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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디자이너 Sep 08. 2023

돌아보니 닮아서 감사한 가족

십여 년이 지났지만, 두 아들을 보면 지금도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나를 닮은 성격도 있고, 나를 닮은 모습도 있고, 또 남편을 닮은 성격도 있고, 남편을 닮은 모습도 있습니다.

가족이니 닮은 것이 당연하겠지만, 엄마 아빠를 닮은 부분이 섞여있는 것을 보면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나의 본 가족을 생각해 보면 닮아서 좋아했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넌 누구 닮아서 그러냐"

"꼭 지 아빠 닮아가지고"

우리가 어릴 때에는 부모님이 살아가는 삶이 각박하고 힘드셨기 때문에 이런 말을 자녀들에게 많이 했습니다.

닮았다는 것이 부정적인 말로 듣다 보니 닮아서 좋은 점을 찾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두 아들을 보며 닮아서 예쁘고 닮아서 신기하다며 미소 짓는 나를 보며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엄마 닮아서 예쁜 모습이 있지 않을까?

나도 아빠 닮아서 좋은 모습이 있지 않을까?

내 동생들과 함께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아닐까?

나도 엄마라고 불리기 시작하며, 그렇게 본 가족을 다시 바라보고 재해석했습니다.



출처: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7edWO30e32k


부모님께 물려받은 나


부모님께서 들으시면 섭섭하실 수 있지만, 닮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너무나 많이 부모님을 닮은 저를 보게 됩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엄마의 성격인데, 저도 꼭 닮았습니다. 애매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할 것인지 말 것인지도 명확하게 선택하는 이런 태도는 엄마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이왕에 하기로 했으면 내가 손해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하자는 아빠 성격입니다. 제대로 해주려고 본인이 손해 보는 것을 선택하셔서 저는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어떤 일을 할 때 보니,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이왕에 할거 최선을 다하자는 태도는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조곤조곤 재미있게 말 잘하네"

저희 시어머니께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시면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상견례로 만났던 저희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시고 시어머니께서 제가 엄마 닮아서 말 잘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말을 잘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돌아보니 그냥 이야기하듯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모습이 꼭 저희 엄마와 같습니다. 말하는 재능을 엄마가 물려주셔서 저는 강의하는 것이 재미있나 봅니다.

"해보면 되지, 한번 해봐"

할 수 있는 조금 부족해 보이고, 해본 적이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항상 도전하고 그 일을 해내기 위해 공부하셨습니다. 결과가 항상 좋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빠의 모습이 저에게도 있는 것을 아주 늦게 깨달았습니다. 우선 해보자, 한번 해보자라고 도전해 보는 도전정신을 아빠가 물려주신 것 같습니다.


내가 어릴 때에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기에, 그때 어른으로 살아야 했던 부모님이 참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따뜻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여유가 없어서 부모님의 부정적인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자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주신, 부모님을 쏙 빼닮은 그 성격과 태도도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물려주신 '나 다움'이 있기에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아무도 안 데려가려 하는 딸부잣집 장녀


저는 딸만 셋이 있는 딸부잣집의 장녀입니다.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에 태어났기에 저희 부모님을 보는 사람들은 아들이 없다고 불쌍하게 보기도 했습니다.

얼굴도 보지 않고 데려간다는 세 딸 중 둘째는 정말 예쁘다는 소리도 많이 듣고, 데려가서 딸 삼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봐도 예쁩니다.

저보다 다섯 살 어린 세 딸 중 막내는 누가 봐도 귀여웠기에 데려가서 딸로 키우고 싶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봐도 너무 귀여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도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절 데려가 부인 삼아준 남편이 있기에~)


전형적인 K-장녀


K-장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녀로서의 책임감과 동생을 휘어잡는 모습은 저에게도 고스란히 있었습니다.

동생들이 기억하는 어릴 때 언니의 모습은 무서운 언니였다고 합니다. 인정!

장녀라는 책임감이 어렵고 부담스럽긴 했지만, 저는 다시 태어나도 장녀가 좋습니다.

장녀라서 책임감을 어릴 때부터 배웠고, 그것이 지금도 저에게 가장 강한 강점이 되었으니까요.

또, 저 같은 언니가 있다면 저는 제 동생들처럼 착하게 언니말을 듣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언니랑 대판 싸우는 그런 못된 동생이지 않았을까... 


장녀라서 포기한 길

 

어릴 때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동생들도 학교를 다녀야 하기에 돈이 많이 드는 미술의 길을 갈 수 없었다는 것.

하고 싶었던 길을 장녀라서 포기해야 할 때에는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이기적인 욕심이었기에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가지 못한 예술의 길에 대해 미련이 있어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공부하려고 하는 자세가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아서 지금은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때 미술을 했다면 아마 디자이너가 아닌 화가의 길로 갔겠죠?




장녀라서 생긴 기획력


어릴 때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바빠서 두 동생을 항상 데리고 놀았습니다.

매일 셋이서 놀아야 하기에 무얼 하고 놀지 궁리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시장놀이, 하루는 선생님놀이, 책으로 성을 쌓았다가 부수고 책정리하기, 마당에서 흙으로 요리하기, 동네 아이들과 편먹고 놀기 등

지금 생각해 보면 하루도 똑같이 보낸 날이 없을 만큼 놀이에 변화를 주며 재미있게 보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긴 장점이 기획력인 것 같습니다.

"책임" 외에 또 다른 저의 강한 장점이 기획을 잘하는 "전략"입니다.

그때 동생들과 놀면서 배운 전략은 제가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써먹는 재능입니다.


언니 보다 동생


제가 장녀라서 잘하지 못하는 것은 언니들과 어울리는 것입니다.

동생이 둘이기 때문에 동생과 지내는 법은 배웠는데, 언니와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인지 지금도 저는 언니보다 동생이 더 편합니다.

내가 언니의 입장에서 살아서인지 언니에게 어떻게 해야 예쁨 받고, 언니에게 어떻게 말해야 미움받지 않는지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를 만나면 더 긴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장녀


돌아보니 장녀라서 부모님이 더 의지하고 믿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스므살에 독립해서 산다고 할 때에도 허락해 주셨고, 항상 이해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할 때에도 믿고 가보라고 해주셨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보니, 처음으로 만난 자녀가 얼마나 신기하고 사랑스러웠을지 부모님도 나에게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으셨을까요? 

첫 번째로 만난 자녀니까... 처음으로 부모님을 엄마, 아빠로 만들어준 사람이 저이기 때문에 더 특별한 추억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기억을 못 하지만..

어릴 때 동생들이 "엄마, 아빠는 언니만 좋아해!"라고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 말에 인정했습니다. "응, 맞아. 엄마, 아빠는 나를 제일 좋아해!"라고요.

사실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인정한 게 아니라 동생들을 약 오르게 하려고 했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정말 부모님은 동생들과 다르게 좋아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태어나도 장녀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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