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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은 우주니까 Jun 07. 2020

뭘 물어볼지 몰라도 괜찮아

질문도 뭘 좀 알아야 할 수 있더라

질문할 거 없어요?


 이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자주 들었던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 말에 아주 극심한 압박을 받았습니다. 먼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제가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리고 질문을 하기까지 내용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질문을 강요받는 것 같아서.

 

  저는 묵혀두는 사람이 아니에요. 뭔가 궁금하면 정리되지 않은 문장으로라도 운을 떼보는 성격이거든요. 질문이 충분히 정리가 안 되는 문제이면 몰라도 질문거리를 속으로만 갖고 있는 문제는 단언컨대 저에겐 없어요. 오히려 깔끔하게 질문하려고 내용을 소화할 시간을 가질 때가 있어요. 곧바로 할 수 있는 질문은 하지만, 새롭고 생소한 내용이라서 더 이해가 필요하다면 질문하기 전에 준비를 하는 편이에요.


 이러다보니 뭐 물어볼 거 없냐는 질문이 약간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바로 물어보든, 준비해서 물어보든, 할 질문은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확인하시는 거겠지 싶어서 넘어갔습니다. 아직은 없는 것 같다, 내용을 더 보고 말씀드리겠다, 이런 식으로 답하면서요.

 

별로 질문을 안 하는 거 같더라고...


 그러다가 그 부담이 압박으로 변하는 한 가지 상황이 발생합니다. 어쩌다가 제 피드백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아니 글쎄 제가 질문을 별로 안 하는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딱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기는 했지만 다른 분들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복잡해졌어요.


 나는 질문을 꽤 많이 하는데? 일대일로 면담도 하면서 궁금한 거 물어보고 있는데? 아니 그리고 제가 직접 여쭤본 적도 많잖아요! 대체 왜... 나에게 왜 그런 평가를 하시는 건가요 ㅠㅠ 


 그래서 여쭤봤어요. 저는 필요한 질문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느꼈는데, 어떤 지점에서 그런 인상이 생겼는지를요. 정말 답답했던 건, 해주신 답이 너무 시원하지 않았어요. '딱 짚을 수는 없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였거든요. 그 주말에 기분이 오묘했던 건 둘째 치고 기대하시는 질문에 관한 생각이 많아졌어요. 들어온지 얼마 안 되니 당연히 업무 관련 질문을 주로 했는데, 그거 말고 그냥 일상적인 질문을 바라시는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는 이야기를 기대하시진 않을 거고, 이 업무보다 더 넓은 질문을 기대하시는 건가? 뭐 이런 생각들요.



멀리 보는 관점이 필요했나보다


 제 딴에는 별의별 노력을 다 했지만, 그 조직을 떠나기 전까지 별로 질문을 안 하는 것 같다는 그 인식은 지우지 못한 것 같아요.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 업무를 하면서 조금 느껴졌어요. 일단 그 '질문'의 의미가 내가 했던 질문들과는 좀 달라요. 눈앞에 해야할 일을 처리하기 위한 질문이라기 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준비하기 위한 질문이에요. 가령 지금 제품 내부의 메시지 기능을 개선하기 위해서 관련된 사용자 불만사항을 운영팀에 물어보는 건 전자, 사용자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제품, 사용자 관련 정보를 관련 조직에 묻는 건 후자에요.


 다시 말해서 질문이 적다는 그 코멘트는, 결국 조금 더 멀리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해요. 사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좋게 해석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근데 이걸 느낀 순간 약간 삐딱하게 억울해지더라구요. 왜냐면 돌아보니 질문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미 이 길을 지나가셨을텐데 왜 절대 할 수 없는 걸 바라셨을까? 궁금해지기도 했구요.


