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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복치남편 Oct 10. 2023

100일과 돌 사진

호구아빠의 선택은?

나은에게,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도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엄마 아빠는 ‘만삭 사진’이라는 것을 찍었단다. 정말 넓은 의미로 말하면 너도 엄마 뱃속에서 같이 가족사진을 찍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그건 좀 지나친 의미부여겠지? 아무튼 비밀을 하나 알려주자면, 엄마는 사진 찍는 걸 별로 안 좋아해. 엄마가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싫어한다는 것이니 조심하도록 하여라. 그런 엄마가 너를 배에 품고 인생 최대 몸무게로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란다. 다시 한번 모성애에 감탄을……


감동이 조금 덜해질 수 있지만, 만삭 사진을 찍게 된 히스토리를 좀 알려주자면 말이야. 우선은 네가 생겨났다는 것을 엄마 아빠가 알게 된 순간부터 돌아가야 해. 인생 대 뉴스를 접하고 감격에 차서 부둥켜안고 환호가 끝난 다음 첫 번째 고민은 ‘어느 산부인과로 갈까?’ 였단다. 엄마 아빠가 열심히(주로 엄마가) 찾아본 결과 거리가 가깝고, 이왕이면 전담 산부인과 전문의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 산후조리원이 붙어있어야 하며, 더해서 소아과 의사까지 상주하면 금상첨화였지.


그래서 가게 된 곳이 네가 태어난 산부인과였어. 그곳에서 우리는 단발의 여장군과 같은 위풍당당한 포스를 가진 선생님을 만나 너를 무사히 세상에 나오게 했어. 여기까진 앞에 어느 정도 이야기했지? 거기서 조금 곁다리로 나와야 하는데, 먼저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사회로서 모든 부분에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밝혀두마.


네가 나온 산부인과는 꽤나 인기 있는 곳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여러 곳의 육아산업과 연결되어 있었단다. 분유부터 크림, 난생처음 들어본 제대혈이라든지, 여러 업체에서 우리에게 특전이라는 이름의 유혹을 보내왔어. 아빠는 나름 이 사회에서 잘 나가는 마케터인지라 그들의 의중을 파악했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딱 하나 지나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스튜디오, 바로 사진이었어.


남는 것은 역시 (가족) 사진 뿐! 그림 나은 엄마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겠다는 거야!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되겠지만 사진은 찍는 사람에 따라 가장 결과의 차이가 큰 예술이란다. 아마도 네가 커서 예전 사진을 왜 이렇게 찍어두었냐고 아빠를 탓하겠지만, 사실 아빠는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사진술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어. 나름 중상 정도는 한다고 생각한다. 흠…


프로 사진사가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겠다니 이것 참 떨칠 수 없는 유혹이더구나. 그래서 가기 전에 인터넷에(너희 엄마가) 알아보았더니, 이것 역시 상술! 이라고 하더라구. 하지만 아빠는 체리피커가 될 자신이 있었어. 가서 무료라는 사진만 찍고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지. 이걸 왜 당한담.


그리고 아빠는 만삭 사진을 비롯해 산후조리원에서 찍는 사진을 포함해 100일까지의 풀코스 사진 패키지를 결제했다. 너희 엄마가 말리지 않았다면 분명히 돌 사진까지 포함해서 결제했을 거야. 아니 근데, 그렇게 사진을 찍어두고 1장만 고르라니! 거기에 돈을 줘야 파일로 주겠다니. 이건 거의 강도 아닌가? 너희 엄마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꽃단장까지 했는데 말이야.


엄마에게 엄청 잔소리 들을 아빠의 모습을 상상했다면 미안. 그런데 꽤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 산후조리원에서 눈도 잘 뜨지 못하는 너를 이리저리 칭칭 감싸고 고깔모자를 씌워가며 찍은 사진은 병원 앞에서 간절히 면회를 기다리며 엄마 아빠의 시간을 버티게 해주었단다. 50일에 인형 사이에 널 두고 찍은 사진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포함 3곳의 가정집의 가장 중심부에 걸려서 미소를 유발하고 있고 말이야.


그런데, 돌 사진을 안 찍기로 한 것은 잘한 선택이라고 엄마 아빠 모두 동의하는 바야. 100일 사진 찍을 때 그렇게 빵긋빵긋 웃더니 고작 태어난지 1년도 더 안지나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깨달은 듯 그렇게 짜증이 늘더구나…… 찰나를 잡기 위해 그렇게나 셔터를 눌러댔지만 남은 건 너의 우는 사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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