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마음 Jan 04. 2022

[어른도 그림책] 당신처럼 부지런히 사랑하며 살까합니다

<사랑하는 당신>(고은경 글, 이명환 그림, 곰세마리, 2020) 




<사랑하는 당신>(고은경 글, 이명환 그림, 곰세마리, 2020)

새해 첫날, 어제 떠올랐던 붉은 해지만 사람들은 세상에 처음 떠오르는 태양처럼 아침 해를 새롭게 여긴다. 새해 첫날은 희망과 새로움, 탄생과 연결되고, 그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는 소멸, 슬픔, 사(死)가 존재한다. 새해 아침, 지인 가족 부고 소식을 접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그이의 마음은 희망으로 첫날을 맞는 이들과는 사뭇 다르겠지. 갑자기 딴 세상에라도 간 듯 그의 마음은 어떤 말로도 위로될 수 없겠지.


나는 오늘 당신에게 <사랑하는 당신>을 전합니다.


당신이 손 떨린 글씨체로 남긴
레시피 공책을 발견한 날이었습니다.
나는 눈이 따갑도록 참았던 눈물을 쏟았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에서



<사랑하는 당신>은 고은경 작가가 호스피스 사별가족 모임에서 만난 어르신을 모티브로 한다. 할아버지는 오늘도 국간장과 진간장이 헷갈린다. 아내와 영원히 이별을 한 할아버지, 일흔이 넘어서 하는 요리는 쉽지 않다. 아내가 레시피 공책을 남겨 꼼꼼히 일러주었는데도 말이다. 할아버지는 “남편은 일해서 처자식 배불리 먹이고, 아내는 자식 키우며 살림 잘하면 걱정 없이 잘 사는 거”라 여겼다. 아내가 들으면 다 늙어 주책이라고 하면서도 웃음 가득할 “사랑합니다”라는 그 흔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저 열심히 살면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함께 살림하는 행복’을 뒤늦게 알아챈다. 사랑하는 당신이 떠난 후.



<사랑하는 당신>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지친 몸으로 딱딱한 바닥에 눕습니다.
나도 당신 곁에서 그만 쉬고 싶습니다. 

- <사랑하는 당신>에서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상실을 가장 크게 느낀다고 한다.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살기에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 또한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별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준비를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사랑하는 당신>의 할아버지는 아내가 떠나고 구멍 난 양말을 신을 때처럼 허전함이 불쑥 밀려오기도 하고, 불 꺼진 집처럼 마음이 어두워져 아내 곁에 그만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를 두고 정신과 의사이자 전 세계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상실의 현실은 깊은 충격과 절망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이 그림책의 할아버지가 아내 곁에서 그만 쉬고 싶은 마음처럼 말이다.


그림책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할아버지의 상실을 잘 드러낸다. 해서 어떤 독자들은 행간에서 느껴지는 할아버지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에 동화되어 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냥 우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다. <사랑하는 당신>에는 사랑과 따듯함이 배어있다. 이는 글 그림을 쓰고 그린 두 작가의 상실의 경험에서 오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아는 진함일 수도 있다. 또 밝은 색의 그림은 상실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허한다.



나는 당신처럼 부지런히 사랑하며 살까 합니다.

- <사랑하는 당신>에서



아내가 떠나면서 사랑하는 이를 위해 떨리는 손으로 레시피 공책을 채워갔듯,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할아버지는 아내의 손맛을 흉내 내며 반찬을 하거나, 아내가 아끼던 화분에 물을 주면서 상실의 아픔을 조금씩 천천히 사랑으로 채워간다.


그림책은 홀로 남은 할아버지의 외로움에 시리기도 하고, 할아버지 마음 한켠 사랑하며 살겠노라 노란빛이 자리해 따뜻하기도 하다.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 속에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과 이로 인한 상실은 누구나 겪게 된다. 하지만 상실이란 모두 끝났다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남기고 간 화분에서 새순이 돋고 꽃이 피듯, 오늘도 어디선가 지고 피는 꽃이 있으리.

삶에서 마주할 상실의 어느 날이 오기 전, 더 늦기 전에 당신에게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도 그림책] 환대가 주는 따듯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