 왜 질문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요? 제가 지금 느끼는 대로 말하자면 그런 질문은 뭘 좀 알아야 할 수 있어요. 어떤 정보를? 전체 사업의 방향성부터 시작해서 회사 내부 각 조직의 모든 조직 업무와 방향성, 사업이 지켜야 하는 의무사항 등등,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대표적인 이력이요. 물론 내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정보를 중점적으로 익혀야 하지만 문제는 유관영역도 어느 정도는 빠삭해야 더 멀리 볼 수 있더라구요. 내 쪽에서 뭔가 하나 바꾸면 저쪽 업무도 같이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업무가 그렇게 서로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건 초년생이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서는 정말 하기 힘들어요. 잘 알려주는 사람이 있거나(사수), 그런 분이 없더라도 필요한 내용이 보기 쉽게 정리돼 있거나(최신화된 히스토리), 그렇게 갖춰진 게 없다고 하더라도 직접 무언가 맡는 일이 있어서 알아야만 하는 상황이 돼야 가능해요. 근데 아시잖아요. 저 셋 중에 하나만 만족해도 정말 감지덕지라는 것. 능동성을 요구하면서도 기본적인 가이드가 제공되지 않는 안타깝고 답답한 상황을 우리는 많이 겪잖아요. 적응하면서 코 앞에 다가오는 일감 그거 하나 처리하는 데도 얼마나 많은 지적을 받으면서 신경을 곤두 세우는데요. 당장 앞길 헤쳐나가는 질문 말고도 해야 하는 질문이 얼마나 많은데요.



뭘 좀 알기까지는 말야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셨던 분들에게 현실적으로 전혀 도움은 안 될 말이지만, 뭘 물어볼지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건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 우리에게 어느 정도 알려줘야 하는 거잖아요. 어떻게 처음 들어간 사람이 처음부터 다 찾아내서 습득해요? 지금 하는 일 대응하기에도 바쁜데요. 수동적이라는 피드백이나 안 주면 기꺼이 혼자 익혀보겠지만 글쎄요... 저는 그게 맞나 싶어요.


 현실 한탄은 이어서도 계속 할 수 있겠지만, 좀 국면을 바꿔서 제가 도움 받았던 방법 하나 말씀드릴 순 있겠어요. 바로, 이미 거쳐오신 분들한테 초년 경험을 물어보는 것! 그 분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으셨고 지나고 나서 깨달으신 경우가 많더라구요. 만약 그때 자기자신에게 정보를 전할 수 있었다면 건넸을 조언이나 노하우 등의 질문은 지금 초년생인 내가 알아야 하고 물어야 하는 그 무언가를 알아보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더 구체적으로는 이 회사에 처음 온 사람에게 가이드하고 싶은 내용을 물어봐도 좋아요. 오히려 이쪽 질문이 실제 업무에서는 더 많은 도움이 되더라구요. 가령, 제품의 이쪽 영역을 기획할 때는 운영팀에 관련 정책을 꼭 확인해보라는, 업무 관련 지침을 받을 수 있거든요.


 글이 좀 길었지만, 우리 모두 뭘 좀 알게 되길, 그래서 좋은 질문을 찾고 성장하길 바라면서 마칩니다 :)



 참 오랜만에 적는 글인데 운이 좋다는 걸 드러내는 자랑글이 되었네요. 왜냐면 (제 생각에) 이런 글은 맞든 틀리든, 적어도 이제 '질문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야 적을 수 있거든요. 돌이켜보면 지금 있는 곳에 처음 왔을 때 잘 알려주는 분이 계셨어요. 정리가 잘 된 히스토리 문서는 없지만 직접 업무를 할 기회가 많아요. 사업쪽은 물론, 제품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마케팅, 운영 조직과 협업을 하다 보니 그 풍부한 '질문'의 중요성을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그간 정리할 내용이 없었던 건 아닌데, 여기저기 '잘' 부딪히는데 집중하느라 기록을 남겨두지는 못했네요. 그러다가 일하는 곳이 바뀌면서 경험도 새로워지다보니 다시 정리할 필요성이 생겨요. 깨달음이 정기적으로 오지는 않아 앞으로는 드문드문 편하게 자취를 남기려고 합니다. 코로나가 아직 잠잠해지지 않았는데 다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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