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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은 달 Feb 02. 2023

2023년 2월 1일의 기록

30일 쓰기

1.

오전 9시


주차를 멋지게 하고 둘째와 차에서 내린다. 어린이집 담벼락을 따라 있는 화단에 지난가을에 자리 잡았을 은행잎들이 소복하다. 분명 노란색이었는데 색깔이 이상해졌다며 올해 5살이  둘째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신기하다고 맞장구를 쳐주며 은행잎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벌집인가? 벌집이네?! 떨어진  한참   같은,  세월이 느껴지는 벌집이 낙엽사이에 낙엽처럼 숨어있다. 신기해서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쳐다보다 손을 가져다 만져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아이는 깜짝 놀라며 만지면 안된다고, 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엄마를 저지한다. 그러다 갑자기 쉬가 나온다며 울음을 터트린다. 소변이 흘러나 바지와 신발을 적시고,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지며 눈물이 방울방울 흐른다. 괜찮다며 실수할 수 있다고 엄마도 어릴 때 실수 많이 했다며 걱정 말라고 한참을 달래는 와중에, 아이가 말한다. 너무 무서웠다고, 엄마가 벌에 쏘일까 봐. 놀래서 자기도 모르게 오줌을 싸고만 아이가 애틋하고 귀엽고, 그래서 미안하고 고마운 복합적인 마음으로 번쩍 들어 어린이집에 배달시킨다. 여벌옷으로 갈아입혀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젖은 신발과 양말을 챙겨 나만의 세계로 돌아온다.


2.

오후 7시

“아빠, 일은 노는 거보다 더 쉬운 거야. 놀이는 머리를 써야 한다고. 일은 아무것도 안 쓰고 알려준 대로 하는 거니까 쉬운 거지. “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가 첫째를 씻기는데 욕실 안에서 들리는 대화가 재미있다. 일은 알려준 대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어디서 연유된 것일까. ‘일’, ‘회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궁금해진다.



3. 

오후 8시 30분

“엄마, 오십만원이 많아? 천원이 많아?”


브루마블게임이 한창인 아이가 다급하게 질문을 던진다. 오십만 원 vs 천 원. 너무 큰 데시벨의 소리는 인간의 귀가 인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너무 큰 숫자는 8살이 된 첫째가 상상할 수 없는 숫자인가. 황당한 질문에 진지해지는 엄마. 아빠랑 브루마블 자주 하던데 그동안 대체 어떻게 게임을 했던 걸까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4.

오후 9시

언니가 아빠와 게임하는 모습에 질투를 느낀 둘째가 브루마블 판에 바람을 일으켜 종이돈과 카드를 흩트려 뜨린다. (재주도 좋지) 전쟁을 막기 위해 둘째를 불러 내 무릎에 앉혔더니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 말한다. 들어줘야지 그까지 꺼.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보다 훨씬 더 많은 툴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자야 할 시간이라고 내일 하자며 재촉하는 와중에 첫째도 달려와 자기도 그리겠다고 줄을 선다. 이것저것 눌어보며 도전으로 얻은 결과와, 우연으로 얻은 효과로 멋진 작품들을 쓱쓱 그려낸다. 무서운 속도로 거침없이 그려내는 아이들은 결국 엄마에게 기기를 뺏기고 여차저차하여 어렵사리 꿈나라로 떠난다. 잠이 늦어지더라도 여유롭게 시간을 주고 충분히 그리게 해 줄 것을,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내일의 나는 조금 더 여유롭고 온화한 엄마이길 바라며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질 무수한 날들 중 2023년 2월 1일 하루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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