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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마음 Feb 14. 2022

[머문 자리] 묵은 세배 가는 길



잔두리 돌담길



서산이 붉어질 즈음 아버지는 평상복에서 한복으로 갈아입으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식이도 안방 장롱에서 색동저고리를 꺼내 입었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집을 나섰다. 말이 많지 않은 경상도 남자 시백 씨의 가자는 신호였다. 아버지는 여전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뒷짐을 진채 앞서 걸었다. 앞산을 향해 성큼성큼 가는 아버지, 식이는 그 뒤를 바쁜 걸음으로 졸졸 따랐다. 보통은 아들들과 가는 묵은세배 길이지만 딸만 있는 시백 씨는 막내딸과 함께였다. 그 동행이 설렜던 식이였다.


음력 12월 30일은, 그믐이자 까치설이다. 다음 날 설 준비로 바쁘지만 잔두리 동네 사람들은 묵은 세배를 빼놓은 적이 없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각자 집안이며 동네 어르신들에게 묵은 세배를 다니는 세배꾼으로 동네 골목이 시끌 거렸다. 묵은 세배는 연소자들이 친척 어른들을 찾아뵙고 한 해를 잘 보냈음을 알리는 인사이다. 그믐 저녁때 즈음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한 해를 아무 탈 없이 지냈음을 알리고 성묘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아버지는 앞산에 잠들어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묵은 세배를 다녀와 옆집에 사는 셋째 할아버지에게 묵은 세배를 다녀오셨다. 그리고 집에 있으면 사촌, 육촌, 팔촌 등이 찾아와 서로 묵을 세배를 하면 엄마는 정성 들여 만든 강정이나 감주(식혜)를 소반에 차려 냈다. 묵은 세배꾼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엄마는 연탄아궁이에 냄비를 얹었다. 생떡국을 끓이기 위해서였다.


설날 먹으려고 한 가래떡으로 떡국 한 그릇 준비해도 되련만 엄마는 백수를 바라보는 셋째 할아버지에게 묵은 세배를 갈 때만큼은 생떡국을 끓이는 번거로움을 자처했다. 집안의 다른 어른들에게 묵은 세배를 갈 때는 감주 한 그릇이나 강정 한 접시를 들고 가면서 말이다.


생떡국은 먼저 갈아놓은 멥쌀가루를 익반죽한다. 손 아귀힘을 모아 치댄 반죽은 공깃돌만 한 크기로 떼어 동글동글하게 빚는다. 엄마는 두 손 안에 온 우주의 정기를 다 넣어 셋째 할아버지의 만수무강을 빌었나 보다. 공깃돌만한 반죽을 기도하듯 맞잡은 손안에서 한참을 굴렸다. 이렇게 만든 생떡국은 쇠고기 맑은 장국에 넣어 익히기도 하고, 쇠고기 대신 조개나 굴 같은 해물로 맛을 내기도 하지만 엄마는 맹물에 집간장을 조금 넣고 끓였다. 간장 외에는 아무런 맛을 가미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 가득 정성 한 스푼이 다였다. 끓인 생떡국을 주발에 담고 그 위에 쇠고기 꾸미와 노란색 흰색의 달걀지단, 채 썰어 볶은 김을 조금 올렸다.


엄마는 쟁반에 생떡국 한 그릇과 감주 한 그릇을 올려 밥보자기를 덮어 대문을 나섰다. 이번에도 식이는 엄마의 행동을 지켜보다 그저 따라나섰다. 셋째 할아버지가 사시는 옆집까지 멀지 않은 길이다. 한 해가 저무는 음력 그믐날, 묵은 세배 가던 길, 그 길은 조용했다. 종알종알 말이 오가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함께 한 앞 산으로 묵은 세배를 갔던 길도, 엄마와 함께 했던 셋째 할아버지에게 묵은 세배를 갔던 그 길은 따뜻했다. 오늘, 그녀는 묵은 세배 가는 길에 서고 싶다. 어린 식이가 되어 설레는 동행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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