 걸음으로 도서관을 나왔다. 죽기 전에 할 후회가 ‘오늘 토익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기를 간절히 빌면서.     

그 날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다행히 한 번도 ‘그 날 토익 공부하지 않았음’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러니 아마 죽기 전에도 토익공부를 하지 않은 그 날을 뼈저리게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토익 공부 말고 뭔가를 후회할 거라는 뜻인데 그놈의 죽기 직전에 할 후회가 도대체 무엇이 될지 감이 안 와서 나는 이따금 좀 초조해진다.     


어쩌다 읽은 공부 명언은 내 삶의 참 많은 부분을 합리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를테면 앞머리를 짧게 자를까 말까 고민이 될 때 한 번 곱씹는 것이다. 내가 오늘 앞머리를 자른다면 후회할까. 죽기 직전 마주한 신에게 제발 그 날로 되돌아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래서 앞머리를 자르기 직전의 나를 스스로 귀싸대기를 때려서라도 막게 해 달라며 눈물로 빌게 될 것인가. 아무래도 아닐 것 같기 때문에 나는 용감하게 앞머리를 자른다.  눈썹 위로 한참 올라간 앞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죽기 전에 후회할 만큼은 아닌 것 같아” 하고 씩씩하게 셀카를 찍는다.

     

어느 날엔 타투가 무지 하고 싶었다. 그 얘길 했더니 부모님은 물론이고 몇몇의 친구, 직장 동료들도 우려를 표하며 말렸다. 

"나중에 후회하면 어떡해?"  

"할머니 돼서 목욕탕 어떻게 갈 거야?" 

"백만장자와 사랑에 빠졌는데 시부모님 될 사람이 타투를 한 며느리는 우리 집에 들일 수 없다고 반대하면 어떡해?"     


타투는 신중히 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한번 타투를 해버린 이상 타투를 하기 전의 나로는 두 번 다시 되돌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얼마든지 다시 자라는 앞머리를 자른다거나, 돈만 내면 다시 칠 수 있는 토익 시험과는 레벨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혹시 모르지 않나. 어느 날 갑자기 내 팔자를 펴줄 백만장자와 정말로 사랑에 빠지게 될지.


나는 평소보다 훨씬 심각하고 진지하게 타투한 나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팔에 코끼리 문신을 한 내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맥없이 누워있다. 

육신을 눕힌 자리가 병원 침대 일지 아니면 뜨끈한 온돌 바닥일지, 아니면 구급차 안 일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눈물을 참으며 나의 마지막 유언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금방이라도 꼴깍 넘어갈 듯 위태롭다. 한참을 숨을 고른 후 주변의 도움으로 생전 마지막 물 한 모금을 마신 내가 갈라진 목소리로 느리게 말한다.


“내가.....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거는.... 이 거.. (힘겹게 코끼리 타투를 가리키며) 

이거를 하지 말았어야 혀....“     

하고 죽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목을 놓아 운다. 

"이슬아!!!!!" (혹은 "할머니!!")

나의 영혼은 둥둥 떠올라 죽은 나와 내 곁의 친구들 (혹은 후손들)을 바라보고 있다. 

강이슬의 영혼은 더 이상 손 등에 묻어나지 않는 눈물을 열심히 훔치며 숨이 넘어가는 바람에 하지 못한 말을 마저 이어한다.

“애들아 너희는 나처럼은 살지 말아라..”

나의 차가운 묘비에는 이런 말이 적힌다.

‘결국 코끼리 타투를 해버린 자, 여기에 묻히다.’     


심각하고 진지한 고민을 마친 나는 평소 눈여겨보았던 타투이스트에게 인스타 DM을 보낸다.      


- 안녕하세요. 이번 주 평일 중 코끼리 타투를 받을 수 있을까요?     


타투를 받은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코끼리 타투가 참 마음에 든다. 쌀쌀해지는 바람에 옷소매가 길어진 요즘에는 괜히 한 번씩 팔을 걷어 코끼리 타투를 확인할 정도로. 그러면서도 죽기 전 가슴을 치며 코끼리 타투를 후회하게 되기를 은근히 바란다. 코끼리 타투를 해버리는 바람에 인생이 완벽해지지 않았다고. 완벽할 뻔했던 내 인생에 코끼리 타투라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고 엉엉 울며 후회하고 싶다.

죽기 전에 후회할 것이 고작 반 뼘 짜리 코끼리 타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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