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가 생겼다

어짜다, 해방촌

by 조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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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한참 수능 공부를 해야 할 때 난 인터넷 채팅에 빠져 있었다. 컴퓨터에 연결하면 모르는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채팅을 하다가 밤을 새우는 일도 허다했다. 수능 직전에는 잠시 스톱했겠지만, 처음 서울에 와서 없었던 나는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 채팅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남자들과 대화가 지쳐 나랑 대화를 하고 싶다는 친구를 알게 되었고, 우린 채팅을 하다가 종로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좀 웃기다. 채팅으로 남자 친구가 아닌 여자 친구를 만난다니 말이다. 그녀는 20대 때부터 자기 주관이 아주 뚜렷했고, 똑똑했다. 우유부단한 나와는 달라 존경하고 닮고 싶은 친구였다.


20대 때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남자도 많이 만났던 그녀는 지금은 독신으로 살겠다고 선포했다. 그녀의 합리적인 생각과 뚜렷한 주관이 항상 멋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선택에 있어 주변 사람의 의견이 중요하게 작용을 하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자기 안에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의 주관이 우선인 그녀에게 찾아온 한 가지 삶의 변화는 바로 ‘반려견’이다. 20대 중반에 여행 중에서도 난코스라는 인도 여행을 그녀와 단둘이 두 달 동안 다녀왔다. 그 정도로 여행도 좋아하고, 문화적인 감성도 맞아 공연 예술 등의 취미도 가지고 있던 그녀였는데 최근 그녀는 은별이 때문에 여행을 못 간다고 했다. (은별이는 친구의 반려견 이름이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받고 싶은 건 딱 두 가지야. 나를 사랑해 주는 것과 나를 지켜 주는 것. 그런데 그 둘을 다 해 준다니까. 그것도 속 썩이지 않고 배신하지도 않아.”


그리곤 우리가 남자한테 기대하는 그것들을 모두 은별이가 해 준다고 했다. 모든 삶이 은별이한테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소싯적의 그녀도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변하게 했을까...


사람의 천성이 과연 변할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며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했었는데 사람은 서서히 변해간다는 것에 지금은 한 표를 던진다. 여자의 삶이 표면적으로 변하는 건 결혼이나 아이를 낳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고, 천성은 글쎄...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이 했던 수많은 경험, 그 경험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로 인해 한 번엔 바뀌지 않더라도 서서히 바뀌고 있음에는 부인할 수 없다.

나 또한 움직이는 생물은 사람밖에 없는 집에서 자란 탓에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삶은 내 인생에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시골에서는 동물을 키워도 밖에서 키우지 집 안에서는 절대 키우지 않았었다. 사람이 어떤 것에 친밀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익숙함 다음이 아닐까. 어쩌면 난 반려동물이 익숙하지 않아서 친밀하지 않았던 거다. 서울에 와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집에 다들 강아지가 한 마리씩 있는 거 보고 이것이 도시의 클라쓰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반려동물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위해 방 안에 잠깐 두고 문을 닫거나 어떤 공간에서 넘어오지 못하게 장애물을 만들어 주었다. 이상하게 친구 집에 방문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난 처음부터 강아지와 아이컨텍을 주고받고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나도 모르게 귀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인 쓰다듬기에 도전을 했다. 처음에 만지는 것이 무섭긴 했지만 면적을 넓혀가며 난 급기야 강아지를 품 안에 안을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낯가림을 하는 나인데 동물에게까지 낯가림을 하고 있다가 천천히 풀리고 난 정이란 걸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친구가 동물병원에 갔다가 어쩌다 병원에 맡겨지게 된 강아지 사연을 듣는다. 눈도 동그랗고 아주 예쁘게 생긴 강아지였는데 주인을 찾는다는 광고를 붙여도 주인이 오지 않아 유기견 보호소에 보내질 위기에 처해 있는데 유기견 보호소에 가면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미 친구네 집은 두 마리로 벅차서 데려올 수가 없어서 나한테 권유를 한 것이었다. 그때 난 솔깃했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동물을 알아보는 법이다. 혹시 나도 모르잖아.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수도. 사실은 내가 전생에 동물 조련사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모르는 일에 배팅을 한 번 해 본다.


