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으로 생고집을 부리고 있는 29.9세의 초겨울
저녁 바람이 심상치 않게 차다. 며칠만 지나면 빼도 박도 못하게 겨울이 오고 말 것이다.
지난봄에 차곡차곡 정리해 옷장 깊숙이 넣어 둔 두툼한 옷을 꺼내야 될 때가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그 짐을 풀지 못했다. 내일은 해야지. 내일은 정말로 옷 정리를 해야지 하며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벌써 11월이다.
며칠 전에는 겨울처럼 추워서 진짜로 옷 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이상한 굴욕감에 젖어 또 미뤘다.
20대의 마지막 겨울, 두꺼운 옷을 꺼낸다는 것은 서른의 혹한과 제대로 맞짱 뜨려고 전투복을 준비하는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기 때문이다. 얇은 옷을 입는다고 겨울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닌데 찌질한 정신승리를 하느라 애꿎은 코 밑만 헐고 있다.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그래, 옷소매로 코 닦을 나이도 지났고, 그러니까 두껍고 긴 옷은 필요 없어’라는 개똥철학으로 생고집을 부리고 있는 29.9세의 초겨울이다.
마지막 20대라고 생각하니 모든 계절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런 만큼 많이 아쉽다.
'이번 여름은 왜 별로 안 더웠던 것 같지? 가을은 왜 시작하자마자 끝이 나버린 걸까. 봄에는 벚꽃이 피었던가? 벚꽃이랑 단풍 사진 좀 많이 찍어놓을걸..'
지나간 계절에 대한 아쉬움을 이쯤에서 마무리하면 참 좋을 텐데, 항상 그 끝은 심술과 엄살이 뒤범벅된 자기 연민이다.
'왜 또 겨울은 이렇게 빨리 찾아오고 난리람? 가만, 겨울이 빨리 온 거야 아니면 나이 먹었다고 추위를 타는 거야? 왠지 뼈도 시린 것 같고,, 왜지? 설마.. 노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또또 오바한다! 그래, 아직은 20대인데 노화로 추위를 탄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엄살이잖아. 근데 왜 이렇게 춥지. 나이가 들면 체온이 낮아진다던데.. 설마..?'
얼마 전에도 이런 식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심에 깊게 빠져있었는데 심상치 않은 내 표정을 본 애인이 무슨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애인의 목소리를 붙잡고 망령된 엄살의 늪에서 빠져나온 나는 '어쩌면 내가 괜히 추위를 타는 게 아니라 정말로 겨울이 일찍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침착한 결론을 내렸다.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연하의 애인에게 이런 화두를 던졌다.
“이번 겨울은 좀 빨리 온 것 같지 않아? 왜 이렇게 춥지?”
애인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더운데?”
아뿔싸...
애인의 발그레한 두 뺨에 손을 대보니 과연 뜨끈뜨끈했다. 내 손이 시체처럼 차다는 애인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결국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말았다.
“내가.. 너보다 늙은 거야...”
참담한 표정의 내 머리 위로 뭉게뭉게 상상 구름이 펼쳐졌다. 상상 구름 속에서 애인과 나는 함박눈이 쏟아지는 거리를 나란히 걷고 있다. 애인은 캐주얼한 기모 후드티 위에 때깔 좋고 가벼운 가죽점퍼를 걸치고 있다. 그 옆의 나는 두꺼운 스웨터 위에 더 두껍고 긴 카디건을 걸치고 웬 촌스러운 보라색 숄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다. 그런데 허리는 왜 굽어있으며 숄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어째서 잿빛이지? 흡사 이솝우화 속의 할머니 같다. 이빨이 듬성듬성 빠진 내가 애인에게 말한다. “자기야 추워..” 애인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쪼글쪼글한 내 뺨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이슬아 밖에 나온 지 3분밖에 안 됐어”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눈을 뜬 채로 악몽을 꿨다. 지독하게 생생한 상상력은 서른 언저리에 찾아오는 악마의 선물인가. 그렇다면 악마는 정말로 개자식이다.
애인의 두 손을 꼭 잡고 세상 침울한 얼굴로 너보다 늙은 나라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애인은 콧웃음을 치며 고작 한 살 차이인데 뭐 그렇게까지 속상해하느냐고 말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혐오하는 꼰대 멘트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고작 한사아아아알?? 너도 내 나이 돼봐라 이 자식아.”
날이 추워지니까 올 해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내 20대에 사망선고가 내려지는 날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시끄럽게 보내고 싶기도 하고 조용하고 침착하게 보내고도 싶다. 어찌 됐든 애인이랑 같이 보내게 되지 않을까. 다행히도(?) 애인은 연상의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본 경험이 있다. 애인에게 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서른이 되는 날 어디서 뭘 했느냐고 물어봤다. 애인은 그 날 관악구에 있는 허름한 위스키 바에서 독주를 마셨다고 했다. 어땠냐는 내 질문에 애인은 멍한 얼굴로 “장난 아니었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올 해의 마지막 날, 그 위스키 바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버와 엄살 빼면 시체인 내가 서른을 맞이하는 자세는 그녀보다 훨씬 더 끔찍하면 끔찍하지 덜하진 않을 텐데 사랑하는 애인이 보다 능숙하게 상황을 헤쳐 나가도록 배려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두 번째에 더 잘하지 않을까.
“올해 마지막 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면 더 잘 대처할 수 있지 않겠어?”
나름 배려를 담은 말이었는데 애인은 웃지를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협박 같긴 하다.
작년에 비해 올해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요즘엔 따뜻한 라테를 주문한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는 얼죽아를 고집했는데 이제는 혀 끝에 얼음이 닿자마자 피가 식는 기분이다. 그리고 한 달 전에 걸린 감기가 도통 떨어지질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잠시 동안의 이별을 고했다.
안녕, 한 겨울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여름에 다시 만나.
얼죽아를 향한 미련을 버리는 대신 어떤 분위기를 배운 기분이다. 이를테면 초겨울 라테의 부드럽고 포근한 무드랄까? 생각보다 뜨거운 라테는 훨씬 맛있고, 하트 문양 거품을 야금야금 갉아 마시는 소소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라테를 마시며 내일은 정말로 겨울옷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찬 날씨에 따뜻한 옷 입는 게 뭐가 어떻다고 이렇게까지 오버를 했담. 생각해보니까 작년 이맘쯤엔 추워서 히트텍을 입었던것 같다. 스무살 초반부터 집착적으로 모은 내복들도 떠오르며 마음이 편해진다. 나는 원래 추위를 잘 탔구나!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부린 게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겨울에나 입을 법한 양털 외투를 입은 어린 친구들 무리를 보았다.
그러니까 나라는 놈은 아직 옷 정리도 못 했는데, 어린 친구들은 시즌을 앞선 지 오래였던 것이다. 우스운 종류의 패배감에 사로잡힌 채로 집까지 걸었다. 가슴께가 뻐근한게 성장통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