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복치남편 Oct 12. 2023

백일 아기의 스타일링 비결

너에게 줄 유산, 바로 머리숱

나은에게,


혹시나 네가 기대할까 봐 먼저 고백할게, 너는 금수저가 아니다. 아 금수저라는 것은 말이야, 부모가 돈이 많은 사람에게 ‘금으로 된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라며 부러움 조금 담아   말하는 속된 표현이란다. 아빠 엄마는 돈이 많지 않아, 다만 성실히 쉬지 않고 일했지. 아마 너도 그럴 거야. 그리고 난 그걸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서운해할 수 있다고도 생각해, 하지만 진짜야. 세상의 뉴스들을 잘 살펴보면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물론 돈이 많아서 행복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확률적으로 많은 돈은 불행을 불러오는 것 같아. 지금 엄마 아빠의 기준에서 말하자면, 너를 키우고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정도의 자산과 나중을 위한 저축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근로소득이 있으면 된단다. 그 기준이 얼마인지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은데 너무 높고 낮은 것보다는 평균 정도면 좋겠지.


이런 생각을 가지기까지 사십 년 정도 걸린 것 같구나. 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늘 출근할 때 ‘왜 난 돈 많은 백수가 아닌 거야!’ 라며 울부짖었단다. 힘겹게 일어나 지옥철 타고 출근해서 이리저리 스트레스받는 상황이면 돈 많은 백수 생활을 상상했어. 전용 마사지사의 손길로 느지막히 일어나서 쉐프가 차려준 밥상을 아주 조금 맛만 보고 값비싼 슈퍼카를 타고 외출을 나가는 거지. 아무도 나한테 뭐라 안 하고, 내가 사고 싶은 건 모두 사고!


응? 아까 분명 돈이 너무 많으면 불행이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냐고? 들어봐 이제부터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야. 돈 많은 백수는 저런 생활을 매일 즐기다 문득 본인이 심심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주변을 보겠지, 바른 소리 하는 사람은 없고 입바른 말만 하며 돈에 기생하거나 뺏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겠지. 그런 삶의 끝은 허망함을 느끼거나 최악은 모든 것을 속아서 잃고 파국을 맞게 되기도 한단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그렇게 살아본 적 없는 아빠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많은 문학작품부터 드라마 영화 사건사고 뉴스들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거란다.       


자 이제부터 본론인데, 그러나 이런 물질적인! 것 말고 엄마 아빠가 네게 물려줄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풍성한 머리숱이야. 중년 아저씨가 함부로 머리숱 자랑 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 아빠는 어릴 적부터 머리숱이 풍성해서 오히려 고민이었어. 네가 늘 고슴도치라며 놀리는 것처럼 아빠가 늘 짧은 머리를 하는 것도,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머리숱과 반곱슬머리 때문에 매우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이란다. 엄마도 반곱슬에 머리숱이 많아. 여러 스타일링을 도전하지만 결국 포니테일로 귀결되는 이유이기도 하지. 


이제 100일도 된 너에게 이런 이야기가 와닿겠냐고 한다면, 오히려 가장 와닿는 시기라고 답할 꺼야. 왜냐면 100일 된 아기 패션의 완성은 바로 헤어밴드이더라고! 그 시기에 머리털이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 싶었는데, 어떤 아기는 태어나는 분만실에서도 엄청난 머리털을 가지고 태어나고, 별로 없는 아가는 정말 민머리에 가깝더라.

태어날 때 부터 넌 머리숱 부자였단다. 그림 나은 엄마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너무 이뻐서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어 잠시도 카메라 셔터를 멈출 수 없지. 그런데 이왕이면 아기가 더 이쁘게 나오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그래서 아기들 머리에 모자와 헤어밴드 등을 씌운단다. (있는 그대로의 아기 모습도 이쁘겠지만) 그러면 정말 머리숱이 거의 없어도 그럴싸해 보여. 지난 100일간의 너의 사진을 보니 너도 엄청나게 다양한 색상과 소재의 헤어밴드가 있더라고. 그런데 머리숱이 많으니 더 잘 어울리는 거 아니겠어? 이마가 아니라 정수리 쪽에 살짝 걸칠 수 있는 등 다양한 스타일링도 가능하고 말이야.


이 글을 네가 보고 있을 때쯤 머리숱 유산에 대한 너의 반응이 궁금해. 어쩌면 빽빽하고 반곱슬머리에 대해 불만이 가득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이미 그것은 지금의 미용 기술로도 정복이 되어있고 그때는 더 간단한 시술로 불편이 해소될 것이다. 어쩌면 유행이 바뀌어 그때는 빽빽한 반곱슬 그대로의 머리를 모두가 선망해서 여성 ‘반곱슬 파마’ 같은 걸 할지도 모르지. 지금까지 물려줄 것이라곤 머리숱밖에 없는 아빠의 변명이었다. 

이전 07화 100일과 돌 사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