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독립

어쩌다, 해방촌

by 조헌주


첫 독립


‘독립’이란 단어는 참 비장하게 느껴진다. 어떤 울타리 속에서 보호와 감시를 받다가 이제는 모든 것을 내 맘대로 결정하고 살아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이제 온전이 내 몫이란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도 좋았다. 이제 더 이상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누가 눈치를 준다고 눈치를 보며 살았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천성이다. 애초부터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거다. 태어나자 맞닥뜨리는 작은 사회라는 가정의 환경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형제·자매의 서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애초부터 자신이 갖고 태어난 서열로 인해 사회가 보는 규정화된 성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긴 내가 가진 성격을 굳이 단어로 표현한다면 바로 눈치와 배려이다. 강한 자기주장 따윈 없었고, 세상에서 싸움이 제일 싫었으며 원하는 게 있어도 나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 정신을 발휘하는 나였다. 생각보다는 말이 빨리 나가 할 말을 다 하고 뒤 끝없다 주장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나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항상 버퍼링이 걸렸고 여러 각도로 생각하는 바람에 선택에 있어 언제나 버퍼링이 걸렸다. 나만 중하게 생각하면 될 일을 배려를 하다 보니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강하게 말하지 못하고 맘 속에서 합리화를 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자취방이다. 고등학교를 지방에서 졸업하고 ‘in seoul’에 있는 대학을 왔는데도 난 나의 사생활을 보장받을 만한 방을 갖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는 쭈욱 동생과 한 방을 썼고, 대학에 와서 난 인천에 있는 외삼촌 댁에서 학교를 다녔다. 이때도 내 방이 다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외할머니와 한 방을 썼다. 그런 나에게 기숙사를 들어갈 기회가 주어졌었는데도 난 그 기회를 차 버렸다. 이유는 정해진 통금시간 때문이었다. 뭐 얼마나 공사가 다 망해서 집에 늦게 갈 일이 많다고 그 이유 하나로 그 기회를 날려 버렸다니...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는 잘 안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후회가 남는 일 중에 하나다.


그런 나에게 온 절체절명의 기회는 바로 ‘취직’이다. 20세, 조금은 이른 나이에 대학 졸업을 앞둔 겨울 방학에 방송국의 막내 작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20세에 무슨 대학 졸업이냐는 분들에게 덧붙이자면 어쩌다 유치원을 패스하고 초등학교를 7세에 가는 바람에 대학을 19세에 가게 된다. 거기에 내가 들어간 학교는 2년제였다.) 사실 이때만 해도 난 모든 것들이 또래들보다 빨라 결혼도 빨리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남들보다 표면적으로 1년 빨라 보이는 것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남들보다 조금 뒤처졌다고 의기소침해져 있지 말자. 인생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서울 가면 코 베어 간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서울에 대한 공포심을 가득 불어넣어주었던 울 아버지, 서울로 학교 가는 것도 못 마땅해하셨다. 그런데 딸내미가 방송국에 취직했다고 하니 그래도 기분은 좋으셨나 보다. 시골 사람들에게 방송국은 아무래도 환상과 모험의 세계였으니까. 아버지는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방송국에 출몰을 하셨다. 그것도 군복을 입고 오셔서 선배 작가 언니 및 피디님께 인사를 두루 드리고 홀연히 떠나셨다. 군인이라는 신분, 그리고 군복은 아버지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아버지의 유일한 자신감이다. 아버지가 다녀간 이후로 방송국에서 존재감도 없었던 내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평소 무섭고 사나웠던 메인 작가 언니도 여자였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독립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다 여기까지 왔지만, 내가 일하던 곳은 라디오 국이었고 방송은 매일 아침 9시에 생방송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 적어도 그 생방송을 준비하기 위해 난 7시까지 출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주일에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을 그렇게 나간다는 것은 엄청난 내적 싸움이 동반된다. 그런데 내적 싸움뿐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에게도 민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내가 늦는 날이면? 그 날은 메인 작가 언니의 히스테리를 다 받아야 하는 날이 된다.


아침 5시에 부스럭하며 일어나 준비하고 여의도까지 가기엔 먼 거리, 그리고 나보다는 같이 사는 사람들의 불편함에 대해 들은 부모님은 그때서야 나의 독립 허락을 해 주셨다. 올레! 보통의 부모님들은 딸자식이 걱정돼서 집을 알아봐 주기도 하고, 구해주기도 하겠지만 난 내가 살 집을 혼자 알아봤다.


그리고 난 여의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마포에 나의 자취 시작 첫 집을 얻었다. 대문이 있고 안에 작은 정원과 단독 주택으로 이루어진 집이다. 2층과 3층에는 주인집이 살고 1층에 세를 놓아 안전하다고 판단했던 집이었다. 방 한 칸만 얻는 것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제 진짜 나의 독립이 시작된 것이다.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내 것으로 가득한 공간.


그런데, 혼자 산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집이었기 때문에 가전제품부터 필요한 것들을 내 힘으로 하나씩 다 사야 했고, 무엇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환경에 있어서 불편함은 느꼈지만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느낄 틈이 없었는데, 이건 차원이 달랐다.


이사를 마치고 짐도 별로 없는 빈 방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 있는데 바다 위에 홀로 표류해 있는 외딴섬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감정의 무게가 갑자기 나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제 진짜 나의 진정한 독립이 시작된 거야. 독립이란 건 혼자 사는 겉만의 문제가 아니야. 감정에서도 홀로 설 수 있어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