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짜증의 한 끗 차이
지옥 같은 신경치료 마지막 날이었다. 아픈 치료가 모두 끝나고 어금니에 씌울 크라운을 본 뜰 차례였는데 의사가 내 어금니를 유심히 보더니 이를 많이 깎아낸 탓에 치아 길이가 상당히 짧아졌다며 이 상태에서 크라운을 씌우면 쉽게 떨어질 염려가 있으니 잇몸을 절개하자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했다.
엄살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는 갑작스러운 수술 통보에 칼을 대기도 전에 졸도 직전의 현기증을 느꼈다. 날카로운 기구로 잇몸을 자르는 느낌을 어떻게든 잊어보려 발가락 열개를 하나씩 접었다 펴는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순간, 안 그래도 꽉 감았던 눈앞이 더 캄캄해졌다. 그와 동시에 은은하게 들려오던 클래식 음악소리도 뚝 멈췄다. 겨우 이 정도에 진짜로 기절해버린 걸까 싶은 찰나,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는 ‘잠시만요’ 한 마디를 남기고 치료기구를 정리한 뒤 자리를 떴다. 10초 정도 지났을까, 간호사 한 명이 얼굴을 덮었던 초록색 천을 거둔 뒤 말했다.
“죄송해요. 갑자기 정전이 되었어요. 상황을 파악 중이니 잠깐만 앉아계세요”
간호사는 자동의자의 버튼을 누르다가 정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내 어깨 아래로 손을 받쳐 일어나 앉는 것을 도왔다. 앉음과 동시에 목구멍까지 꽉 차있던 피 섞인 침을 작은 세면대에 울컥 뱉었다. 엄청난 중병에 걸린 기분이 들어 괜히 서러웠다. 간호사는 내 입 구석구석에 솜뭉치를 넣고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의료진들이 모여 있는 로비로 나갔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솜뭉치를 입에 넣은 채 눈동자를 굴리는 환자들이 파티션 너머로 여럿 보였다. 적막이 감도는 치료실에선 로비에 있는 의료진의 목소리가 잘 들렸다.
“관리실에 전화 해 봤는데 아직 원인을 모른대요.”
“아래층 치료실로 환자분들 옮길까요?”
“엘리베이터도 정전이야?”
“계단으로 가야겠네..”
피 젖은 솜을 입에 문 채로 의료진의 안내를 따라 고분고분한 좀비처럼 계단을 내려가는 환자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어이없게도 피실피실 웃음이 나왔다. 살다 살다 치과에서 치료받다가 정전이 되는 경험을 다 해보는구나, 시트콤 에피소드 같은 상황에 웃음을 참고 있었는데 옆자리 환자가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즈금 증느느느? 지스음그 이씨! (지금 장난하나? 재수 없게 에이 씨)”
입에 물린 솜 때문에 발음이 잘 되지 않을 텐데도 그는 뭉개진 발음으로나마 꾸역꾸역 욕설을 섞어 불평을 했다. 그런 그를 힐끗거리다가 눈이 딱 마주쳤다. 다행히 그 때 치료실에 불이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겨우 2분이 지나있었다.
의료진들은 다시 환자 곁으로 돌아와 짧지만 진심어린 사과를 한 뒤 치료를 시작했다. 잇몸 절개는 여전히 무서웠지만 전처럼 발가락을 접었다 펴는 대신 방금 전 벌어진 2분 동안의 정전을 생각했다.
그 짧은 시간은 사람에 따라 재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고 시트콤 속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웃음과 짜증의 한 끗 차이가 궁금했다. 그것은 과연 한 끗 차이라서 오늘 나는 웃는 사람이었지만 다른 상황에선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불쾌해 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웬만하면 오늘처럼 불시에 발생하는 사건들을 불행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코미디로 생각하고 유쾌하게 웃어넘기는 사람이고 싶었다.
**2월 29일자 한국일보 2030 세상보기 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