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HBC?

어쩌다, 해방촌

by 조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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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삶 속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날씨를 이야기하자면 맑은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비가 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다. 해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있고, 어두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 추구하는 것들을 알면 좀 더 명확한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일단 환기가 중요한 사람이다. 뭐든 활짝 열어 놓는 것을 좋아하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오래 있지 못한다. 그래서 약간의 안전 불감증이 있을 수도 있다. 가방도 항상 활짝 열어놓고 다 꺼내 놓았다가 다시 담는 스타일이다. 고등학생 때 독서실을 다녔을 때 독서실에서 가방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놨다가 당시 유행했던 가방을 도둑맞았던 적이 있을 정도이다. 그래도 난 뭐든 활짝 활짝 열어 놓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마음을 활짝 열지는 못하는 것 같다.


평소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을 여는 일이다. 날씨를 체크하며 하늘을 바라본다. 하루를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인 것이다. 내가 첫 독립을 한 곳은 1층이었지만 정원이 있고 대문이 있는 집이어서 문을 열어놓아도 안전한 곳이었다. 그래서 매일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았다. 방은 넓지 않았지만 그냥 독립적인 나의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부터 모르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더니 ‘뚝딱뚝딱’ 하면서 뭔가를 만들기 위한 공사를 시작한다. 2층에 뭔가를 설치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창문으로 환하게 들어오던 햇빛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점점 우울해졌다. 그로 인해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것 보면 나란 인간, 참으로 날씨, 햇빛 이런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인가 보다.


어느 순간 나에게 불편함이 느껴지면 나에게 편한 것을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어느 곳을 갔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오래 있을 수 있는 것은 그 분위기 등의 모든 것이 자신과 맞아서이고 익숙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신발 속의 모래 한 알이 들어가면 계속 신경 쓰이듯이 아주 작은 것이 계속 신경을 건드릴 때가 있다. 누군가는 햇빛 그거 아주 작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 작은 것이 아주 큰 것이었다.


그 사건은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더 이상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난 계속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바로 다른 집을 알아봤다. 나란 사람, 선택에서는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한번 선택하면 또 행동은 빠른 사람이다. 부모님을 배려해서 처음 집을 구할 때 보증금을 작게 시작했던 나는 잠시 잠깐 후회했다. 내가 가진 보증금으로 이사를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그래도 포기할 내가 아니다. 계속해서 인터넷 검색으로 집을 찾은 끝에 살고 있던 집의 보증금과 같은 금액에 이사를 갈 수 있는 집을 찾았고, 난 집을 보자마자 나는 앞뒤 따지지 않고 바로 계약에 들어갔다. 그땐 오직 햇빛에만 꽂혀 있었기 때문에 햇빛만 환하게 들어오면 만사 오케이였다. 내가 살고 있던 마포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리고 지도상으로 봤을 때 서울의 한 중간이었다.


선택에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이것저것 다 따지는 듯이 보여도 결국 이성보다는 감정이 맞아떨어져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객관적인 조건이 괜찮아 보여도 마음에 오는 한방이 없어 이 사람을 만날지 말지 계속 망설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너무 그 한방에 모든 것을 걸 때 뒤에 치러야 할 일들이 배로 많아질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언제나 초긍정의 자세로 모든 경험을 웰컴 하며 받아들이겠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땐 너무 어리고도 어릴 때였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얼굴에 다 드러나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그때는 협상이란 것도 할 줄 몰랐다. 밀당을 좀 했어도 됐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하겠다고 하고 더불어 그 사람의 조건에 맞춰 살던 사람이 쓰던 가구들을 돈을 주고 넘겨받기로 한다. 아무리 자신이 급하더라도 급하다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 언제나 여유 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유리한 패를 가져갈 수 있다. 난 가구들을 인수받고 나서야 그들이 돈을 주고 처리해야 할 것들을 오히려 내가 돈을 주고 처리해줬구나 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매가 살고 있었는데 언니가 결혼을 하게 돼서 이 집을 떠난다고 했다. 결혼을 해서 떠난다는 건 축복받아 마땅한 거니까! 오히려 그 말에 이 집에 들어와야 하는 당위성이 더 생기는 거 같다. 나도 여기서 잘 있다가 결혼해서 잘 나가야지 하는 희망을 품게 된다는 거다.


나만의 첫 공간에 대한 애착이 사라지고 이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집을 알아보고, 또 내가 살던 곳에 누군가 오기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이럴 땐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사를 할 때도 큰 짐이 없었기 때문에 순조롭게 이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난 용산2가동이라고 주소가 찍히는 곳에 나의 두 번째 터전을 잡았다.


나는 낯선 곳에 여행을 가도 그곳의 랜드마크를 보기 위해 가는 목적 달성형이 아닌 그저 지금 그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일상을 느껴보려 하는 편이다. 지도는 필요하지만 어떤 장소를 찾기 위함이 아니요. 내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고자 함이고,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니면서 내 온몸의 감각의 활용하여 나만의 지도를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게 나와서 발길 닿는 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서울 중심부에 있지만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었다. 도시 구획이 딱딱 잘 되어 있고 높은 빌딩이 있는 곳도 아니고, 심지어 높은 언덕이 있는 구불구불한 길이 주를 이뤘다. 이곳이 사람들이 흔히 말했던 서울의 달동네일까 할 정도의 집들이 언덕 위에 빼곡히 있던 이 곳. 난 이 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사방이 확 트여야 마음의 안정감을 느꼈던 나는 사방이 확 트여 있던 안전한 집 때문에 이곳에 왔고, 또 한 가지는 여기서 얼마나 살겠어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왔다. 무엇보다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명동에서 보냈던 나는 집에서 한 정거장만 가면 명동이란 사실에 더 친근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해방촌이라 했다. 남산 자락 밑에 있는 해방촌은 이름이 주는 어감 그대로 해방 후에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 그리고 한국 전쟁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이 정착하여 해방촌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을 듣고 어린 시절을 촌에서 보냈던 나는 촌을 피해서 왔는데 결국 내가 온 곳은 또 촌이구나 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서울이란 이미지에서 조금은 아니 많이 비껴가 있는 이곳.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 어르신들과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 외국인들이 공존하는 이 곳. 뭔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또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분히 고지식한 한국적인 정서와 개방적인 외국인의 정서,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 그럭저럭 공존하고 있는 그 문화가 나를 사로잡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곳의 공기가 나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서울 하늘 아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내가 운명처럼 와서 살게 된 이 곳, 한국인들에겐 해방촌, 외국인들에게 HBC라 불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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