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마음: 2부 내면의 계절을 돌보다
물끄러미 한 끼를 떠올린다. 언제 마지막으로 오로지 나를 위해 음식을 준비했을까. 대충 끼니를 때우는 아침, 일터에서 허겁지겁 먹는 점심,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입맛과 기호, 건강을 고려해 조율한 저녁. 그런 하루가 쌓이고 쌓여, 식사는 어느덧 생존의 도구가 되었고, 돌봄의 행위는 남을 위한 수고가 되어버렸다. 나는 하루 세 끼를 챙겨 먹으며 살아왔지만, 정작 나를 위한 ‘한 끼’는 사치처럼 밀려났다.
언젠가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식사는 몸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보듬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정신없이 지나가는 하루 속에서도, 나를 위해 고른 식재료 하나, 물을 끓이는 소리, 조리되는 냄새, 그리고 따뜻한 접시 하나에 담긴 정성이 조용히 마음을 어루만진다. 남의 식탁을 위해서는 수없이 손을 움직였지만, 나를 위한 식탁은 한 번도 정성스럽게 차려 본 적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낯설어졌다.
가족을 위한 수고는 분명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입맛을 떠올리며, 누구는 짠맛을 좋아하고 누구는 맵지 않은 음식을 선호하며, 누구는 건강을 생각해 기름기 없는 식단을 원한다. 나는 늘 그런 각각의 기호에 맞춰 메뉴를 짜고, 간을 맞추고, 식사 시간에 맞춰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 나의 입맛, 나의 기분, 나의 필요는 조용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따뜻한 죽 한 그릇, 갓 구운 식빵 한 조각, 제철 채소로 만든 샐러드. 그 단순한 바람조차 그저 욕심처럼 여겨졌던 시간들.
식당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함께한 이들의 취향에 따라 메뉴를 선택하고, 분위기에 맞게 주문을 조율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식사는 또다시 ‘나’와는 거리가 먼 시간이 된다. 내가 무엇을 먹고 싶었는지, 어떤 맛을 원했는지 묻지 않는다. 식사의 중심에는 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혼자 식사를 한다. 집에서 혼자, 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 공간에서. 때로는 작은 식당 구석 자리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이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천천히 고르고, 천천히 입에 넣고, 조용히 그 맛을 음미한다. 마음이 느슨해지고, 숨이 고르게 가라앉는다. 음식이 위장을 채우기 전, 이미 나의 감정과 마음이 먼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이런 식사는 나를 돌보는 일이다. 하루의 소란 속에서도 나를 잊지 않게 해주는 작은 의식이다.
하루 한 끼라도 나를 위한 식사를 해보자고 다짐한다.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단 하나의 재료로 만든 간단한 요리도 좋다. 중요한 건 그 한 끼를 준비하고 먹는 동안 나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나의 감각에, 나의 리듬에, 나의 취향에 귀 기울이며 먹는 일. 그렇게 하루에 단 한 끼라도,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연습을 반복하면, 삶은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른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나의 하루를 대하는 시선이 더 따뜻해질 것이다.
누군가의 취향과 기호를 고려해 식탁을 꾸미는 것도 분명 아름다운 일이지만,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루 한 끼, 그 단순한 식사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만나고, 나를 위로하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쌓일수록 내 삶은 조금 더 충만하고 부드럽게 살아질 것이다. 하루 한 끼, 나를 돌보는 연습. 그 연습을 오늘부터 시작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하루의 소란 속에서도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한 식사의 시간을 돌아보며, 삶의 작은 온기를 지키기 위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