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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은 달 May 16. 2024

도깨비, 해루질

갯벌의 인문학적 특성들을 뒤로하고 아이스커피를 담는 텀블러, 쿠크다스 잔뜩, 호미, 삽, 4발 갈퀴, 맛소금통, 코팅목장갑을 챙겨 들고 물이 빠져나간 땅을 최대한 멀리 걸어 나간다.


적당한 자리를 잡아 쪼그려 앉고 호미와 삽으로 뻘을 파기 시작한다. 바다이기도 땅이기도 한, 있고도 없는 이 공간에 도킹한 이후에는 순식간에 몇 시간이 사라져 버린다. 맛조개, 비단조개, 떡조개, 동죽, 골뱅이의 향연에 한시라도 멈출 새가 없다. 요망한 이곳에서 오늘도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두세 시경에야 정신을 차린다. 물들어온다고 어서 나가자는 재촉에 호미까지 뺏기자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하고, 결국 끌려 나오다시피 빠져나온다.


갯벌에 산다는 도깨비에 잠시 홀렸던가. 접었던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자 어깨, 허리, 다리의 통증과 현실이 몰려들어온다. 배도 고프고, 집은 또 언제 가나.

#어촌에살고싶어요

#해루질

#자급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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