그리고 난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강아지란 존재와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나에게도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친구네에서 잠깐 볼 때와는 다른 생물체였지만 계속 내 옆에서 꿈틀꿈틀 대니 그래도 삶에 생기가 있었다. 눈이 또렷또렷하게 생겨 난 또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우리 둘의 생활이 시작됐다.


해방촌엔 큰 개부터 작은 개까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반려 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시골에서 온 친구들과 언니가 놀러 올 땐 내가 그들을 보호해 주느라 바쁘지만 난 20대 때부터 단련된 반려 동물과의 친밀함에 이제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을 보호해 주는 건 내 차지다. 카페에 있을 때나 해방촌은 어디를 가더라도 반려 동물의 습격을 피할 수 없다. 카페에 있을 때 커피를 사려고 동물을 데리고 올 새라 치면 친구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의자 위로 올라간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개 안 물어요.” 그러면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무섭다고.”


슬픔과 아픔이 느껴질 때는 더한 고통을 강하면 그 감정이 사그라질 수도 있다. 고통을 쾌감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내가 그렇다. 뭔가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느 날일 수도 있는 날에 난 그 슬픔과 아픔을 달래기 위해 더욱 고통스러운 행위를 하는 편이다.


운전면허 시험에 떨어졌을 때마다 귀를 뚫음으로써 그 의미를 되새겼고, 남자 친구와 헤어질 때마다 그 어느 날은 내가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미뤄왔던 사랑니를 빼는 날을 정한다. 그것도 밸런타인데이에. 그 얼마나 참신한 발상인가. 그리고 난 겉으론 아주 표시도 안 나지만 잇몸 아래 깊숙이 박혀 있는 (누가 보면 굳이 왜 박힌 돌을 빼내냐고 할 만한) 그런 사랑니를 뽑았다. 웬만하면 그 깊이를 보고 종합병원을 가라고 한 이를 해방촌 오거리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치과에서 거의 1시간의 노동을 거쳐 아주 세심하게 잘고 잘게 부수 워 사랑니를 빼 주었다.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원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난 마취가 서서히 풀리면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통의 쾌감을 느껴갔다. 그런데 쾌감은 온데간데없고 고통만 있을 뿐이었고, 거기에 이별의 슬픔까지 더 얹어서 내 처지가 처량해졌다. 그리고 난 집에서 꺼억꺼억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인생이 그렇게 아무도 없이 혼자 살다 끝날 것만 같아 서러웠다.


누워서 꺼억꺼억 울고 있는데 그걸 아는 또이가 어느 순간 내 품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하며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사람보다 더한 위로의 순간이었다. 말없이 나의 모든 고통을 안다는 듯 자신이 할 수 있는 온갖 표현을 다하는 또이에게서 사람들이 왜 사람보다 반려동물에 의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면 그에 맞게 생활 패턴을 좀 바꿔야 하는 것인데, 난 늘 밖에서 바쁘게 돌아다녀야 하는 삶의 패턴을 놓지 못했다. 집에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집에 빨리 가야지 생각했다가도 밖에서 할 일들이 너무 많아 늦게 오는 날이 많아지고, 혼자 외로워하다 지쳐 집에 있는 것들을 모두 찢어대는 또이를 보았다. 그리고 난 더 이상 또이의 건강을 위해 내가 데리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또이를 위한 선택이었다. 내가 너무 리버럴 하고 공사가 다 망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끔 궁금하다. 소파에 앉아서 날 바라보던 토이가 생각이 난다. 만약 내가 그때가 아닌 지금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면 지금쯤 나도 죽고 못 사는 그런 가족이 되어 있을 수도. 저 친구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도 남자가 아닌 반려견에게서 마음속의 안정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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