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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마음 Dec 26. 2021

[어른도 그림책] 당신에게 끝은 무엇인가요

<끝의 아름다움>(알프레도 코렐라 글, 호르헤 곤살레스 그림, 소원나무)


<끝의 아름다움>(알프레도 코렐라 글, 호르헤 곤살레스 그림, 소원나무, 2021)



- 아버지, 죽음이 무섭거나 두려우세요?

- 죽음이 무섭거나 두렵다기보다는 아플까 봐 그렇지. 어느 누구 죽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


아버지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지만 죽고 싶은 마음은 없으셨다. 아버지 시백 씨는 97세이다. 타인들은 아버지의 건강한 삶을 보고 천수를 누렸다고 말한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편이다. 거의 100년 가까이 사시면서 크게 병원 신세를 진적도, 머리맡에 약병이 줄줄 놓여있지도 않다. 아버지가 건강한 삶을 사시는 것도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셨기 때문은 아닐까. 아버지와 죽음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어 고맙다.


끝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어.


며칠 전 아버지는 당신이 사는 집 처마를 수리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하셨을 수도 있고, 당신의 지금을 위해서 일 수도 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든 당신을 위해서든 아니면 집을 위해서든 어떤 방식이든 좋다. 말년인데 고쳐서는 뭐하누가 아닌 드러내고 움직이는, 소멸이 아닌 생성의 삶을 살고 계시니까. 『끝의 아름다움』에 나오는 100살 된 거북 니나가 끝이라 느껴지는 지점에서 시작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거북 니나는 100살 생일을 맞았다.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 끝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한다. 100살 된 니나는 과감히 떠난다, ‘끝’의 의미를 찾아서.




끝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떠난 니나는 개미, 애벌레, 제비, 뱀, 꾀꼬리, 강들을 만난다. 니나는 이들에게 끝이 무엇인지 묻는다. 개미는 “끝? 끝은 나쁜 거지! 가을 내내 모아 둔 먹이가 다 떨어져 겨울을 날 수 없다는 뜻이니까”라고 한다. 애벌레는 끝은 자신이 평생 기다려 온 순간이라고 한다. 남쪽으로 떠나는 제비는 “끝은 아마 방향을 바꿔야 할 순간인지도 몰라”라고 말한다. 뱀, 꾀꼬리, 강들은 저마다 생각하는 끝이 있다. 끝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떠난 니나는 끝이 무엇인지 찾았을까.




작가는 100살 된 거북을 등장시켜 끝을 이야기한다. 아니 끝이 아닌 시작을 말한다. 다른 동물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거북이었을까. 그림책은 100살이 되도록 불리는 이름이 없던 거북에게 ‘니나’라는 이름으로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한다. 작가가 100살 된 거북 니나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끝의 아름다움>을 펼쳤다면 쉬 내려놓지 못할 수도 있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기에. 그림도 글도 사유하게 하기에. 해서 어떤 독자는 철학적이라고도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누군가는 끝이 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도 한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처럼 저마다 생각하는 끝은 다를 것이다. 나는 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끝은 있다고 생각하는지, ‘끝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짧은 그림책 한 권이 던지는 질문은 길고도 깊다.



당신에게 끝은 무엇인가요?





<끝의 아름다움>의 꼬리를 무는 책




베토벤의 말년의 양식이 지닌 힘은 부정적이다. 혹은 부정성negativity이라 부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차분함과 성숙함이 기대되는 곳에서 우리는 털을 곤두서게 하고 까다롭고 가차없는,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도전을 발견한다. 아도르노는 “말년작품의 성숙함은 우리가 열매에서 발견하는 것과 닮지 않았다. 그것은 둥글둥글하지 않고 주름져 있고, 심지어 찌들어 있다. 달콤함 대신 쓴 맛이 나고 가시투성이로 그저 쾌락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베토벤의 말년의 작품은 더 높은 종합에 의해 화해되거나 흡수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어떤 도식에도 들어맞지 않으며 화해되거나 해결될 수 없다. 작품의 확고하지 않은 특성, 종합되지 않는 단편적 특성이 뭔가 다른 것의 장식이나 상징이 아니라 작품의 본질적인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말년의 작품들은 사실상 “잃어버린 전체성”lost totality에 관한 것이고, 그러므로 파국적이다.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드워드 사이드 마티, 2012, 34쪽)
아도르노에게 말년성은 용인되고 정상적인 것을 넘어 살아남는다는 개념이다. 

말년성은 종국에 접어드는 것, 의식이 깨어 있고 기억으로 넘치는 것, 그러면서도 현재를 대단히 예민하게(심지어 초자연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드워드 사이드 마티, 2012,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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