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은 달 May 16. 2024

기분 요청: 감자튀김 이야기

기분 요청

:기분을 승인하거나 무시합니다.


기분에 대한 길지만 간단한 이야기.


-


같이 사는 분이 처음으로? 먼저 보러 가자며 이야기를 꺼낸 전시를, 이전부터 벼르다 5월 15일 휴일에 가기로 정해놓고 마침내 그날이다.


오전에 아이들이 거실 한편에 카페를 오픈한다. 언제나 항상 그렇듯 예정에 없는 이벤트다. 오지 않은 손님을 위해 공연도 진행하며 호객행위가 호연지기다. 그러니 부모가 달리 무슨 수가 있나. 손님으로 위장해 로봇자동차도 조정해 보고 시식으로 수박맛젤리도 먹어보고 그러다 결국 3시가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선다.


마지막일 것만 같은 봄비다. 시끄럽던 차 안이 잠잠해질 무렵 미술관 주차장에 안착한다. 요즘 전시관람객이 이리도 많았나 아님 비를 피해 몰려든 인파일까 카페에는 자리하나 없었고 표 사는 줄도 구불구불 요 근래 못 보던 만석공장이다. 전시장은 말해뭐하겠나.



관람은 어느 평일을 다시 이용키로 하고 7 전시실 체험존에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은 능숙하게 화면을 터치하며 나만의 정원을 만들고, 동아 슬림 색연필로 준비된 인쇄물을 색칠하는 동안, 나는 카펫에 누워 헤드셋을 끼고 7분 명상을 경험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기를 시도하며.


문 닫을 시간이 다가와 아이들을 종용하며 인근

조선김밥으로 비를 맞으며 골목을 걷는다. ‘개인사정’으로 일찍 문을 닫는다는 표지판이 유리문 안쪽에 걸려있었고 아이는 개인사정이 무슨 뜻이냐 물어온다. 나의 답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질문은 계속된다. 배는 더욱 고파오고 참을성은 빗방울처럼 바닥까지 툭툭 떨어져 익숙한 위기가 감지된다. 비 오는 길거리에서 화내는 건 이제 그만해야지 생각하다 교촌을 발견하고 순간 생맥주라는 단어가 볼드체로 머릿속을 강타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치맥집을 들어간다. 시간이 이른탓인지 다행히 가게 안의 취기는 흐리고 덕분에 ‘아이’와 ‘호프집’의 교집합을 생성해 쌍방에게 발생하는 죄책감도 줄어든다.


이제와 말하지만, 지금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시킨 감자튀김이다. 후라이드와 볶음밥 이외에 나의 생맥주를 위한 작은 성의로 주문한 감자튀김 위에 노오랗고 이상한 가루가 눈처럼 소복이 쌓여서 나온 것이다. 불안하다.


역시나 짜고 달다. 짜도 너무 짜고 달아도 너무 달다. 맥주를 더 주문하기 위한 교촌의 전략 중 하나일까. 그렇지만 이건 정말이지, 인간에게 이 정도의 양념, 조미료를 먹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걸 정말 먹으라고 준 것인지, 이것이 보통의 사람들은 섭취하는 나트륨과 당의 용량인지, 식품첨가물에 보수적인 나에게는 고소감까지 갈 정도다. 메뉴판을 다시 보니 아래에 조그맣게 설명이 있다. <포테이토앤칩스> ”Big Size 점보팩 치즈솔솔(트러플) 시즈닝으로 더욱 맛있게 즐기는 듀얼스낵“.


치즈 시즈닝이구나. 그림만 보고 주문한 스스로를 질타하며 감자 전체에 도포된 가루를 털어내느라 작은 전쟁을 치른다. 손에도 테이블에도 옷에도 내 영혼에도 가루범벅이다. 천둥벌거숭이 첫째는 맛있다며 가루가 조금이라도 더 묻은 걸 고르겠다 난리고 감자튀김은 먹고 싶었던 나는 최대한 털어내고 먹어도 남아있는 가루의 맛에 희비가 교차하는 혼돈의 카오스였다. 단돈 6,500원의 그 감자튀김이 망친 부처님의 날. 사람은 참 이리도 작은 일로도 구겨진 종이마냥 기분이 한껏 구겨지는구나.


그 메뉴 덕분에 오늘의 일기는 분노로 끝을 맺는다. 전 세계 음식비즈니스계는 대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지, 생각이 끝맺음을 못 맺고 두려움과 화만 빚어낸다. 집에 오자마자 녹차 500미리를 마시며 심신을 달래며 참았던 와인을 꾹 더 참고 오늘은 맥주 500cc만으로 끝을 낸다. 할 일 쌓였는데 분노의 일기로 시간을 허비하는 이 어리석은 중생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