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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예술 박기열 Apr 27. 2020

치유의 예술가

월리스 하틀리(Wallace Hartley)를 아시나요?

우리의 의식은 평생 동안 반복해 온 일들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를 띠게 된다.

어릴 적 실수했을 때마다 부모에게 혼이 났던 일이나 반대로 칭찬받았던 일처럼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그 감정을 증폭시키거나 가라앉히기 위해 했던 행동들. 사랑하는 사람과의 좋았던 순간, 혹은 그렇지 못했던 순간에서 얻게 되는 행복과 상처에 관한 감정들이 쌓여 성인이 되어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사건에 대한 반응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것은 결혼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동안에도 예외 없이 모양을 드러낸다.     

그렇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의식의 형태들은 각자의 마음을 성장시키고 자신의 색을 드러내는 재료로 쓰이며 고스란히 우리의 정체성이 된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어떨까?     

예술가들은 매일매일 반복된 행동과 생각, 집착들로 자기 존재와 행위의 당위성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나 역시 대중 강연을 통해 예술을 당신들의 일상으로 끌어들이라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중들도 예술가들처럼 자신의 습관과 본능이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떤 분야에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능력을 발휘하여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틀리던 맞던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그래서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걸 모른다면 자신의 행위에 즉각적인 성과나 보답이 없는 예술 활동을 지속하거나,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느낄 수 있는 포근한 위안과 행복을 뒤로하고 철저히 혼자가 되는 예술가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상처도 스스로 치유해야 하고 작품으로 인해 대중에게 사랑도 받지만 때론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배타적인 시선과 조롱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렇듯 확고한 자기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고 오랫동안 어렵게 지켜온 방식으로 결과물을 발표하던 예술계의 풍경을 최근에 코로나 19가 바꾸어 놓았다.               

미술, 음악, 공연 등 예술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관객이다.     

대면(對面)이나 운집(雲集)이 두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방식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 없게 된 예술가들이 지난 수백 년 간 이어져 온 결과물을 보여주는 방식을 바꿔야 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있게 된 것이다.      

상황이 위태롭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완벽하진 않아도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텅 빈 객석을 앞에 두고 공연을 하거나 VR 촬영을 도입해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예술가에게도 관객에게도 모두 낯선 풍경이고 도전이다.          

공연을 선택해 예매를 하고 직접 공연장에 찾아가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가 있으면 주말을 이용해 미술관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린 상당수의 사람들은 경제활동을 위한 일이나 사회적인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의 하나로 예술을 선택한다.      

그리고 늘 허전하고 뭘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감정의 빈자리를 예술이라는 높은 가치를 지닌 장르로 채우려 노력한다. 코로나 19 이후 하루아침에 관객을 잃은 예술가의 입장이 된 내가 대중이 예술을 찾아갈 수 없을 때 예술가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순간, 문뜩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지만 한동안 잊고 있던 바로 그 장면.      

타이타닉이 침몰해가던 그 순간, 배 안의 레스토랑에서 혹은 작은 구석 무대에서 음악을 선사하던 악단이 사람들이 탈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위해 연주를 해주는 하는 장면이다.      

무섭기는 마찬가지였을 연주자들이 마지막까지 승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악기를 켜던 모습은 그들이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예술이라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들의 사명감 같은 걸 느끼게 해 준다. 실존 인물이었던 타이타닉호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악단의 악장 월리스 하틀리(Wallace Hartley, 1878~1912)가 생사를 오가는 아비규환 속에 침몰을 코앞에 둔 타이타닉에서 마지막 연주를 끝내고 했던 “오늘의 연주는 우리의 특권이었다.” 는 말은 오랜 시간 명확한 의식이 주도하는 삶을 살면서 어떤 강력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위기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평소 자신의 의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서의 모습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있고 열정을 가진 사람의 의식은 꾸준히 성장하고 시간이 지나 그 의식과 행위가 일치하게 되면 어느 분야에서든 인정을 받게 되며 주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화려한 조명과 높은 무대, 고급스러운 커튼은커녕 침몰할 듯 기울어진 선상에서 죽음의 공포를 처음 느낀 승객들에게 비록 이리 밀쳐지고 저리 치이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에게 엄습한 공포를 음악으로 감싸주고 치유해주려 했던 월리스 하틀리처럼 말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평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런 태도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방식이 바뀐다고 또 공간이 바뀐다고 자신의 가치와 영향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고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위기의 순간에도 언제나 평온할 수 있을 것이다.

<월리스 하틀리와 침몰한 타이타닉에서 발견된 그의 바이올린>


끝으로 월리스 하틀리의 약혼자가 보관하고 있던 바이올린은 그녀가 사망한 후 발견되어 7년간의 감정을 통해 타이타닉에서 발견된 진품으로 판명되어 2013년 경매에서 15억에 낙찰되었다. 바이올린의 역사적 가치보다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을 위로했던 예술가 월리스 하틀리의 고귀한 마음에 지불한 가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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